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업무 효율 일거양득 효과
SK이노베이션·현대제철 등 ‘4조 2교대’ 도입 확산

[비즈니스 포커스]
SK이노베이션의 주력 생산기지인 울산 CLX(콤플렉스)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의 주력 생산기지인 울산 CLX(콤플렉스)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4조 3교대’ 근무가 중심이었던 정유화학·철강업 등 산업 현장에서 최근 ‘4조 2교대’ 근무 바람이 불고 있다.

4조 2교대는 4개조 중 2개조가 12시간씩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고 나머지 2개조는 쉬는 근무 형태다. 기존 4조 3교대와 비교해 연간 근무 시간은 같지만 연간 휴무일이 2배 정도 늘어나기 때문에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다.

4조 2교대는 이틀 일하고 이틀을 쉬거나 사흘 일하고 사흘을 연이어 쉴 수 있다. 개인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직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된다. 4조 2교대 근무제에서 하루 근무 시간이 기존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4시간 늘지만 연간 출퇴근 횟수와 연간 교대 횟수가 대폭 축소되는 이점이 있다.

연간 휴무일이 180여 일에 달해 1년에 절반 이상을 휴무일로 쓸 수 있다. 노동자는 출퇴근 횟수가 줄어 비용과 시간이 절감되고 회사는 교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작업 로스를 줄일 수 있어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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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2시간 일하면 1년에 180일이 휴일

SK이노베이션 울산CLX는 2023년 2월 8일부터 4조 2교대로 전면 전환했다. 노사는 2022년 1년간 4조 2교대를 시범 운영한 결과 구성원의 업무 몰입도 향상, 생체 리듬 안정화를 통한 건강 검진, 일과 삶의 균형이 이뤄졌다는 데 공감했다.

SK지오센트릭의 한 직원은 “4조 2교대로 일할 때는 확실하게 일하고 쉴 때는 푹 쉴 수 있게 될 것 같다”며 “구성원 행복 측면에서도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자기 개발 등 워라밸에서도 만족도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애경케미칼 울산공장도 ‘일할 때는 더 집중적으로 일하고 쉴 때는 제대로 쉬고 싶다’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3개월의 평가 기간을 거쳐 2022년 12월부터 4조 2교대 근무로 본격 전환했다.

애경케미칼의 내부 설문 결과 직원들은 △휴일 증가에 따른 삶의 질 향상 기대 △출퇴근 횟수와 비용 감소 △교대 횟수 감소에 따른 업무 연속성 유지 등을 4조 2교대의 장점으로 꼽았다. 애경케미칼은 울산공장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생산 공장에도 4조 2교대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종화 울산공장장은 “4조 2교대 근무제 시범 운영 결과 일과 삶의 균형 유지 등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 효율성도 향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24시간 공장이 돌아가야 하는 특성상 4조 3교대를 채택하고 있었지만 에쓰오일 울산공장이 2021년 1월 업계 최초로 4조 2교대를 도입한 이후 이 같은 근무 체계 전환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4조 2교대를 시행 중이고 LG화학과 롯데케미칼도 시범 운영을 검토 중이다. 현대제철은 2023년 3월 26일부터 본격 도입하기로 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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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포스코는 이미 정착

포스코는 정준양 회장 재임 시절인 2010년부터 4조 2교대를 시범 운영한 뒤 2011년 전면 도입하면서 연간 휴무일이 기존 4조 3교대(103일)보다 191일로 88일 늘었다.

정준양 전 회장은 직원 삶의 질 향상과 제품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4조 2교대를 도입했다. 그는 포스코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선 ‘우향우 정신(옛 포항제철 건립 당시 실패하면 우향우해 동해에 빠져 죽는다는 각오)’과 ‘상명하복’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보고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추진했다. 4조 2교대 도입을 통해 현장 직원들의 삶의 질 향상과 늘어난 휴무일을 활용한 지식 역량 강화를 꾀했다.

