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도입 당시도 ‘2049년 고갈’ 전망…연금 개혁 이슈 계속 나오는 이유는

[스페셜 리포트 : 키워드] 국민연금, 세대간 전쟁의 도화선 되나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사진=한국경제신문
2023년 국민연금 논란이 한창이다. 기금 고갈 시점이 일러지고 1990년대생은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예측이 잇달아 나오면서 정부가 연금 개혁에 나섰다.

오는 3월로 예정됐던 국민연금 재정 상태 발표도 1월로 앞당겼다. 정부는 2003년 제1차, 2008년 2차, 2013년 3차, 2018년 4차 등 5년마다 재정 추계를 해 왔고 현재 5차 재정 추계를 진행 중이다. 재정 추계는 국민연금의 곳간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다.

정부는 1월 재정 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간담회, 대국민 토론회 등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 후 오는 10월까지 모수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연금 제도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얼마를 납부하고(보험료율), 나중에 얼마를 수령하는지(소득 대체율) 등의 수치를 조절한다는 얘기다.

다만 ‘더 내고 더 받기’든 ‘더 내고 그대로 받기’든 적립금은 소진된다. 점진적인 모수개혁을 추진한다고 해도 터질 폭탄을 지연시킬 뿐이다. 또 국민연금 인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여전하다. 특히 당장 주머니가 털릴 2030 청년층의 시선은 서늘하다.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배경이 뭔지, 방법은 모수개혁 뿐인지, 할아버지 때와 나 때의 상황이 왜 다른지 등 궁금한 점도 많다.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5가지 키워드를 정리했다.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5가지 키워드[MZ세대에게 국민연금이란②]
1. 저부담‧고급여, 뒷이야기
국민연금은 경제 활동 인구가 보험료로 낸 기금에서 고령층(이들도 경제 활동을 하며 보험료 납부)에게 일정 급여를 지급하는 사회 보험 제도다. 기본적인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 한국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다. 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인 소득 대체율은 40%다.

국민연금이 시행됐던 1988년 보험료율은 3%인 반면 소득 대체율은 70%였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로 볼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선진국들은 재정 불안 때문에 이미 연금을 개혁했고 정부와 전문가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당시 법대로라면 장기 재정 불안이 불가피하다는 자료도 갖고 있었다. 2038년 적자를, 2049년 기금 고갈을 예상했다.

하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일단 제도를 도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재정 안정은 다음 문제였다. 또 당시 출산율을 기준으로 보면 국민연금에는 문제를 해결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있다는 논거도 더해졌다.

애초 국민연금 도입 논의는 1970년대 시작됐다. 1973년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법제정이 제도 실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974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1973년 발생한 석유 파동이 연기의 명분을 줬다.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에 노후를 준비하는 제도가 미뤄지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도 별로 없었다. 무기한 연기됐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의 도입 배경에 ‘복지’가 아닌 ‘경제’ 논리가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의 책 ‘낙타와 국민연금’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중화학공업화를 핵심 정책으로 결정하고 재원 조달을 고민하고 있었다. 국민투자기금과 연금기금 중 고민하던 정부는 1973년 12월 14일 국민투자기금법을 제정하고 그해 말 국민투자채권을 발행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연금기금과 투자기금의 두 개 안 중에서 중화학공업 재원 조달로 투자기금을 선택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경제‧사회 상황이 국민연금 도입에 유리하게 전환됐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75년 594달러에서 1985년 2242달러로 증가했다.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등 국제적 스포츠 행사가 열린 것도 한몫했다. 선진국만 개최할 수 있다고 여겼던 국제 행사를 유치한 상황에서 그 흔한 국민연금도 없다는 사실이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소득 증가에 이어진 노동 운동도 연금 도입에 영향을 미쳤다. 1987년 6·10민주화 운동에 이어 그해 여름부터 노동 현장에서 각종 요구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당근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이 같은 배경 속에 14년 만에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됐다. 정부는 기금 운용 등 효율적 관리 운영을 위해 1987년 9월 독립 기관으로 국민연금공단을 세웠다. 우선적으로 1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출발해 가입 대상을 농어촌 거주자와 도시 지역 자영업자 등으로 넓혔다. 소득 없는 전업주부도 원한다면 가입할 수 있게 되는 등 ‘전 국민 연금’으로 확대됐다.

