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메디톡스가 이기고 실리는 대웅제약이 취하고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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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톡스, 대웅제약과 보톡스 전쟁서 승리’
‘보톡스 전쟁 2라운드’
‘보톡스 관리 강화법 도입 두고 업계 불확실성 지속’

최근 보톡스와 관련된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소송’, ‘불활실성’ 등 부정적인 키워드가 오르내리지만 기사 내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직장 동료도, 가족도 보톡스를 맞고 연예인들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할 정도로 보편화된 보톡스. 자신이 맞는 보톡스가 어떤 회사의 제품인지, 어떤 논란이 있는지 알고는 맞아야 하지 않을까. 보톡스를 둘러싸고 도대체 뭔 이야기가 있는지 정리해 봤다.
◆갈등의 씨앗은 무엇
먼저 알아야 할 게 있다. 보톡스는 일반 명사가 아니다. 미국 제약사 엘러간(현 에브비)이 개발한 제품 이름이다. 보톡스는 보툴리눔 톡신을 희석해 만든다. 오랜 기간 대중적으로 사용되다 보니 보툴리눔 톡신 의약품을 통칭하는 단어로 인식됐다.

보툴리눔 톡신이 신경 세포로 들어가면 신경 전달 물질 분비를 억제해 근육을 이완하는 효과를 보인다. 미간·눈가 등 얼굴 주름을 펴거나 사각턱·종아리 근육을 축소하는 데 효과적이다. 초기에는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다 엘러간이 상품화한 이후 미용 목적으로 널리 활용하게 됐다.

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눔 균에서 뽑아낸다. 보툴리눔 균은 벌꿀이나 부패한 음식물·토양 등에 존재해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자연 상태에서 확보하기 매우 어려운 균주로 알려졌다. 또 종류에 따라 사람이나 동물에게 매우 치명적인 신경독으로 악용하면 생물 무기 테러에 쓰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국제 사회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보툴리눔 균의 국가 간 이동을 관리했다.

정리하면 보툴리눔 균을 자연에서 얻기 힘들고 국가 간 이동도 매우 까다롭게 제한돼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상업화에 성공한 기업은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 엘러간(보톡스), 프랑스 입센(디스포트), 독일 멀츠(제오민), 중국 란주연구소(BTX-A) 등 단 4곳이다. 이들이 활용한 보툴리눔 균주의 기원은 두 개로 압축된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보유 중인 보툴리눔 균주 ‘홀 A 하이퍼(Hall A Hyper)’와 미국 균주 은행의 ATCC 3502다.

처음 한국에선 대웅제약이 1995년 엘러간과 계약하고 10년 넘게 보톡스를 팔았다. ‘보톡스 맞았다’는 여기에서 나온 말인 셈이다. 보톡스는 당시 연매출 200억원이 넘는 효자 상품이었는데 2009년 엘러간과 계약이 끝났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포기할 수 없었던 대웅제약은 5년간 보툴리눔 톡신 제품 개발에 매진했고 2014년 ‘나보타’를 출시했다.

하지만 첫 국산품은 아니다. 대웅제약보다 앞서 메디톡스가 2006년 보툴리눔 톡신 제품 ‘메디톡신’을 내놨다. 균주의 기원은 미국 위스콘신대의 HALL A다. 보툴리눔 균이 엄격히 제한되기 전 분양에 성공했다는 게 메디톡스의 설명이다. 1979년 양규환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미국 위스콘신대 유학 때 실험실에서 쓰다가 균주를 가져왔고 당시 카이스트 교수였던 양 전 처장의 제자인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가 스승에게서 받은 균주를 활용해 상업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메디톡신이 보톡스처럼 뼈대(?) 있는 가계(家系)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2016년 터졌다. 두 회사 모두 미국 진출을 준비 중이었는데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균주 도둑으로 지목했다. 대웅제약이 미국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진뱅크에 보고한 나보타 균주와 메디톡신의 염기 서열이 100% 일치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에 대웅제약은 한국의 토양에서 균주를 얻었다고 맞섰다. 균주의 태생 내지 가문 논란이 불거지면서 ‘보톡스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균주 훔쳤냐 아니냐’ 어느새 7년
메디톡스가 제기한 의혹은 크게 두 가지였다. 대웅제약이 자사의 퇴사자를 영입하면서 균주를 무단 반출했고 동시에 균주와 제조 공정을 도용했다는 것이다.

