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적 한계 극복하고 넷플릭스에서 TV쇼 1위 오른 ‘피지컬 : 100’의 성공 분석

몸의 원초적 미학에 K-예능도 날았다[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오징어 게임’과 ‘글래디에이터’가 만났다.”(영국 일간 가디언)

두 명작의 조합이라니, 최고의 극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체 어떤 드라마나 영화가 해외에서 이런 호평을 받은 걸까. 그런데 가디언의 기사를 읽어 보면 예상하기 힘든 장르의 작품 제목이 나온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 : 100’이다.

그동안 K-콘텐츠 열풍이 거세게 불었지만 한국 예능은 계속 소외돼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장르적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예능 최초로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에 올랐다. 놀라운 성적에 영국 방송 BBC는 한 발 더 나아가 ‘다음 한국 문화 트렌드는 K-리얼리티쇼?’라고 보도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K-예능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모든 이야기의 시작, 몸
2월 21일 종영된 ‘피지컬: 100’이 내세운 소재는 단순하고 원초적이다. 인간 모두가 갖고 있는 ‘몸’이다. 직품은 몸과 운동에 대해선 내로라하는 100명의 남녀 참가자가 3억원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은 물론 해외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처음엔 ‘몸 좋은 사람들이 게임을 같이 하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의외의 결과와 반전이 이어지다 보니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진다.

가디언의 평가처럼 ‘오징어 게임’과 ‘글래디에이터’의 장점도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작품엔 456명의 참가자들이 456억원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오징어 게임’의 게임 서사가 접목됐다. ‘글래디에이터’ 속 로마 제국의 근육질 검투사들을 연상케 하는 압도적인 피지컬의 참가자들과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몸은 인간이 해온 모든 이야기의 근원이자 시초다. 고대 그리스 신화, 르네상스 미술 등 다양한 장르 속 이야기엔 모두 몸이 있다. 현재 우리가 떠올리는 이상적인 몸의 조건과 형태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신화를 보고 들으며 신과 영웅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그들의 모습을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기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비르투비우스의 인체 비례도’를 보며 황금 비율을 알게 되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통해 이상적인 몸의 영웅의 이미지를 인지하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몸에 대한 이야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만 존재하는 박제된 이야기가 아니다. 공부·일·재테크 등에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에도 늘 흐르고 있는 오늘의 이야기다. 몸은 오늘날에도 개인의 삶과 역량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이자 기초 자산이다. 이런 생각은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장년층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도 몸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운동을 하거나 한 후의 사진을 찍은 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오운완(오늘의 운동 완료)’ 해시태그를 걸어 올리는 이들이 많다. 젊은 날의 자신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멋진 몸을 만들어 ‘보디 프로필’ 촬영에 도전하기도 한다. 경기 침체,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과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몸만은 땀 흘린 만큼, 마음을 다 쏟은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와 보람을 안겨준다. 그래서 몸은 자존감을 지켜 주고 내력을 키워 주는 핵심 동력이자 최후의 보루가 돼 준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화두인 몸에 철저히 집중한 ‘피지컬 : 100’의 전략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했다. 원래 K-예능이 가진 장르적 한계는 컸다. 각 지역과 나라별로 ‘웃음 코드’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예능이 완성작 자체로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해외 제작사가 현지 출연자를 출연시키고 내용을 현지 사정에 맞게 변형할 수 있도록 작품의 형식과 틀에 해당하는 ‘포맷’을 판매한 게 거의 전부다.

그렇다고 넷플릭스 등 OTT 업체들이 예능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쉽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상 콘텐츠가 예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모두 통하는 예능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넷플릭스는 ‘범인은 바로 너!’, ‘솔로지옥’ 등 다양한 예능을 잇달아 선보였지만 큰 성공작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견고한 장벽을 ‘피지컬 : 100’이 깨뜨리고 세계적인 흥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몸이 가진 비언어적 특성의 영향이 크다. 굳이 온갖 말들로 웃음을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됐다. 몸이 보여주는 격정적인 움직임과 에너지만으로 충분했다. 각종 아이디어가 동원된 복잡한 추리 예능에 비해서도 훨씬 단순하지만 몸은 온전히 그 하나로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수 있었다.