도입 초기에는 고된 업무 강도로 인해 12시간 연속 근무에 대한 체력적인 부담감을 호소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당시 4조 2교대 반대 의견이 99%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반대의 주요 이유는 ‘2조 맞교대다’, ‘사람 잡는다더라’, ‘월급이 줄어들지 모른다’, ‘다른 곳은 몰라도 뜨거운 쇳물과 무거운 철강을 다루는 포스코는 12시간 근무가 무리다’, ‘안전사고가 빈발하고 직원들의 사기와 품질이 떨어질 것이다’ 등이었다.

포스코는 상호 공감대 형성을 위해 ‘4조 2교대 노사 합동 연구반’을 구성해 유한킴벌리, 블루스코프 스틸 제철소 운영 사례 등을 벤치마킹하고 4조 2교대가 직원들의 삶의 질과 회사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시범 운영 기간 동안 직원들은 연속 야간 근무 일수 감소, 휴게 여건 개선, 휴무일 증가 등의 효과를 확인했고 본격 도입을 위한 투표에서는 찬성률이 94%가 나왔다.

유한킴벌리는 경영 위기로 인한 유휴 인력 해소를 목적으로 한국 기업 중 처음으로 1998년 4조 2교대를 도입했다. 체계적인 평생 학습으로 직원 개개인의 삶의 질은 물론 회사의 경쟁력 향상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1997년 국가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도 인력 감축보다 사원들에게 평생 학습을 통한 성장 기회를 부여해 직원들의 애사심 증가와 함께 평생 학습에 따른 품질·생산성 향상, 재해 감소, 원가 절감이 이뤄져 회사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다.

인력 충원 없던 코레일, 안전사고 급증

MZ세대가 4조 2교대를 선호하는 이유는 연속으로 길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4일 연달아 일하고 4일 쉬는 근무 형태라면 연차 2일만 사용하면 1주일 정도 휴가를 사용할 수 있어 해외여행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해당 공장이 있는 지역 사회에서는 지역 경제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휴무일이 길어지는 만큼 이전에는 공장이 있는 해당 지역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던 노동자들이 여행 등 외지로 떠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2015년 포스코의 4조 2교대 시행으로 회식이 줄어 매출 감소를 겪은 경북 포항과 전남 광양 지역 일부 상인들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포항·광양제철소 근무 형태를 기존의 4조 3교대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한 예다.

4조 2교대를 모두 반기는 것은 아니다. 업종과 연령에 따라 찬반이 갈리기도 한다. 하루 12시간으로 근무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업무 강도가 높은 업종에는 산재 발생 우려가 커져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한화솔루션 여수공장은 4조 2교대 도입에 앞서 노조가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50대 이상 직원의 반대 의견이 많아 부결됐다. 낮밤이 바뀌는 주야간 교대 근무는 생체 리듬을 깨뜨려 신체에 부담을 준다. 국제암연구기구(IARC)가 2007년 주야간 교대 근무를 납이나 자외선과 같은 2A급 발암 물질로 분류하기도 했다. 도입 전 노사 간 충분한 사전 준비와 의견 수렴이 필요한 이유다.

인력이 제대로 확충되지 않은 상태에서 4조 2교대를 도입하면 인력난과 숙련도 저하로 안전사고가 증가할 수도 있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2020년부터 4조 2교대를 시범 운영해 왔지만 도입률이 91~92%에 육박해 사실상 근무 체계를 전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코레일은 4조 2교대 전환 이후 철도 사고가 급증했다. 2022년 말 퇴근길 수도권 1호선 전철이 한강철교 위에서 2시간 동안 멈춰 선 사고가 발생했는데 당시 열차를 몰던 기관사는 5개월 차 신입 직원이었고 해당 열차를 견인한 열차의 기관사는 13개월 차여서 사고 수습이 지연됐었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인력 확충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4조 2교대 근무를 확대하며 인력난이 심해지고 숙련도 역시 떨어졌다며 기존 3조 2교대로 환원하도록 최근 시정 명령을 내렸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