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익 114% 급락…모바일 시대로 넘어가며 빅테크 ‘탈인텔’ 본격화

[비즈니스 포커스]
 "창사 이후 최대 위기" 맞은 인텔, 반도체 제왕의 추락
세계 최대 종합 반도체 기업 인텔이 창사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인텔은 1월 26일 2022년 4분기와 연간 실적을 발표했다. 인텔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약 140억 달러(약 17조1948억원)로 전년 대비 32% 감소했다. 영업 적자는 7억 달러(약 8598억원)에 달했다. 블룸버그는 “인텔이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평가했다.

인텔은 한때 전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반도체 제왕’이었다. 퍼스널 컴퓨터(PC) 시대에서 모바일 시대로 넘어가며 예전만큼의 위상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인텔은 여전히 글로벌 반도체 매출 1, 2위를 다툴 정도로 막강하다.

인텔의 실적은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이번 인텔의 어닝쇼크 역시 최근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한 ‘반도체 한파’의 직격탄을 입은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인텔의 위기는 ‘반도체 한파’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위기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의 역사를 이끌어 온 인텔은 지난 50년간 수많은 위기에도 혁신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인텔이 또 한 번 위기를 넘어서고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텔의 실적 악화, 글로벌 ‘반도체 한파’ 직격탄
“분명히 재무 상황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숫자다. 총마진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우고 있다.” 인텔의 4분기 실적 발표와 관련해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인텔 내부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최악의 실적이라는 의미다. 2022년 전체 매출은 20% 줄어든 631억 달러를 기록했고 순이익도 199억 달러에서 80억 달러로 60% 감소했다.

인텔의 이번 실적 악화는 지난 3년여간의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기간 동안 호황을 누렸던 PC 데이터센터 시장이 위축된 영향이 크다. PC용 프로세서 등을 생산하는 클라이언트 컴퓨팅 그룹의 매출은 66억 달러(약 8조1265억원)로 2021년 대비 36% 줄었다. 시장 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PC 출하량은 6720만 대다. 전년 동기 대비 28.1% 줄어들었고 2018년 4분기(6851만 대) 이후 최저치다. PC 시장이 꺾이면서 실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부문의 매출 역시 43억 달러로 3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실적’보다 더욱 우울한 것은 향후 전망이다. 겔싱어 CEO는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유례없는 공급 과잉’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PC 출하량은 줄어들고 반도체 재고는 쌓여 있는 상황이다. 겔싱어 CEO는 “시장 상황이 단기간에 개선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올해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반도체 재고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PC 시장의 불황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이 전망한 올해 PC 출하량은 2억7000만~2억9500만 대다. 올 상반기 서버용 칩 수요 역시 부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늘어나는 반도체 재고는 더욱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반도체 수요 급감으로 칩 제조·유통·고객사 모두에 적정 수준을 웃도는 20주 치 정도의 재고가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창사 이후 최대 위기" 맞은 인텔, 반도체 제왕의 추락
혁신에 실패한 ‘반도체 공룡’…대규모 투자로 변화할 수 있을까
인텔은 2021년 매출 79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2020년 대비 779억 달러 늘어난 수준이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디지털 전환의 수혜를 받은 결과다. 하지만 인텔이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던 당시부터 ‘반도체 제국’ 인텔의 추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번 인텔의 실적 악화를 단순히 반도체 불황의 영향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1968년 창업한 인텔은 1971년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인텔 4004 중앙처리장치(CPU)를 세상에 선보였다. 이후 오랫동안 PC 시대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이 생긴 데는 인텔의 영향이 크다. ‘실리콘밸리 스토리’의 저자 데이비드 캐플런은 “1971년 인텔이 최초의 소형화된 CPU인 4004를 출시한 뒤 실리콘밸리가 지금의 명칭을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인텔을 중심으로 반도체 회사들이 근처에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이 지역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인텔이 오랫동안 반도체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과의 굳건한 동맹 관계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특히 인텔과 MS의 동맹은 4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80년대 인텔이 CPU와 같은 하드웨어 생태계를 책임지고 있었다면 윈도의 소프트웨어 기술은 MS가 시장을 선도했다. 애플 또한 2006년 맥 컴퓨터에 인텔의 칩을 탑재한 이후 2007년부터 모든 제품에 인텔 칩을 넣어 온 강력한 우군이었다.

그런데 2020년을 계기로 이들 빅테크 기업들의 ‘탈인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애플은 2020년 11월 15년간 CPU를 공급 받아 온 인텔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이후 자체 설계한 칩 M1을 시작으로 업그레이드 버전인 M2까지 PC에 탑재하고 있다. MS도 2020년 12월부터 인텔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서버·PC용 프로세서 자체 개발에 착수했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최강자인 아마존 또한 자체 CPU를 개발해 쓰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탈인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나선 이유는 분명하다. 인텔은 PC 기반 CPU 시장의 지배자다. 하지만 최근 들어 PC·태블릿·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컴퓨터의 뇌 역할을 하던 CPU의 역할 또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로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AP는 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기능이 통합된 시스템 반도체를 일컫는다. 현재 모바일 AP 설계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는 곳은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이다. 오랫동안 강력한 우군 역할을 도맡았던 빅테크 기업들의 탈인텔 움직임과 최근의 실적 악화는 PC 시대의 강자였던 인텔이 ‘모바일 시대의 강자’가 되는 데 실패한 결과인 셈이다.

인텔은 2021년 2월 ‘위기에서 벗어나 인텔의 혁신 DNA’를 깨울 구원투수로 겔싱어 CEO를 등판시켰다. 겔싱어 CEO는 인텔이 첫 직장으로 30년간 근무하며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수석부사장 겸 디지털엔터프라이즈그룹 총괄을 역임한 바 있다. 겔싱어 CEO는 취임 후 대규모 신규 공장 증설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투자 금액만 최소 수십조원 규모로 미국 내는 물론 유럽 등 해외 지역에서도 공장 증설에 적극적이다. 반도체 전쟁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받아 든 최악의 성적표는 인텔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소식일 수밖에 없다. 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있지만 대규모의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비용 절감이 절박하다. 인텔은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판매 비용과 운영비 등에서 올해 30억 달러를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2025년 말까지 최대 100억 달러의 비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배당은 줄이지 않기로 했다. 주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겔싱어 CEO는 2월 1일 올해 기본급 25%를 반납하겠다고 밝히며 직급별로 고위 경영진과 중간 관리자의 보수를 각각 10%, 5% 삭감하는 자구책을 내놓았다. 그는 “이번 조정은 직원보다 경영진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됐다”며 “혁신을 가속화하고 장기 전략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투자와 인력을 지원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