‘저부담 고급여’ 방식으로 태생부터 지속하기 쉽지 않은 구조로 출발한 국민연금은 대상이 확대되면서 재정 안정화를 위한 제도 개정이 필요해졌다.
2. ‘신뢰는 어디로?’ 표심 무서워 개혁 미뤘던 정부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국민연금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36년의 역사를 보면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가 높았던 해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달이 돈은 나가는데 받는 데까지는 까마득하다. 이런 분위기에 개혁하기는 쉽지 않다. 이전부터 정치권은 선거를 염두에 두고 개혁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의 제도 개혁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소득 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5년마다 1세씩 2033년 65세까지 늦추는 1차 제도 개혁을 진행했다.

2차 연금 개혁은 노무현 정부에서 맡았다. 당시 정부는 보험료율을 12.9%로 올리고 소득 대체율을 50%로 내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개혁은 퇴색됐다. 보험료율은 그대로 둔 채 소득 대체율만 2028년까지 40%로 인하하는 방안이 기초노령연금(소득과 재산이 적은 노년층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조해 주는 제도, 2014년 7월 기초 연금 제도 시행으로 폐지) 제도와 함께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후 제대로 된 국민연금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연금 개혁은 자칫 정권의 안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 지지율 하락을 우려한 정부는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시늉만 냈다. 그 결과 월 소득의 3%였던 보험료율은 1998년 월 소득의 9%까지 오른 뒤 25년째 제자리에 머물렀다.

올해 역시 다양한 이해 대립과 2024년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개혁 논의가 간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 곳간을 채우는 방법
국민연금 재정 방식은 적립 방식과 부과 방식 크게 두 가지다. 적립 방식은 보험료를 모아 기금을 만들고 이를 연금 지급의 재원으로 삼는다. 한국은 이 방식을 택했다. 부과 방식은 해마다 지급에 필요한 돈을 가입자가 그해에 낸 연금 보험료 수입으로 충당한다. 연금 기금이 고갈된 대부분의 나라가 부과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도 재정이 고갈된다면 부과 방식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금을 받는 사람보다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턱없이 적으면 큰 사회적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가입자 100명이 20명의 수급자를 부양해야 하는 경우보다 100명이 200명을 부양해야 하는 경우의 부담이 훨씬 더 크다. 이렇게 되면 한 해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율은 30%가 넘게 된다. 여기에 건강보험료·고용보험료 그리고 조세 부담까지 더해지면 남는 게 없다.
4. 0명대 출산율, ‘생(生)’이 길면 힘든 나라
‘인구 절벽.’ 한국의 상황이다.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으로 출산율이 급감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20년 기준 0.84명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명 이하를 기록한 국가는 유일하다. 압도적 꼴찌인 셈이다.

반면 한국은 2025년 총인구에서 65세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누구나 노인이 돼 자녀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자신이 직접 일을 해 먹고 살든가, 저축한 돈이 있거나 연금으로 생활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죽을 때까지 매달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부양하는 세대가 줄어드는 데 수명이 연장되며 연금을 타가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고령화가 국민연금 재정 악화의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는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고’ 등을 조절하는 모수개혁만으로 해결 할 수 없다. 재정 안정화가 연금 개혁의 유일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단 얘기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또 주목할 부분이 2가지 있다. 첫째 출산율은 단순히 보조금을 더 지급한다고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부모급여’ 지급을 확대하고 있다. 예컨대 올해는 만 0세(1월 1일 이후 출생 아동) 아이를 둔 가정엔 월 70만원, 만 1세 아이를 키우는 가정엔 월 35만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한다면 2024년부터는 지원 금액을 늘려 만 0세 아동은 월 100만원, 만 1세 아동은 월 50만원을 주는 식이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 같은 임시 지원은 아이를 키우는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청년들의 생각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 출산이나 양육에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기엔 갈 길이 멀다.

