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식탁 위 부적이요, 신령한 건강의 토템(totem)이다

건강 염려증 5


당당하게 식탁 위 공간을 점거한 건강기능식품(건기식)들을 볼 때면 요상한 심술이 돋는다. 그들의 급작스러운 신분 상승이 탐탁하지 않고 인정되지도 않는다. 건강식품도 아니고 약도 아닌 것들이 말이야….

왜 한국 사람들은 저 비대한 건기식 통들을 식탁 위에 진열해 둘까. 병원과 의사가 처방한 진짜 약품들은 어디에 처박혀 있을까. 정작 건강에 좋다는 음식들은 냉장고 한 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건기식으로 하루를 출발하고 마감하며 그것을 건너뛰기라도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쩔쩔매는 것일까. 필자에게는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이다.
무한 질주 건기식 시장
건기식이라 불리는 신앙[몸의 정치경제학]
코로나19 사태가 맹위를 떨친 2019년에서 2022년 사이 한국의 건기식 시장 규모는 4조8900억원에서 6조1400억원으로 대략 24% 성장했다(건강기능식품협회). 이 중 건기식 ‘4대 천왕’인 홍삼, 비타민(종합+단일), 프로바이오틱스, 오메가3 지방산이 전체 시장의 58%를 장악하고 있고 그 뒤를 체지방 감소 기능 식품과 단백질 보충제가 잇고 있다.

부동의 1위를 유지하는 홍삼(22.7%)은 지난 3년간 점유율이 다소 낮아진 반면 나머지 3항목의 점유율은 지속 증가 추세다. 종합적인 활력 증진에서 신체 부위·기능별 세분화로의 관심 이동과 상관성이 커 보인다.

<표1>은 2021년 기준 지난 9년간 건기식 생산 변동 폭을 보여준다. 품목 다양화와 함께 소비 일반화에 기반한 역동적 성장이 뚜렷하다. <표1>과 <표2>를 비교해 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건기식 생산액은 2조6000억원인 반면 시장 규모 자체는 6조1000억원에 달한 것을 알 수 있다. 절반을 훌쩍 넘는 3조4000억원이 수입 제품이란 추정이 가능해진다.
건기식이라 불리는 신앙[몸의 정치경제학]
<표2>에서 알 수 있듯이 성인 건기식 구매율은 한국이 종주국 미국보다 월등히 높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30대에서 60대까지 70% 이상, 20대에서도 60% 이상이 정기적으로 건기식을 섭취한다. 구매 경험률로만 따지면 2022년 기준 무려 82%에 육박한다고 한다(건강기능식품협회). 인구 1인당 지출액에서는 미국을 약간 밑돌지만 실질 소비자 연간 구매액이 35만8000원에 달한다고 하니 과연 건기식 최강국이라는 호칭에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문화로서의 건기식 숭상
건기식은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의에 따르면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나 성분을 사용하여 제조 가공한 식품’을 지칭한다(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법률 제3조 제1호). 매우 광범위하고 모호한 해설인데 ‘기능성’과 ‘제조 가공’을 잘 따져봐야 한다. 제조 가공 식품인 만큼 일단 자연식품·천연식품·건강식품은 여기에서 빠진다.

문제는 기능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인데 식약처는 ‘인체의 구조 및 기능에 대하여 영양소를 조절하거나 생리학적 작용 등과 같은 보건 용도에 유용한 효과를 얻는 것(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제3조 제2호)’이라고 또다시 두루뭉술한 소리를 반복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유용한 효과를 지녔다고 식약처에서 인정한 원료로 만든 제품이 건기식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 그런 재료가 있고 그런 재료로 만든 제품이 있고 그런 제품의 건강 기능 효과에 대한 주장도 있지만 최종 관문은 식약처의 ‘승인’이다. 그러니 식약처의 인증 마크를 기준 삼으면 된다. 물론 국가와 관료 집단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지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식약처의 건기식 인증 마크
식약처의 건기식 인증 마크
주목할 사실은 ‘보건 용도에 유용한 효과’라는 뜨뜻미지근한 구절이 식약처가 건기식에 부여한 최대치의 표현이란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건강 ‘향상’ 혹은 ‘개선’같은 선명한 용어를 찾아볼 수 없다. 국가 기관도 은근 몸을 사리는 영역인 게다. 확신이 없으니 장담하지 못하고 그러니 ‘기능성’ ‘보건 용도’, ‘유용한 효과’ 같은 자욱한 개념의 안개 뒤로 몸을 감춘다.

