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문재인 ‘품목’ 관리 나섰지만 실패
박근혜 정부 때는 저물가로 규제 완화

[스페셜 리포트]위태로운 청년의 미래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한국은행은 독자적인 통화 정책을 통해 물가 관리를 한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통화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통화가 줄면 물가가 떨어지고 늘어나면 오른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잇달아 금리를 올리자 한국도 지난 1년간 금리를 7차례 올리며 물가 관리에 동참했다.

그런데 2023년 현재 지난 1년간의 금리 올리기가 무색하게 물가는 올랐다. 서울에선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으면 1만원이 든다. 전기장판만으로 겨울을 나도 난방비는 작년에 비해 두 배 뛰었다.

“내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성난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자 정부는 상반기까지 ‘공공 요금 인상 차단’이라는 카드를 부랴부랴 꺼내 들었다. 도로·철도 등 공공 요금을 최대한 동결하고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 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하기로 했다. 통신비·금융비용을 낮춰 주는 방안도 추진한다. 경고등이 켜진 지 1년 만에야 정부가 직접 나선 셈이다.

하지만 이번 정책의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당장의 물가는 잠잠해져도 하반기에 동시다발적으로 큰 폭의 공공 요금 인상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공기업들은 수년간 요금이 동결됐고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엄청난 연봉을 받아가면서 말이다.

너무 낮아도 너무 높아도 문제인 물가, 복잡한 정치‧경제 상황과 얽혀 있는 물가. 과거엔 위기가 없었을까.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물가와의 전쟁’을 치렀다. 취임 첫해인 2008년 금융 위기와 맞닥뜨렸고 환율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 상승 압력에 직면했다.

임기 1년 차 소비자 물가가 4%대를 훌쩍 넘었다. 당장 지갑에서 돈을 빼 가는 경제 상황에 대통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물가 변동에 예민해진 이 전 대통령은 쌀·자장면·삼겹살·전기료·학원비 등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해 집중 감시하는 ‘MB 물가지수’까지 만들었다. 농수산물 도매 시장 등 서민 물가를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을 방문해 시장에 물가 안정 메시지를 계속 주기도 했다.

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도 셌다. 2011년 초 이명박 정부는 석유 가격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기름값을 조사했고 정유사는 결국 기름값을 내렸다. 같은 시기 공정거래위원회는 ‘물가 당국’이라는 완장을 찼다. 밀가루·빙과류·제빵 등 가공식품 가격의 편승 인상이나 담합에 대한 불공정 행위를 집중 감시했다. 당시 일반 라면보다 2배 이상 비싼 ‘신라면 블랙’을 출시했던 농심은 반년도 안 돼 신라면 블랙 생산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라면 블랙에 과징금 1억5500만원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명목은 허위‧과장 광고였지만 물가 안정이 실제 목적이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라면 가격이 줄줄이 올리는 것을 차단하려고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물가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대통령조차 2012년 1월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 여러분의 기대만큼 정부의 물가 대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편에선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정권 초기의 고환율 정책을 꼽았다. 수출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펴다 보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늦어진 것이 물가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기준금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으면 원화의 가치가 떨어진다. 떨어진 원화의 가치는 수입 물가를 높인다.

박근혜 정부 때는 반대로 너무 낮은 물가가 고민이었다. 5년간 평균 1%대를 유지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등의 전례 없는 돈 풀기가 한국의 물가상승률을 떨어뜨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유동성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원화 강세를 유발해 수입 물가를 하락시켰다는 얘기다.

물가가 낮으면 얼핏 소비 여력이 개선돼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 같지만 경제의 성장성이 떨어진다. 일본이 대표적인 예다. 성장 여건이 나빠지면 결국 일자리가 줄어 가계 소득도 감소하게 된다. 박 정부가 규제 빗장 풀기에 적극 나섰던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코로나19 사태의 대유행으로 다시 물가가 올랐다. 문 정부는 치솟는 유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4차례 인하했다. 정권 말기엔 MB 물가지수와 같은 ‘외식 가격 공표제’를 내놓았다. 김밥·햄버거·치킨 등 12개 외식 품목에 대해 매주 프랜차이즈 업체별로 가격을 공개해 가격 인상을 사전 차단하고 물가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

또 공공 요금을 동결하는 등 시장에 적극 관여했지만 퇴임 직전인 4월 소비자 물가는 4.8% 상승해 1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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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