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운용성·안정성·신뢰성 문제 해결하며 스마트 홈 표준으로 등극

매터의 ‘스마트 홈’ 일병 구하기[테크트렌드]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CES) 2023’은 예년에 비해 크게 주목받은 혁신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데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 꼽으라면 스마트 홈(smart home)이다. 작년 CES에서 만큼 주목받지 못했지만 스마트 홈은 2000년대 초연결 사회를 지칭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열풍과 함께 한동안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미래의 기술 혁신으로 주목받다가 사라진 유비쿼터스처럼 스마트 홈도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진 듯했다.

이후 스마트 홈이 다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사물인터넷(IoT)의 영향이다. 유비쿼터스는 사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 환경이라면 IoT는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되고 사물 간 소통을 가능하게 되는 컴퓨팅 환경을 말한다. 사용자가 특별한 조작이나 관여 없이도 조용히 사물 간 소통하고 작동한다는 조용한 기술(calm technology)이다.스마트 홈 사실상 표준으로 부상한 ‘매터’이러한 IoT에 기반한 스마트 홈이 성공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가정 내 모든 사물에 센서와 통신 기능이 탑재돼야 하고 각 기기 간 상호 연동이 필요하다. 쓸 만한 서비스나 콘텐츠는 기본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스마트 홈의 인프라적 성장 자체는 주목할 만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2년 기준 약 1억3000만 가구가 스마트 홈 기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스마트 홈 기기 간 호환성을 위한 표준화 노력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표준화 노력으로는 오시에프(OCF)·원엠투엠(OneM2M)·올조인(AllJoyn)·에이치시에이(HCA) 등이 있다.

가시적인 지표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홈의 성장은 더디게 진행돼 왔다. 성장을 막는 걸림돌 중 하나는 기기 간 표준, 즉 상호 운용성 문제다.

특히 스마트 홈 표준을 주도하려는 플랫폼 기업들이 자사 플랫폼에 기기들을 연동시키고 타사 플랫폼 간의 연동을 막다 보니 기기 간 상호 호환이 어려웠다. 다행히 이러한 상호 운용성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고 나온 것이 바로 매터(Matter)다.

매터는 IoT와 스마트 홈 제품을 위한 연결 또는 상호 운용성 규약(Connectivity or Interoperability Protocol)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스마트 홈 기기들을 위한 공통 언어다.

2019년 프로젝트 칩(CHIP : Connected Home Over IP)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된 매터는 스레드·블루투스·와이파이 등 네트워크 통신 프로토콜을 사용해 IP 기반으로 IoT 기기 간, IoT 기기와 스마트 홈 플랫폼 간 연동과 제어를 지원한다. 근거리 저전력 무선 통신 프로토콜인 지그비 동맹(Zigbee Alliance)이 이름을 바꾼 글로벌 표준 단체 시에스에이(CSA : Connectivity Standards Alliance)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그비 동맹은 지그비 대신 스레드와 와이파이 표준을 수용하면서 IP 프로토콜을 지원하는 매터로 표준을 바꾼 상태다. 이에 따라 매터는 기본적으로 지그비를 쓰지 않는다. 지그비는 IP를 지원하지 않고 자체 프로토콜을 쓰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4일 공식 출시된 매터는 모든 IoT 기기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독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사실상(de facto) 스마트 홈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30년까지 매년 15억 개 이상의 매터 인증 장치가 출하될 것으로 예측(ABI Research)된다. 매터가 갖는 장점은 분명하다. 매터, 개인 정보 보호와 보안 문제도 해결첫째, 매터는 기기 제조사와 관계없이 스마트 기기들이 스마트 홈 생태계 전반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 과거 스마트 기기를 사면 제조사별로 등록하고 설정해야 했지만 매터를 사용하면 이전에는 호환되지 않았던 여러 회사의 기기를 별도의 인증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아마존의 FFS(frustration-free setup)처럼 꽃기만 하면 작동하는 플러그 앤드 플레이(plug & play)가 가능하다.