D(30대‧남‧대기업) 씨는 “육아 휴직을 쓰면 승진은 포기한 셈이다. 출산 휴가도 눈치 보며 겨우 썼다”고 토로했다. E(30대‧남‧공기업) 씨는 “일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육아 휴직이 자유롭지만 무급이다 보니 경제적인 이유로 곧바로 복귀한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아이를 나아도 잘 키우기 힘들 것 같은 느낌, 새로 태어날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도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치열한 경쟁, 교육에 대한 부담, 계층 이동 가능성 감소 등이 젊은 세대를 짓누르는 문제들이다.

둘째 연금을 타가는 고령자는 늘고 있지만 한국에선 연금만으로 먹고살 수가 없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노후보장패널’ 9차 조사 결과(2021년)에 따르면 특별한 질병이 없는 노년을 가정할 때 최소 노후 생활비로 개인은 월 124만3000원, 부부는 198만7000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준 전체 연금 수령자(582만1915명)의 월평균 연금액은 57만1945원이다. 최소 노후 생활비에 절반도 안 되는 셈이다. 20년 이상 가입해 보험료를 내고 노령연금을 받는 이들은 76만2643명인데, 이들의 월평균 연금액은 97만227원이다. 정리하면 부부가 모두 20년 이상 가입해 연금을 받아야 간신히 최소 노후 생활비 수준이 된다.

정년(60세)과 연금 수령 연령(65세) 사이의 공백도 있다.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 배경이다.

결국 한국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2016년 통계를 보면 노인 소득 중 노동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국이 42.8%로 일본(2013년·30.5%), 미국(2019년·24.7%), 영국(2018년·10.3%), 캐나다(2017년·17.1%), 호주(2014년·17.2%)와 큰 차이가 났다. 국민연금연구원은 “노동 소득이 노인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노동 소득의 감소 혹은 증가가 빈곤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자리는 지하철 택배 등 단기성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경비‧청소원 등을 구하면 운이 좋은 쪽에 속한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11년 49.18%에서 2020년 38.97%로 낮아졌지만 OECD 평균 13.5%(2019년 기준)의 2.8배 정도로 최고 수준이다.
5. MZ “보험료율 인상밖에 답 없나?”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국민연금, 못 받는 돈 아닌가요?” 한경비즈니스가 진행한 ‘MZ세대가 바라보는 국민연금(3001명 응답)’ 설문 조사 결과 2030 청년 과반의 응답이다. 또 이들은 현재 보험료율(9%)이 ‘부담(응답률 79.9%)’된다고 답했다.

이를 통해 현 정부가 지향하는 국민연금 개혁 방향과 국민 여론이 상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월보험료 인상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보험료 인상에 대한 청년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MZ세대의 이 같은 분위기는 다른 기관의 설문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여론 조사 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7월 진행한 국민연금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2030 청년층은 과반이 ‘향후 수급 연령이 됐을 때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특히 30대는 국민연금이 의무 가입제가 아니라면 가입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55%로 조사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국민연금 현안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서도 소득 대비 연금보험료 수준이 부담된다는 응답자는 20대 74.6%, 30대 74.3%로 나타났다. 보험료를 불가피하게 인상해야 한다면 2030 청년 10명 중 7명은 ‘10%’ 수용에 손을 들었다.

MZ세대의 현실은 어둡다. 7포 세대(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인간관계·꿈·희망 포기)인 청년들에게 국민연금 몇 만원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설문 결과 조사들을 종합해 봤을 때 ‘신뢰’가 있다면 국민연금이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이 동의했다. 국민연금의 필요성은 확인했지만 안정적인 제도 운영을 위한 근본적인 보완을 고민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기억할 점. 대한민국 법에는 “국가가 국민연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을까.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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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