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전략으로 실적 개선 어려워…2030 타깃해 ‘사고 싶은 제품’ 만들기 위한 시도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브랜드 설화수가 리뉴얼을 단행하고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브랜드 설화수가 리뉴얼을 단행하고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묵직한 유리병에 적힌 ‘雪化秀(설화수)’가 사라졌다. 외관 테두리와 용기 전체를 감싸며 설화수의 대표 색상으로 인식돼 온 골드 빛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남은 것은 영문으로 적힌 ‘Sulwhasoo(설화수)’와 시그니처 색상이 된 진한 주황색뿐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설화, 다시 피어나다’를 브랜드 표어로 정하고 브랜드 리뉴얼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5060세대가 선호하는 ‘엄마 선물’의 대표 상품으로 꼽힌 설화수가 전략을 바꾸고 있다. 한국에서는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해외에서는 중국이 아닌 미국으로 주요 시장을 변경했다. 일각에서는 고급스러움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생존을 위해 이 같은 선택을 했다. “이거, 윤조에센스 맞아?” 얼마나 바뀌었길래아모레퍼시픽이 한방 화장품으로 유명한 설화수를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를 브랜드 모델로 발탁하면서다.

이후 설화수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윤조에센스 6세대’가 대표적인 리뉴얼 제품이다. 지난 2월 아모레퍼시픽은 스테디셀러에 해당하는 윤조에센스의 외관 등을 리뉴얼해 재출시했는데 용기의 유리 중량을 줄이고 외관에 적힌 한자를 제거했다. 5세대까지 유지해 온 용기 뚜껑의 금색 테두리도 없앴다.

2020년 4월 윤조에센스 5세대를 선보인 이후 약 3년 만의 변화다. 아모레퍼시픽이 2015년 윤조에센스 4세대를 선보이고 2020년 5세대로 개선할 때까지만 해도 제품 메인에는 ‘雪化秀’가 빠지지 않았다. 영문 소개글은 제품 하단에 이보다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고 그보다 더 아래에 한글로 ‘윤조에센스’가 쓰여 있었다. 한글 표기는 5세대 리뉴얼 당시 사라졌다.

그런데 6세대 제품에서는 한글에 이어 한자까지 사라졌다. 주황색의 영문 ‘Sulwhasoo’가 메인을 차지했다. 짤막한 영문 설명 글이 있지만 외관과 비슷한 색으로 적혀 있어 눈에 띄지 않아 멀리서 보면 ‘Sulwhasoo’만 적힌 것처럼 느껴진다.

리뉴얼이 알려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부정적인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설화수가 왜 이니스프리로 변했나”, “이걸 어떻게 어르신들 선물용으로 사냐”,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좋았는데 로드숍 화장품 같다”, “젊은 사람들한테 통하려면 디자인을 바꿀 게 아니라 가격을 내려야지” 등의 반응도 나왔다.

설화수는 그간 중년층 이상이 사용하는 한방 화장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젊은층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타깃이 중·장년층인 만큼 가격대도 평균 10만~20만원대이고 일부 제품은 80만원에 판매하는 것도 있다. 실제 설화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캠페인 영상에서 로제 역시 설화수를 설명하면서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쓰던(제품)”이라며 “화장품을 잘 안 바꾸는 스타일인데 이번에 엄마 말을 듣고 써봤다”고 설명했다.

‘어른들 선물 화장품’, ‘예단 화장품’이라는 것은 아모레퍼시픽도 알고 있다.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커스텀 포장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방문 판매를 통한 보자기 포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설화수에서 의미 있는 선물 포장을 완성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리뉴얼에 대한 일부 반응은 부정적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리뉴얼에 대한 일부 반응은 부정적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설화수의 핵심 전략, ‘선망성 되찾기’설화수는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브랜드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 매출에서 럭셔리 브랜드(설화수·헤라 등)가 차지하는 비율은 56%인데 이 가운데 설화수의 비율만 36%다. 설화수의 매출이 전체 럭셔리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 들어 럭셔리 화장품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매출은 2021년 1조6722억원에서 지난해 1조4440억원으로 14% 감소했다. 1조9480억원을 기록한 2019년과 비교하면 26% 줄어든 수치다.

이 때문에 리뉴얼에 대한 반발이 나옴에도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를 바꾸고 있다. 특히 국내와 국외의 시장 상황 변화, 신규 고객 유치를 통한 실적 개선 등이 주된 이유다.
윤조에센스 디자인 변화 모습. (사진=아모레퍼시픽)
윤조에센스 디자인 변화 모습. (사진=아모레퍼시픽)
우선 시장의 변화다. 한국에서 결혼 문화가 간소화되며 예물·예단을 생략하는 추세가 확산되면서 예물 화장품, 선물용 화장품으로 마케팅을 하기에는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실제 신한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보통 사람 금융 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예단과 예물 비용은 48만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 타깃 시장이 바뀐 영향이다. 그간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을 중심으로 설화수를 적극적으로 알려 왔다. 중국 내에서 설화수는 LG생활건강의 ‘후’와 함께 럭셔리 화장품이라는 이미지를 확보하게 됐고 현지에서는 ‘설안수’, ‘설연수(설련수)’ 등 설화수와 비슷한 짝퉁 브랜드까지 나올 만큼 반응이 좋았다. 2017년 아모레퍼시픽은 면세점 기준 1인당 브랜드별 최대 5개만 살 수 있다는 구매 제한을 두기도 했다. 다이궁(중국 보따리상)이 설화수를 쓸어가자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겠다는 시도였다.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며 현지 화장품 시장을 주도해 왔지만 최근 몇 년간 자국 화장품의 입지가 확대되고 글로벌 뷰티 브랜드 매출이 증가하면서 ‘K-뷰티’의 영향력이 축소됐다.
설화수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틸다 스윈튼을 발탁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설화수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틸다 스윈튼을 발탁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해외 사업을 북미 중심으로 바꾸고 ‘글로벌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3월 13일 브랜드 모델로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배우 틸다 스윈튼을 발탁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도 같은 전략이다. 그 결과 설화수는 북미 지역에서 멀티 편집숍 세포라를 중심으로 매출이 늘고 있다. 설화수는 향후 1년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문화유산의 보존과 현대적 계승을 위한 다양한 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하나는 신규 고객을 유치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존 타깃인 중·장년층에서 고객층을 확대해 2030세대까지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의 핵심 사업 전략을 ‘브랜드 선망성 강화’로 설정했다. 설화수를 ‘엄마 선물용’이 아닌 ‘내가 사용하고 싶은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로제와 틸다 스윈튼 같은 마케팅 모델을 활용하면서 리브랜딩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브랜드 인지도와 접근성을 확대하겠다는 시도다.

절반은 성공이다. 유튜브 공식 채널에 게재된 로제 캠페인 영상 가운데 2건은 조회 수 200만 회를 넘겼고 이달 올린 윤조에센스 6세대 광고 영상은 조회 수 131만 회를 기록했다. 같은 날 게재한 2건의 다른 영상도 각각 조회 수 89만 회, 32만 회를 기록하며 온라인에서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구독자가 2만5600명인 것과 비교하면 비교적 높은 조회 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젊은층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자주 보이거나 유명 인플루언서가 사용한다고 하면 직접 구매해 사용해 본다”며 “적극적인 소비 성향이 있고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가 이들에게 통한다면 충분히 고객층이 더 넓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