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와 LG가 이끈 경동…중앙은 ‘성시경 효과’로, 광장은 ‘낮술의 성지’로

[비즈니스 포커스]
옛 경동극장에 문을 연 스타벅스. 주말에는 이곳에서 공연도 열린다.
옛 경동극장에 문을 연 스타벅스. 주말에는 이곳에서 공연도 열린다.
“요즘 시장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휴일인 2월 19일 오후 5시에 찾은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만난 한 과일가게 상인은 최근 시장의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주춤했던 한파가 다시 찾아왔지만 그의 말처럼 시장 안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은 물론 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2030세대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이들이 내는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졌다.

건어물 가게에서 만난 30대 주부 감가연(가명) 씨는 “동네 엄마들에게 경동시장이 볼거리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가족과 함께 찾았다”며 “오랜만에 와 보는 시장인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여자 친구와 함께 시장 안을 걷고 있던 20대 안효준(가명) 씨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고 놀러 왔다”며 “경동시장은 처음 와 보는데 신기한 것들이 많아 재미있게 구경 중”이라고 했다.

경동시장을 비롯해 중앙시장·광장시장·금남시장 등 오래된 전통 시장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불고 있는 복고(레트로) 열풍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전통 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가장 그 이유로 꼽힌다. 40·50에게는 추억을, 20·30에게는 신선함을 주는 장소로 전통시장이 각광받는 것이다.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전통 시장에 다시 생기가 감돈다.

그중에서도 경동시장은 요즘 2030에게 최고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시장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젊은층이다. 지난해 말부터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LG전자, 경동시장 구세주로원래 경동시장의 주 고객층은 장년층이었다. 신선한 식재료와 약재를 구하려는 60대 이상이 주요 고객이었다. 이랬던 경동시장이 젊은이들의 명소로 떠오른 배경에는 2022년 말 문을 연 두 개의 점포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시장 상인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LG전자와 스타벅스코리아가 전통시장 상인들과 공존을 위해 오픈한 시장 내부에 만든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이하 스타벅스)’과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이하 금성전파사)’가 주인공이다. 오랜 기간 문을 닫은 채 방치돼 왔던 경동극장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스타벅스는 경동극장 상영관과 영사실 공간을 대규모 카페로 개조했고 LG전자는 매표소와 매점 등이 있던 자리를 전시관과 체험관으로 꾸며 젊은층의 발길을 유도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오픈과 동시에 이곳은 단숨에 경동시장을 넘어 제기동을 대표하는 명소로 소문이 나며 시장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이날 찾은 스타벅스와 금성전파사는 소문 그대로였다.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커피와 전시를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유입된 고객들은 시장 상인들의 매출에도 큰 도움이 될 듯 보였다. 스타벅스를 찾은 40대 주부 신혜원(가명) 씨는 “커피를 마시고 가족들과 함께 시장을 둘러볼 계획”이라고 했다.

시장 상인들도 이를 반긴다. 스타벅스 경동점 바로 앞에서 견과류 가게를 운영하는 A 씨는 “매출이 큰 폭으로 오르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다 보면 언젠가 장사도 더 잘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신당동에 있는 중앙시장도 경동시장과 함께 다시금 상권이 뜨거워지고 있는 대표적인 전통 시장이다. 스타벅스와 LG전자가 경동시장을 살린 계기를 마련했다면 중앙시장은 가수 성시경 씨가 시장을 부흥하게 만든 계기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그가 자신이 운영하는 맛집 유튜브에서 중앙시장 식당을 찾아 음식을 먹는 영상을 올린 이후 방문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성시경 씨가 찾은 식당은 중앙시장 입구 쪽에 자리한 ‘옥경이네 건생선’이다. 그가 이 식당을 찾아 유튜브에 올리자 이후 방방곡곡에서 이 가게를 찾아올 만큼 ‘전국구 맛집’이 됐다. 직접 찾아가 보니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2월 21일 이른 퇴근을 하고 6시쯤 이곳을 방문했는데 초저녁에도 불구하고 이미 가게 앞에는 긴 대기줄이 이어져 있었다.
‘성시경 효과’에 중앙시장 부흥
중앙시장은 '성시경 효과'를 누리며 잃었던 생기를 되찾았다.
중앙시장은 '성시경 효과'를 누리며 잃었던 생기를 되찾았다.
옥경이네 건생선에 사람이 몰리면서 침체됐던 시장도 다시 부흥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인근 ‘원조 닭내장탕’ 종업원인 C 씨는 “(옥경이네 건생선의) 긴 줄을 기다리다 지친 손님들이 결국 다른 식당들로 가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가게의 매출도 큰 폭으로 늘었다”고 했다.

유동 인구가 많아지면서 시장 점포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D 씨는 “손님들이 늘어나면서 젊은 사장들이 운영하는 술집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중앙시장 내부를 돌아보니 ‘심야식당 하마’, ‘작은 식당’, ‘난 절대 안주하지 않아’, ‘오빠 파이팅’ 등 깔끔한 외관을 한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 종로구 을지로 4가역 인근에 자리한 광장시장은 이른바 젊은층 사이에서 ‘낮술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광장시장은 365일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다. 빈대떡·육회·생선회·칼국수 등 다양한 메뉴를 파는 먹자골목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항상 북적인다. 2월 21일 찾은 광장시장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장을 찾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최근에 광장시장에 나타난 변화는 손님들의 연령대가 젊어진 것이다. 광장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E 씨는 “특히 요즘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손님들이 많이 와 술과 안주를 먹는다”며 “낮부터 손님이 밀려들다 보니 재료가 일찍 소진돼 6시 30분쯤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다”고 했다.
낮에도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는 광장시장.
낮에도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는 광장시장.
광장시장은 저녁에 퇴근한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회식 장소로도 유명했는데 점차 일찍 문을 닫는 가게가 많아 최근에는 예전만큼 저녁에 붐비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금남시장도 ‘완벽한 부활’까지는 아니지만 서서히 생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 같은 날 저녁 찾은 금남시장 인근 작은 골목에는 과거 세탁소나 슈퍼마켓들이 있던 자리를 ‘힙한’ 가게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금남정’, ‘십아로마’ 같은 작은 바들이 특히 많이 보였다. 다소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찾아왔는지 내부는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한 시장 상인은 “금남시장 주변 상권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시장에도 조금씩 이들이 유입되고 있다”고 했다.
금남시장도 인근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부활의 조짐이 보인다.
금남시장도 인근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부활의 조짐이 보인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금남시장은 낙후됐던 주변 상권에 하나둘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며 활성화될 조짐이 보인다. 부동산 관계자는 “금남시장 인근은 다른 지역에 비해 보증금과 임대료가 낮은 편”이라며 “청년들의 외식업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