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패소→2심 일부 승소
발전기 연도 불량 공사 책임 인정, 284억원 배상 판결

[법알못 판례 읽기]
2014년 4월 20일 경기 과천시 별양동 삼성 SDS 과천센터 발전기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2014년 4월 20일 경기 과천시 별양동 삼성 SDS 과천센터 발전기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2014년 과천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와 관련해 운영사인 삼성SDS가 다른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이 매듭지어졌다.

대법원은 데이터센터의 공사를 맡은 삼성중공업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테크윈), 공사 재하도급 업체 등 3곳이 합계 283억8000만원을 삼성SDS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최근 확정했다.

데이터센터 화재를 둘러싼 손해 배상 소송의 결말이 9년 만에 나오면서 2022년 ‘카카오톡 먹통’을 불러온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가 소송전으로 비화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발전기 공사 맡은 업체가 배상해야”

2014년 4월 발생한 과천 데이터센터 화재는 정전에 대비한 무정전 전원 공급 장치(UPS) 증설 작업 중 발생했다. 비상 발전기를 4시간 동안 가동하던 중 3층 연도(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 부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건물 11층까지 타고 올라가 전산 장비 서버, 기계‧전기 설비, 비상 발전기 연도, 컴퓨터 등이 불에 탔다.

당시 삼성SDS 과천 데이터센터에는 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등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었다.

삼성SDS는 삼성카드의 서버 피해를 막기 위해 서버를 차단했고 이 때문에 온라인 결제 서비스가 수일간 중단되는 일도 벌어졌다. 삼성SDS는 손해를 본 삼성카드 등에 보상금을 지급했다. 화재 손실, 복구 비용, 영업 중단 손실, 고객‧협력사 손실 보전 비용을 합해 전체 손해액은 945억7000만원 정도로 집계됐다.

이후 삼성SDS는 발전기 연도 공사를 맡은 삼성중공업·한화에어로스페이스·대성테크가 공동으로 683억6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발전기 공사에 문제가 있어 화재가 발생했으니 공사를 담당한 업체들이 손해액 일부를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2차 시운전 때 연기‧불꽃 발생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중공업·한화에어로스페이스·대성테크가 데이터센터 발전기 4대의 교체와 증설, 발전기 연도 증설 공사를 맡았다. 시운전도 두 차례 이뤄졌다.

2012년 발전기 1대의 시운전 과정에서 부속 건물 옥상을 관통한 연도면과 옥상 바닥면에 도포돼 있던 콜타르가 녹아 내리면서 연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일부 보강 공사가 진행됐고 2주 뒤 2차 시운전이 진행됐다. 그런데 2차 시운전에서도 발전기를 가동한 지 20~30분이 지나 과거와 비슷한 곳에서 불이 났다.

“콜타르를 제거하고 단열 처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물질 제거 외에 별다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발전기 공사를 맡은 업체들은 공사를 마쳤다며 삼성SDS에 데이터센터를 인도했다. 결국 시운전 때 문제가 생겼던 발전기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1심은 삼성중공업 등의 설계‧시공상 하자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삼성SDS에 패소 판결했다. 화재 이후 발전기 제작 업체 직원 등이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은 점도 이 판결의 근거가 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직원들은 1‧2차 시운전 당시 과열 현상, 불꽃 발생 현상 등을 경험했지만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원은 공사를 불량하게 했다거나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심 “불꽃 발생했지만 보완 조치 안 해”

그런데 삼성SDS가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 판결은 2심에서 뒤집혔다. 재판부가 발전기 공사에 하자가 있어 화재가 발생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SDS는 항소를 제기하면서 손해액은 1069억원으로 늘렸지만 손해 배상 청구액은 583억6000만원으로 다소 줄였다. 2심 재판부는 이 중 283억8000만원을 삼성중공업 등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심은 1호 발전기 연도와 옥상 바닥면 사이 이격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점이 화재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1·2차 시운전 과정에서 연도 과열에 따른 불꽃과 연기가 발생했음에도 적절한 보완 조치를 시행하지 않은 채 공사를 종료하는 위법 행위를 했고 그로 인해 이 사건 화재가 발생했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들의 손해 배상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법 이념을 따른 것이다. 삼성SDS는 건물 관리를 맡았던 에스원을 상대로도 소를 제기했지만 법원은 에스원이 위탁 계약을 위반하거나 위법 행위를 저질러 데이터센터 화재 확대에 기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1심과 같이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 “무죄 판결과 손해 배상 책임은 별개”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피고 측은 상고심에서 직원들이 형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점을 손해 배상 책임이 없다는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형사 재판에서 판사가 유죄 판결을 내리려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엄격하게 증명돼야 한다며 무죄 판결이 났다고 해서 그 사실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위 형사 판결은 이 사건 화재의 원인으로 공소 사실에 적시된 용접 결함에 따른 배기가스의 누출이라는 사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뿐 그런 사실의 부존재가 증명됐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다”라며 “형사 판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 오해, 이유 모순, 판단 누락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했다.


[돋보기]
2022년 10월 15일 발생한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경기 과천의 한 카카오T 주차장 무인정산기에 시스템 장애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2년 10월 15일 발생한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경기 과천의 한 카카오T 주차장 무인정산기에 시스템 장애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카카오 먹통 사태’ 불러온 SK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수천억원대 소송전 번지나


2022년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데이터센터에는 카카오‧네이버 등 빅테크가 입주해 있었다.

특히 카카오는 총 3만2000여 대의 서버를 이 데이터센터에서 가동했다. 카카오톡·카카오T·카카오맵·카카오뱅크 등 카카오의 여러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 모든 서비스가 완전히 복구되기까지는 127시간 30분이 걸렸다.

카카오는 5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보상안을 실시했다. 소상공인 피해 보상과 카카오톡 이모티콘, 톡서랍 플러스 이용권, 카카오 메이커스 쿠폰 등을 통해서다. 게다가 카카오는 소상공인 피해 접수를 계속해 받고 있다. 최종 보상금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화재에서 SK C&C는 배터리실‧UPS실‧발전기실을 제대로 분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1차적 책임이 있다고 한다. 카카오는 피해 보상을 마무리한 뒤 데이터센터를 운영한 SK C&C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SK C&C가 카카오 등에 보상금을 지급한 뒤에는 화재 원인과 관련해 다른 업체들에 손해 배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데이터센터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내부 발화 가능성을 꼽았다. 데이터센터 내 리튬이온배터리는 SK온이 공급했다.


최한종 한국경제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