하지만 이런 국가 기관의 소심함은 타당하다. 확신에 찬 소리와 장담은 시장에서 고막 터지도록 듣는다. 정작 시장의 거침없는 낙관과 ‘의기투합’하는 주체는 소비자들이다. 식약처가 아무리 건기식은 약이 아니라고 부정한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것들에게 약이라는 지위를 부여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따라서 건기식에서 약으로의 ‘부당 승격’은 과학적 판단과는 무관한 문화적 결심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현재 한국 사회의 건기식은 이미 과학과 식품영양학의 손을 떠났다. 탕약(탕약)의 계보를 잇는 그것들에는 어떤 특별한 믿음의 부가 가치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그것들을 챙기는 경건함이 곧 영양소가 되니 설령 광고가 약속한 바 효험이 미흡한들 그 부족분은 믿음과 정성으로 채우면 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진 식탁 위 특별석은 정당하다. 먼지 쌓인 미개봉 용기들조차 식탁 한쪽의 영구 점유권을 누린다. 등장과 퇴장을 거듭하는 밥·김치·김보다 더 신성한 존재들이니까. 그것은 마치 산사 속 큰 바위 밑에 놓인 양초들처럼 누군가의 간절함이 담겨 있는 기도들이다. 하나하나가 경건한 빛을 발하는 건강 수호신이고 식탁 위에 모셔 두기만 해도 마음 든든한 부적이다.
국제선 면세품 카탈로그에 나온 건기식 시간표 (2023. 02 대한항공)
국제선 면세품 카탈로그에 나온 건기식 시간표 (2023. 02 대한항공)
주객전도에 대한 노파심
주어진 문화심리적 프리미엄을 십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조심해야 할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가자.

첫째, 건강보조식품(건보식) 같은 유사 개념의 ‘무단 횡단’만큼은 경계해야 한다. 건보식은 건기식보다 훨씬 헐렁하고 널찍한 범주여서 어떤 품목이든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다. 건기식과 달리 건보식은 국가 기관의 검증도 승인도 거치지 않는다. 한마디로 실체도 없고 의미도 불명확한 시장의 자의적 라벨이다.

건강이라는 명사는 ‘건강하다’는 긍정적 형용사와 늘 뒤엉켜 있다. 그래서 건강이라는 용어를 차용한 제품군들은 소비자의 기대와 관심을 유도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실로 ‘영양가 없는’ 상품들도 이런 기대를 숙주(宿主) 삼아 기생한다. 하지만 길가의 잡풀인들 영양이나 건강 보조성이 없겠는가.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영양 보조나 건강 보조가 아닌 식이 보조(dietary supplements), 영국에서는 식품 보조(food supplements)라는 중립적 용어를 쓴다.

둘째, 유행 주기에 대한 경계다. 건기식업계는 불안을 먹고 성장한다. 그래서 업계는 먼저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걱정을 자극한 다음 그 부풀려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사 제품을 내세우는 이른바 ‘퀵 픽스(quick fix)’ 수사학에 능하다. 사용자들의 전문 지식 부족과 건강에 대한 염려를 적당히 배합하면 최적의 제품 교체율과 소비 회전율이 조제된다.

이 때문에 업계가 내세우는 난해한 추출물과 신비한 성분들(예컨대 보스웰리아·후라보노·폴리페놀·프로폴리스·엘아르기닌·라이코펜·에스트로겐)에 쉽게 매료되면 곤란하다. 기적의 성분을 사용했다는 제품들은 대략 1~2년 안에 유행병이나 메뚜기떼처럼 시장을 휩쓸고 홀연히 사라지지 않았던가.

성분만이 아니라 제조법에 따른 유행도 가세한다. 요즘에는 그냥 오메가 3가 아니라 오메가 3 Rtg여야 한단다. 제조 기법이 바뀌면서 가격이 덩달아 오른다. 이런 유행이 광고나 유사 언론에서 잦아들고 소비자들 사이에 상식화될 무렵 업계는 초단타를 치고 빠지는 ‘떴다방’의 민첩함을 보인다.

셋째, 건기식의 극세분화도 염려스러운 경향이다. 종합비타민 대신 A, B, C, D, K 등 개별 성분 제품의 공세적 마케팅이 대표적 사례다. 또 개별 비타민 열기만큼 미네랄(minerals : 무기질) 구매도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필수 비타민으로 분류된 것만 해도 13종류인데 필수 미네랄도 13가지란다.

그뿐일까. 간에는 X크시슬, 눈에는 X테인, 장에는 X로바이오틱스, 관절에는 X드로이친, 전립선에는 X팔메토, 잇몸엔 X사돌, 점점 더 길어지는 이 행렬을 언제까지 뒤쫓을 수 있겠는가. 이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발톱이나 눈썹용 건기식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 않겠는가.

이렇듯 건강에 대한 통합적 접근보다 기능별·신체 부분별 세분화가 강해지면 그만큼 소비자 부담도 가중된다. 기본으로 챙겨야 할 가짓수가 늘다 보니 역으로 건기식 종합 세트 같은 통합 상품마저 등장한 형국이니 말이다.

아무튼 신체의 각 부분·성분·기능에 대한 개별적 대처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트렌드 변화에 자신의 신체와 건강을 맞춘다는 것은 어이없는 본말전도(本末顚倒)다. 밥과 건기식의 본말전도는 기정사실화됐다지만 그렇다고 몸과 건기식의 주객전도까지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건강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늘면 늘수록 소비 분별력 보다 오히려 신상품 구매 충동이 더 강해질 수도 있다. 다음엔 또 어느 회사가 무슨 신박한 제조법이나 기적의 추출물을 띄울지 촉각을 곤두세우기보다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관전하면 어떨까 한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