30·40에게는 추억, 10·20에게는 신선한 자극 전달하며 쌍끌이 인기

[비즈니스 포커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미지.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미지.
#최근 극장가에서는 1990년대 ‘아재(아저씨)’들의 추억의 만화 ‘슬램덩크’를 영화로 만든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이 불고 있다. ‘슬램덩크’는 1990∼1996년 연재된 일본 만화다. 전 세계에서 약 1억2000만 부가 넘는 누적 판매 부수를 기록할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직접 읽지는 못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현재 ‘아바타2’에 이어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며 누적 관객 수는 200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거리에는 일명 ‘아재 코트’이자 ‘떡볶이 코트’로 불리는 더플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다시 눈에 띈다. 더플코트는 넉넉한 오버사이즈 핏과 토글 단추(떡볶이 단추) 디테일로 2000년대 초반에 크게 유행했던 히트템이다. 당시 길거리에 나가면 면바지나 청바지 위에 더플코트를 입은 사람들을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가 이번 겨울 다시 핫한 아이템으로 떠오르며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과거 큰 유행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잊혔던 추억의 아이템들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일이 빈번해졌다. ‘슬램덩크’처럼 오래전에 인기를 끌었던 콘텐츠가 다시 떠오르는가 하면 더플코트처럼 장롱 속에 묵혀 뒀던 철 지난 옷들이 다시금 ‘힙’한 아이템이 돼 돌아왔다.

유통업계에서도 단종된 제품을 재출시해 다시 히트시키는 사례가 흔해졌다. 이른바 ‘아재템(아저씨들의 아이템)’의 귀환이다.

19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슬램덩크’는 최근 영화 개봉을 계기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자)’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최근 인기가 뜨겁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 과거의 추억을 좇는 3040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개봉 1주일 만에 누적 관객 수 50만 명을 돌파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이후 영화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1020에게까지 번지면서 현재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달려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와 장면 등 30년 전의 독특한 감성이 1020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먹혀든 것 같다”며 인기 배경을 설명했다.

스크린 밖에서도 ‘슬램덩크’의 흥행을 실감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 ‘슬램덩크’ 관련 굿즈와 서적들이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제공하는 도서 인기 순위를 살펴보면 수많은 ‘슬램덩크’ 단행본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총 31권으로 구성된 오리지널 낱권 만화 역시 다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에스아이빌리지에서 판매 중인 더플코트.
에스아이빌리지에서 판매 중인 더플코트.
추억을 되살아나게 한 아재들의 콘텐츠는 ‘슬램덩크’뿐만이 아니다. 2000년대 초 ‘엽기 토끼’라고 불이며 큰 사랑을 받았던 토끼 캐릭터 ‘마시마로’도 토끼의 해인 ‘계묘년’을 맞아 급부상하고 있다. 각종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통해 여기저기에서 다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비맥주의 밀맥주 ‘카스 화이트’는 최근 카스 공식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 계정에 2000년대 초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마시마로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조만간 한정판 굿즈 출시, 팝업스토어 이벤트 등 마시마로를 활용한 각종 프로모션을 펼칠 예정이다. 커피 프랜차이즈 엔제리너스는 한정판 딸기 음료와 인형, 컵 등 ‘마시마로 굿즈’를 선보이고 있고 KCC도 자사의 페인트 광고에 마시마로를 등장시켰다.
MZ세대 사랑받는 등산복 패션패션업계에서도 복고 바람을 타고 과거 인기를 끌었던 아재템이나 브랜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 겨울 유행하고 있는 더플코트는 20년 가까이 핸드메이드 코트, 슬림핏 코트, 패딩 등에 밀리며 잠시 자취를 감췄던 아이템이다. 요즘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브랜드 스튜디오 톰보이에 따르면 더플 코트의 이번 겨울(2022년 9월~2023년 1월 15일까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다.

아저씨들의 ‘등산복 패션’으로 여겨졌던 아웃도어 스타일은 ‘고프코어’라는 트렌드로 재탄생하며 젊은층에게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고프코어는 야외 활동 시 체력 보충을 위해 챙겨 먹는 ‘견과류(gorp)’와 자연스어운 멋을 추구하는 ‘놈코어(nomcore)’의 합성어다. 등산할 때 입는 아웃도어 패션 스타일을 일상복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MZ세대들은 아웃도어 웨어의 특징인 방수·방한 등에 뛰어난 기능성 소재의 옷을 자신의 신체 사이즈보다 치수가 큰 ‘오버 핏’으로 입고 다니며 스타일리시한 룩을 완성해 낸다. 고프코어의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신사에 따르면 자사에 입점해 있는 그레일즈·살로몬·그라미치 등 고프코어 브랜드의 거래액(2023년 12월부터 16일~2023년 1월 15일)은 전년 동기 대비 2.6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억의 브랜드들이 다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재부상하는 일도 잦아졌다. 한물 간 아재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았던 리복과 어그 등은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MZ세대에게까지 큰 호응을 얻으며 세대를 아우르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LF가 수입 판매하는 리복은 테니스 코트화로 1985년 처음 출시된 스니커즈 ‘클럽 C 85’를 재출시하며 핫한 브랜드로 떠올랐다. 지난해 10월 출시한 클럽 C 85 현재까지 1만 족 이상이 판매되며 히트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수입 판매하는 어그도 2022년 9월부터 현재(1월 15일 기준) 전년 동기 대비 50% 매출이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휩쓸던 트렌디한 아이템이었지만 잊혔다가 지난해부터 1020세대를 중심으로 가장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기존 양털 부츠를 신던 30~40대와 달리 10~20대들은 양털 신발을 처음 접하는 세대로 신선함을 느꼈고 최근 몇 년 동안 인기를 끌던 원마일 웨어, 라운지 웨어 등 캐주얼한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아이템으로 부각되며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한때 기성세대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제품들이 다시 시장에 출시돼 MZ세대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06년 단종됐다가 지난해 2월 재출시된 SPC삼립의 ‘포켓몬빵’은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판매량 1억 개를 넘어섰다. 단일 제품이 연 1억 개 이상 판매된 사례는 삼립호빵 이후 처음이다. 팔도도 2008년 생산이 중단된 어린이용 탄산음료 ‘뿌요소다’를 2021년 다시 선보여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1000만 개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에 유행했던 이른바 아재템들은 3040에게는 추억을 자극하는 아이템으로, 2000년대를 겪어 보지 못한 1020에게는 신선한 스타일로 다가가면서 전 연령대에서 인기를 끄는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