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강제 징용 보상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 제시
일본의 수출 통제 해제와 지소미아 정상화 기대
공급망 불확실성, 주요국과 긴밀한 관계 유지하며 돌파해야
최근 윤석열 정부의 동맹 외교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미·중 갈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 요인에다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볼 수 있다. 3월 중순 한·일 정상회의에 이어 4월에는 한·미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될 선진 7개국 정상회의(G7) 기간 한·미·일 정상회의는 올해 윤석열 정부의 최대 외교 행사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한·미·일 동맹 관계를 굳건히 다지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3월 6일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 배상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공식 발표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대법원 확정 판결 피해자들에게 판결금 등을 변제해 주는 ‘제3자 변제’ 방식을 제시했다. 재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수혜 기업인 포스코와 한국전력 등 한국 기업의 기여로 조성하기로 했다. 이 방식은 강제 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의 정치권과 학계에서 제기했던 것이다. 가해자인 일본 기업의 보상과 일본 정부의 사죄를 주장하는 측도 있지만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을 결정한 것은 국제 정세상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가치와 신뢰 기반 글로벌 공급망의 확충을 모색해 온 한국은 바이든 미 행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대기업은 첨단 기술에 대한 미국의 국내 공급망 구축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수차례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언급하며 치켜세운 바 있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대응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동맹 강화가 그 무엇보다 절실하다. 2019년 불화수소 등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첨단 물질의 한국 수출에 대한 일본의 수출 통제와 백색 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에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중단을 발표했다. 지소미아 중단은 군사 작전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게 돼 미국은 당시 한국 정부를 설득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했다.
강제 징용 보상 문제에 대한 한국의 해결 방안 제시로 일본의 수출 통제 해제와 지소미아가 정상화될 것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일본보다 미국에서 더 강하게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획기적인 새로운 장(groundbreaking new chapter)을 여는’ 조치로 평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오늘 한·일의 발표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두 국가 간의 협력에서 획기적인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밝혔다.
현재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공급망 불확실성에 대응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합당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평가된다. 큰 틀에서 보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1999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유지하면서 한·일 관계의 최대 쟁점을 제3자 변제 형식으로 돌파한 것이다. 하지만 여러 반일 단체의 성명 발표에서 보듯이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과 회복력 강화는 전 세계 국가의 최대 당면 과제다. 기초 과학과 지하자원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세계 6위 수출 국가와 10위 경제 국가로 발전한 한국은 어떤 국가보다 주요 교역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더구나 첨단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물질을 필요로 하고 이들 물질 모두를 한국에서 조달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선진국인 일본이 정치·사회적인 이슈를 이유로 수출 통제를 발동한 것은 아쉽지만 장기간 국제 분쟁 문제로 대두된 사안에 대해서는 전략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번 한국의 선제적인 결정에 대해 일본이 성의 있는 후속 조치를 실행할 때 한국의 반발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일본 가해 기업은 직접적으로 배상하지 않더라도 한국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미래청년기금’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한·일 관계 정상화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일 관계를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 일본은 한국이 추격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현재는 수평적 협력 분야가 많은 국가다. 어려운 글로벌 통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우방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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