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에 육박하는 보증금 지급은 매우 위험...강력한 처벌만으론 개선 어려워

[법으로 읽는 부동산]
주택 전세 제도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전세 사기의 딜레마[최광석의 법으로 읽는 부동산]
대규모 갭 투자 전세 사기 사건을 계기로 주택 전세 시스템의 민낯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시세가 명확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빌라·다세대 주택을 대상으로 시세를 속여 보증금을 가로채는 범죄가 오래전부터 만연해 왔는데 그 피해 금액이 한 해 1조원을 넘을 정도라는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임차인 개인의 피해는 물론이고 피해 금액의 상당 부분은 피해 방어 능력이 충분한 보증금 반환 보증 기관이어서 천문학적인 금액의 국민 세금이 낭비될 처지여서 더 충격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 주택 전세 시스템은 이 사고를 계기로 전면 개편돼야 한다. 집값에 육박하는 거액의 보증금을 지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정상적일 수 없다. 시세 파악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물론 향후 집값 하락 가능성도 있어 그 위험을 고스란히 임차인이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증금 반환의 위험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집값보다 더 낮은 보증금만 받고 집을 빌려 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상식에 맞지 않고 비정상적이다. 예를 들어 1억원에 산 집을 8000만원에 임대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임대인의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경제 원리에 맞지 않다. 전세 제도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대한민국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정상적인 전세 제도가 수십년간 대한민국에 지속돼 온 것은 매우 적은 자기 자본만으로 전세룰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 투자를 통한 재산 증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집값보다 적은 보증금을 받고 임대하는 손해는 ‘집값 상승’이라는 이익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런 구조가 수십 년간 지속되다 보니 전세라는 레버리지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가 만연되고 엄청난 집값 거품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전세 제도는 주택 투기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전세 제도 비율은 하루빨리 대폭 낮춰져야 한다. 주택 임대차의 기본은 월세가 돼야 하고 서민의 주거 복지 정책은 전세 대출의 방식이 아니라 저렴한 월세 임대 주택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우리 정책은 이에 대한 근본 인식이 부족했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돕겠다는 목적으로 전세 보증금 대출을 용이하게 했다. 심지어 주택 담보 대출보다 훨씬 쉽게 대출되도록 했고 보증금 대출에 대한 정부 공기관의 보증 역시 대폭 완화했다.

주거 복지라는 이유이지만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 결과 그렇지 않아도 비정상적으로 높은 전세 제도 비율이 축소되기는커녕 대폭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결국 천문학적인 전세 사기 범죄에 쉬운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안일한 대책만으로는 전세 사기를 근절할 수 없다.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비율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정책의 대전제하에서 전세 사기를 대폭 근절하기 위해서라면 보증보험 가입 대상은 집값의 70% 이하로 대폭 줄여야 한다.

이에 따라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할 수 있지만 개인과 우리 사회에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월세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설득과 이해를 통해 전세 비율을 대폭 낮추는 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책 발표 과정에서 보인 정부 당국자의 태도는 보증 가입 대상이 줄어드는 불편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데 머무르고 있다. 전세 제도의 위험성과 축소 필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어 정책 입안자로서의 자세가 매우 미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밖에 대책 중 하나인 전세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감정평가사를 일벌백계하는 소위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역시, 전세 사기에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지극히 평범한 대책일 뿐이다.

임대차 시장의 주류가 월세 아닌 전세라면 보증금을 노리는 전세 사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막대한 범죄 수익 앞에서는 전문가라도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강력한 처벌만으로 근본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정상적인 현행 전세 제도하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개인이 감수해야 마땅하다. 전세 제도에 대한 뿌리 깊은 우리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런 뼈아픈 고통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최광석 로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