둘째, 사용자 관점에서 스마트 기기를 살 때 일일이 플랫폼을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졌다. 주요 스마트 홈 플랫폼에 통합돼 있기 때문이다. 매터의 인증 마크가 있는 기기를 구매하기만 하면 된다. 즉, 알렉사·시리·구글 홈 또는 홈 어시스턴트·빅스비 등 어떤 제조사가 만든 제품이라도 매터만 지원한다면 단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제어하고 관리할 수 있다. 기기를 여러 개의 플랫폼에 등록해 이용하는 멀티 관리(multi-admin)도 가능하다.

셋째, 매터는 로컬 네트워크에서 작동해 인터넷이 없는 환경에서도 쓸 수 있다. 지금까지는 스마트 홈이 주로 클라우드 기반이다 보니 인터넷 연결이 끊기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매터가 스레드라고 불리는 IP 기반의 저전력 무선 메시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지원하게 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됐다.

마지막으로 매터는 스마트 홈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개인 정보 보호와 보안 문제도 해결한다. 스레드가 안전하고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IPv6 기반의 무선 프로토콜이기 때문이다. 매터는 또한 기기에 대한 인증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등록해 보안 기능 측면에서 안전하다. 다만 보안 카메라와 같은 고대역폭에서 사용하려면 매터 2.0 버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일각에서 회의론자들은 매터가 또 다른 스마트 홈의 표준에 불과하고 기존에 실패한 표준들의 전철을 똑같이 밟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매터가 갖고 있는 많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홈의 현 상황을 인터넷 초기와 비유한다. 스마트 홈이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기존에 낡고 오래된 레거시(legacy) 기술과의 결합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매터가 출시됐지만 시장에서 당장 살 수 있는 매터를 지원하는 기기들이 많지 않다. 매터1.0 버전에서는 특정 유형의 스마트 홈 기기만 인증이 가능한 상태다. 기기의 잠금 장치, 조명, 온도 조절 장치, 자동 보안 시스템 등이 가능하다. 이후 버전인 매터 1.1에서는 냉장고·세탁기·로봇청소기·스마트 에너지 관리 등이 추가될 예정이다.

매터는 구글·아마존 등 주요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나온 성과다. 따라서 향후 스마트 홈 시장도 기기 사업자들보다 이들에 의해 주도될 것으로 보이고 이미 이들 사업자들은 자사 스마트 기기에 매터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매터의 핵심 기술인 스레드를 기반으로 구축된 연결 기기들도 속속 출시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브(Eve)·나노리프(Nanoleaf)·쉬라지(Schlage)·위모(Wemo)는 스레드에서 실행되는 모션 센서, 전구, 도어 잠금 장치, 스마트 플러그 및 전동 블라인드와 같은 스마트 홈 장치를 출시했다.

전반적으로 현재 매터 생태계에는 약 539개 회사들이 참여하고 있어 다양한 기기들이 모두 조화롭게 통신하는 진정한 스마트 홈 생태계 구축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스마트 홈 생태계를 둘러싼 경쟁 구도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아무래도 매터가 로컬 네트워크 중심의 연결이다 보니 댁내 스마트 홈 허브(hub)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까지는 주로 TV·냉장고·AI 스피커·스마트폰 등 가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매터의 출현으로 기존 스마트 홈 시장을 주도하던 기존 사업자 이외의 새로운 참여자들이 스마트 홈 생태계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댁내 로컬 네트워크쪽 스마트 허브를 장악하기 위해 유통 사업자, TV나 셋톱박스 제조사, 가구 업체 등이 이미 들어왔거나 진입하려는 추세다. 이런 측면에서 매터의 출현은 향후 스마트 홈 생태계를 둘러싼 본격적인 경쟁에 격발자(trigger)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심용운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