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절차·실체적 하자 없어”
GTX-C도 은마아파트 주민 반대로 갈등 중

[법알못 판례 읽기]
GTX-A 노선 정차역인 서울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삼성역) 건설 현장. 사진=한국경제신문
GTX-A 노선 정차역인 서울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삼성역) 건설 현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수도권 주변 도시들과 서울을 이어 주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공사가 하나의 고비를 넘기게 됐다.

법원이 GTX-A 노선 건설 사업을 취소해 달라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주민들의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다. 이들은 GTX-A 노선이 제대로 된 환경 영향 평가 없이 진행된다며 사업 승인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이와 같은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주민들 “GTX-A 환경영향평가서 못 믿어”

사건은 GTX 노선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가 시작되며 불거졌다. GTX-A는 경기 파주 운정역에서 서울 삼성역을 거쳐 경기 화성 동탄역까지 82.1km 구간을 잇는 노선이다. 처음 계획은 한강과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것이었지만 예비 타당성 조사 등을 거치며 최적 노선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올림픽대로 하부와 청담동 일대를 통과하는 안으로 바뀌었다.

이에 청담동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변경된 노선 지상에 살고 있는 청담동 주민 247명은 “GTX-A 청담동 구간은 지반 침하로 인한 주택 붕괴 위험이 아주 큰 지역”이라며 “이곳에 열차 터널을 짓는 계획에 하자가 있다”고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사업 실시 계획 승인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주민들이 사업 취소를 주장한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주민들의 의견 청취 절차가 충분하게 이행되지 않았고 △환경영향평가서에서 소음·진동 항목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았고 △실시 설계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사업 승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특히 환경영향평가서는 아예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고층 건물에 필수인 콘크리트 파일의 영향을 누락한 모델을 적용해 진동 흡수 능력이 뛰어난 토사층만을 강조했다”며 “(누락 모델에서는) 건물에 대한 진동을 57.2dB로 예측했지만 실제 콘크리트 파일에 의한 영향을 고려해 예측되는 진동은 약 94dB로 허용 기준을 크게 초과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이 사건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열차의 진동이 레일 기반 하부에서만 집중적으로 나타날 뿐 위쪽으로 퍼지지 않고 소멸되는 것으로 예측돼 있다”며 “진동 예측 방향의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고 부연했다.

주민들은 소송을 제기한 이후에도 GTX-A 노선 굴착 작업 이후 극심한 발파 소음과 주택 일부에서 균열·뒤틀림 등이 있었다며 불안감을 호소해 왔다. 그러면서 “국토부는 4가지 노선안 중 이 사건 구간의 노선을 결정하면서 ‘노선 결정’, ‘안정성’, ‘소음’, ‘진동’에 대한 이익 형량을 사실상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GTX-A) 터널 공사 현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GTX-A) 터널 공사 현장. 사진=한국경제신문
1심 “안전 문제 없다”

재판부는 국토부의 손을 들어줬다. 우선 주민들의 주장과 다르게 의견 청취 절차가 충분하게 이행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강남구청장은 청담동 노선이 지하 터널로 통과할 예정인 모든 지번에 대해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발급받은 후 2018년 11월 16일 등기부상 확인되는 모든 토지 소유자와 관계인에게 의견 청취 공고를 등기우편의 방법으로 총 383통을 발송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소송 대표자들 17명 중 78% 이상도 이를 받았고 사업 실시 계획과 관련된 서류를 열람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환경 영향 평가 역시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콘크리트 파일이 아닌 토사층을 잰 것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진동 측정 관련 규정에 따르면 ‘측정점은 피해가 예상되는 곳의 부지 경계선 중 진동 레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택한다’고 정해져 있다. 즉 건축물의 바닥을 기준으로 측정한 결과에 위법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콘크리트 파일을 측정점으로 둘 경우에도 발파 지점과 콘크리트 파일의 거리가 30m 이상 떨어져 있다”며 “거리가 떨어질수록 소음과 진동의 영향은 급격하게 감소하는 점을 고려하면 예측 결과가 법적 허용 기준 범위를 훨씬 초과한다고 볼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실시 계획 검토에도 충분한 검토가 있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 예타 조사, 기본 계획 보고서 작성을 통해 경제성 검토 및 적격성 판단 등을 거친 결과, 대안 노선으로 청담동 노선이 제시됐다”고 말했다.

또한 “강남구청은 사유지 저촉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한강 우회 노선을 제시했지만 이는 청담동 노선보다 3배가 길어져 방재(防災)의 측면에서 불리하고 노선 모양이 S곡선이 돼 열차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 외에도 재판부는 청담동 지역에 암질지수가 ‘매우 양호’ 혹은 ‘양호’한 기반 암층이 분포해 하부에서 시행되는 터널 굴착의 영향이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선정 당사자(소송 대표)인 주민 17명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돋보기]
끝없는 지하 터널 사업 갈등…5년 전에도 판박이 주민 소송

지하 터널 사업은 소음과 진동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이에 따라 터널 부지 인근에 주거지가 있는 경우 주민과 정부 간의 소송이 이어지곤 한다. 5년 전에도 청담동 주민들의 소송과 유사한 소송이 있었다. 2018년 인천 중구 삼두1차 아파트 주민들의 소송이다.

2017년 3월 개통된 인천김포고속도로는 인천시 중구 남항 사거리∼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48번 국도 하성삼거리 28.88km를 잇는 고속도로다. 해당 도로는 최초 설계와 달리 중·동구 주거 지역을 통과하는 길이 5.4km의 인천 북항터널을 포함하는 안으로 설계가 변경됐다.

이에 지하 터널이 관통하는 삼두아파트 주민들은 “협의도 없이 도로를 변경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주민들의 소송을 기각했다.

주민들은 2018년 11월 건설사 등을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도 함께 진행했다. 이 터널 공사로 인해 학교와 교회, 아파트 단지의 균열과 땅 꺼짐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2021년 12월 다시 한 번 주민 패소 판결을 내렸다.

삼두1차 아파트와 인근 교회에서 발생하는 붕괴 현상은 북항 터널 공사와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주민들은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재감정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 터널 사업으로 파생된 갈등이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관통하도록 설계됐다. 이에 은마아파트 주민들 역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서울 한남동 자택 앞에서 스피커·현수막 등을 동원해 시위를 벌여 오곤 했다. GTX-C 노선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정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의 계열사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현대건설과 용산구 한남동 주민 대표 등은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등을 상대로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대부분 인용했다.

법원은 정 회장 자택 100m 이내에서 음향 기기를 사용해 정 회장의 명예를 모욕하는 행위 등을 금지했다. 또 정 회장 자택 250m 이내에서는 GTX 우회 관련 주장 등이 담긴 현수막과 유인물 등도 부착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개인 또는 단체가 하고자 하는 표현 행위가 아무 제한 없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헌법상 권리인 집회·시위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이해 당사자가 아닌 일반 시민의 행복 추구권도 보호받아야 하는 헌법상 권리라는 것이다.

다만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향후 재건축할 때 안전을 위해 특수 시공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증액되는 비용은 국토부와 시공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전하는 등 여전히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