작품에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그리스 신화를 접목한 것도 문화의 장벽을 허무는 데 일조했다. 50kg의 공을 들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미션엔 ‘아틀라스의 형벌’, 언덕을 오르며 100kg의 공을 굴리는 미션엔 ‘시시포스의 형벌’, 외줄 오르기 미션엔 ‘이카루스의 날개’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효과는 컸다. 그리스 신화 속 장면과 참가자들의 미션 장면이 오버랩되며 더욱 익숙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강렬한 육체의 이미지가 신화적 환상과 결합돼 신비로움이 극대화됐다.
◆토르소를 깨부수고 도약할 K-예능
하지만 ‘피지컬 : 100’이 아무리 몸을 내세웠어도 단순히 힘을 자랑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이상적인 몸의 조건에 근육과 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첫 미션부터 그랬다. 팔씨름 정도가 나올 줄 알았지만 의외로 오래 매달리기가 미션으로 주어졌다. 이 경기에선 웬만한 남성들보다 오래 매달려 있었던 여성 참가자들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참가자가 오히려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특정 체급이나 체형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스피드·체력·민첩성 등이 중요한 경기들을 하나씩 해 나가며 각자의 장점을 충분히 살렸다.

그만큼 다양성은 이 작품의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피지컬 : 100’엔 엄청난 근육질의 몸부터 말랐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 등 각양각색의 체형과 체급을 가진 참가자들이 출연했다. 멋진 몸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비결도 각자 달랐다. 작품엔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파이터 추성훈, 체조 선수 양학선 등 유명 운동 선수는 물론이고 산악구조대원·소방관·교도관 등 공익을 위해 스스로를 혹독하게 단련해 온 사람들이 출연했다. 댄서·뮤지컬 배우·보디빌더 등도 자신이 맡은 일을 더욱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가꿔온 몸을 뽐냈다. 각자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이 나온 덕분에 경기는 더욱 풍성하고 흥미롭게 전개됐다.

‘피지컬 : 100’은 성별의 경계 또한 허물었다. ‘강철부대’, ‘더솔저스’ 등 밀리터리 예능이 남성 중심이었다면 이 작품에선 여성 참가자의 활약도 돋보였다. 여성 참가자끼리 치열하고 멋진 경쟁을 벌인 장면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전에 없던 예능의 탄생 배경엔 이색적인 제작진의 조합이 깔려 있다. ‘피지컬 : 100’은 ‘PD수첩’ 등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만든 MBC 장호기 PD가 넷플릭스에 직접 기획안을 만들어 제안하고 연출까지 맡았다. 영화 ‘기생충’에 참여한 최세연 의상 감독,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참여한 유재헌 미술 감독 등도 함께했다. 서로 비슷한 듯 다른 분야에 있었던 전문가들이 모인 덕분에 기존의 공식을 벗어난 참신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물론 K-예능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다양한 지역과 나라에 통용될 만한 소재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큰 웃음과 감동을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많은 인기를 얻은 ‘피지컬 : 100’조차 수많은 과제를 남겼다. 출연자의 과거 폭력 논란 등이 일며 종영 간담회가 취소되기도 했다. 종영 이후엔 결승 재경기 논란까지 불거졌다. 앞으로 K-예능의 지속적인 확산과 발전을 위해선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출연자에 대한 검증, 리얼리티 쇼의 ‘리얼리티(실재성)’ 확보가 더욱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피지컬 : 100’ 참가자 중 패배자들은 자신의 몸을 석고로 본뜬 ‘토르소’를 직접 깨부숴야 한다. 현재 몸도 멋지긴 하지만 완벽한 몸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의 퍼포먼스에 굴욕감을 느끼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몸에 만족한다면 더 나은 몸이 될 수는 없다. K-예능 또한 마찬가지일 것 같다. 현재 찾아온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토르소를 깨부수고 나아간다면 더욱 멋진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까. K-예능이 한류 열풍의 명실상부한 주역이 되는 날이 기다려진다.

김희경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