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칩스법·연장 근로 일몰 연장·부동산 연착륙 등…기업 발목 잡는 법은 ‘일사천리’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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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2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오른쪽)이 퇴장하면서 전해철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병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 사진설명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2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오른쪽)이 퇴장하면서 전해철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병언 한국경제신문 기자
국회에서 나랏돈을 쓰자고 하고 기업의 발목을 잡는 법안은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반면 시급한 진짜 민생 법안은 표류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했지만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을 8%에서 15%(대기업 기준)로 높이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여야는 법안이 제출된 지 한 달이 지난 2월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야당의 반대로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다.

원죄는 정부에 있다. 2022년 12월 말 국민의힘은 정부 원안(대기업 8%, 중소기업 16%)에서 공제율을 더 높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수 감소를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정부 원안대로 통과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위기에 처한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재검토를 지시했다. 기재부는 1월 3일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을 8%에서 15%(중소기업은 16%→25%)로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몇몇 국가가 초격차 확보를 위해 재정과 세금 지원을 전방위적으로 하고 있어 이대로는 경쟁력 유지가 어렵다”며 여야에 개정안 처리를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세액 공제율을 올리는 방안 자체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15%까지 높이자는 데 대해선 부정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조특법 처리 지연 땐 반도체 산업 더 위기로 몰려”

세액 공제를 해주면 그에 따라 얻은 혜택을 법인세 등 형태로 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안을 너무 단순화해 한쪽면만 본다는 지적이다. 세액 공제 확대 혜택은 일부 대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특법 개정안에는 중소기업의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을 16%에서 25%로 올리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은 물론 미래차·바이오헬스·수소 등 원천 기술 관련 기업들도 혜택 대상이 된다.

반도체 세액 공제 확대 법안 처리가 국회에서 지연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이 더욱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등 경쟁국은 반도체 지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 의회는 2022년 7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은 25%의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반도체 및 과학법’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자국에 반도체 설비 투자를 하는 기업에 투자금의 3분의 1을 지원하기로 했다. 중국은 첨단 공정과 관련해 10년간 법인세를 완전 면제해 주고 대만은 연구·개발(R&D) 비용 세액 공제율을 25%로 높였다.

반면 한국은 2022년 말 넉 달 표류 끝에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증원은 빠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 첨단전략산업특위 위원에 반도체 전문가인 양향자 의원을 빼고 비전문가인 민형배 무소속 의원을 배정하기도 했다.

30인 미만 사업장의 8시간 추가 연장근로제 일몰 연장법이 여야 이견으로 처리를 하지 못해 2022년 말 종료되면서 영세 중소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야당은 1월 임시 국회 소집 명분 중 하나로 이 법안 처리를 꼽아놓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부는 1년 계도 기간을 줬지만 업계는 노동자 진정이나 고소·고발이 있을 때 처벌받을 수 있다며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영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대표들은 직원을 구하기 어렵고 납기는 맞춰야 해 법정 근로시간(주52시간)을 넘겨 일할 때가 많아 언제 형사 처분 당할지 모른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직원들도 불만이 크다. “자식 학비 벌려고 더 일하고 싶은데 왜 막느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추가 연장 근로를 2024년까지 허용하는 법 개정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민주당이 반대해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한 공급 활성화 법안을 지난해 8월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에서 반년이 다 되도록 먼지만 덮어쓰고 있다. 정부는 2년 전 임대인 세금 체납 제시 의무화, 전세 사기 가담 중개사 자격 취소 요건 확대 등 전세 사기 방지 6개 법안들을 발의했다. 하지만 여야는 뒷전으로 미뤄 뒀다가 빌라왕 사태가 터지자 비슷한 법안들을 부랴부랴 꺼내면서 뒷북을 치고 있다.

야당은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다주택 취득세 중과세율을 완화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부자 감세’ 프레임을 걸어 제동을 걸고 있다. 정부안은 2주택자의 현행 중과세율 8%(조정대상지역 기준)에서 일반 세율(1~3%) 수준으로 낮추고 3주택자는 4~6%로, 법인과 4주택 이상은 6%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현행대로 또는 일부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적자 한도 GDP 2%로 축소’ 재정준칙법 ‘먼지만’

여야에서 나랏빚이 급증하는데 나라 곳간을 더 풀자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일각에서도 6월 추경론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나라 재정을 투입해 난방비를 지원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국가 채무는 2022년 1000조원이 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은 50%에 육박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이 구조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부채 비율이 2060년 GDP의 140%가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도 ‘관리 수지 적자 한도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하되 국가 채무 비율이 60%를 초과하면 적자 한도를 GDP의 2%로 축소’하는 내용의 재정 준칙 법안은 반년 넘게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발목 잡는 법안은 거대 야당의 완력으로 속속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고 있다. 하청 기업 노조가 원청 사업주를 대상으로 단체교섭·단체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불법 파업 시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 제기를 어렵게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이 2월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한데 이어 2월 21일 전체 회의에서 처리됐다.

안건조정위는 상임위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에 따라 구성해 최장 90일까지 법안 심사를 할 수 있다. 다만 위원 6명 중 4명 이상이 찬성하면 안건을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다. 안건조정위 위원은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정의당 1명으로 구성됐는데 민주당과 정의당이 찬성하면서 법안이 처리됐다. 안건조정위 구성 목적이 여야 이견이 큰 법안은 충분히 숙의하도록 한 것인데 거대 야당은 이를 무시하고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법안이 발효되면 수많은 하청 기업이 있는 대기업은 이들 노조들과 일일이 교섭해야 한다. 불법 행위까지 면책해 ‘무제한 파업’이 우려된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

야당은 또한 초과 생산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쌀 초과 생산량은 2022년 25만 톤에서 2030년 64만 톤으로 늘어나고 이를 사들여 처분하는 데 연평균 1조433억원의 세금이 든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분석). 쌀값 안정화는커녕 쌀 과잉으로 인해 쌀값이 현재보다 8% 이상 낮은 17만원(80㎏) 초반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됐다. 쌀 농사에 매달리면서 농업 혁신도 저해하는 등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