분쟁은 국내외에서 진행됐다. 우선 미국으로 넘어가 보자. 대웅제약은 나보타를 제조해 미국 파트너사인 에볼루스에 수출하고 에볼루스는 해당 제품을 팔고 있다. 메디톡스는 당시 협력사인 엘러간과 함께 에볼루스가 균주와 제조 공정 등 자사의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며 2019년 1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메디톡스 손을 들어줬다. 2020년 12월 대웅제약의 제조 공정 도용을 인정하면서 나보타의 미국 수입을 21개월간 금지한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1년 뒤 ITC 결론은 무의미해졌다. 에볼루스가 합의금과 매출 로열티를 엘러간에 지급하기로 해 합의했다. 나보타의 미국 내 치료 적응증 유통권을 가진 협력사 이온바이오파마 역시 15년간 메디톡스에 라이선스 로열티 지급을 결정해 나보타 수입 금지 판결이 2021년 10월 무효화됐다.

현재 메디톡스는 같은 이유로 휴젤과도 ITC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22년 3월 메디톡스는 휴젤을 상대로 균주 및 제조 공정 도용을 의심해 미국에 수입 금지를 요청했다. 휴젤은 메디톡스의 ITC 제소가 ‘발목 잡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다시 한국. 대웅제약과 메디톡스는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메디톡스는 2017년 1월 대웅제약을 산업 기술 유출 방지법·부정경쟁방지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형사 고소했고 같은 해 10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형사는 대웅제약 쪽으로, 민사는 메디톡스 쪽으로 기울었다.

검찰은 5년 만에(2022년 2월) 해당 사건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메디톡스는 이에 불복해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한 상태다.

민사 소송의 1심 결과는 올해 2월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낸 영업 비밀 침해 금지 등 청구의 소에서 메디톡스의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나보타의 제조 및 판매 금지와 균주 인도, 생산된 톡신 제제의 폐기, 메디톡스에 400억원의 손해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이전 한국의 형사 소송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자 대웅제약 측은 즉각 항소를 결정했다. 메디톡스도 맞항소를 진행 중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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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알 낳는 보톡스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돈’이 되는 시장이다. 시장 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2022년 64억 달러에서 연평균 11.5%씩 성장해 2030년 154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수년 전만 해도 메디톡스가 한국에서 시장점유율이 과반을 기록하며 1위를 달렸다. 당시만 해도 대웅제약은 시장점유율이 10%도 안 됐다. 하지만 지각변동이 생겼다. 대웅제약이 시장점유율 30%를 넘겼고 반대로 메디톡스는 20%대로 떨어졌다. 여기에 휴젤의 보툴렉스도 가세했다. 휴젤은 대웅제약과 메디톡스가 싸우는 동안 한국의 보톡스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다만 대웅제약은 해외 매출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웅제약의 나보타는 2022년 수출액 1098억원을 기록하며 한국 전통 제약사 개발 의약품 중 최초로 연간 수출액 1000억원을 돌파했다. 전체 매출액 1421억원 중 수출액이 1098억원에 달해 비율이 80%에 육박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길고 긴 싸움에서 메디톡스가 승기를 잡고 있지만 정작 실리는 대웅제약이 취하고 있는 셈이다.
◆보톡스 관리 강화법 등 이슈도
기업 간 불꽃 튀는 소송전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이슈도 있다. 최근 검찰이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국가 출하 승인 없이 한국에 판매한 제약 업체 6곳과 임직원 12명을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해당 기업은 메디톡스·휴젤·파마리서치바이오·제테마·한국비엠아이·한국비엔씨다. 국가 출하 승인은 백신 등 생물학적 제제에 대해 국내 유통 전 품질을 한 번 더 평가하는 제도다. 국내에 판매되지 않고 수출되는 제품은 이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검찰은 이들이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최소 47억원에서 최대 1300억원 상당의 보톡스를 국가 출하 승인 없이 한국의 수출 업체에 유상 양도했다고 보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 업체들은 관행적으로 보톡스를 한국의 무역 업체에 넘기고, 이 업체가 수출을 진행하는 이른바 ‘간접 수출’ 방식을 취해왔다. 업체들은 이번 기소가 간접 수출에 대한 법률적인 판단이 다른 데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식약처는 검찰과 뜻을 같이한다. 수출용 의약품은 국가 출하 승인을 반드시 받을 필요는 없지만 한국 무역 업체를 통해 거래되면 내수 시장 재판매 등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국가 출하 승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앞서 메디톡스와 휴젤 등은 이미 식약처와 이러한 문제로 행정적인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이들은 이번 검찰 기소와 같은 이유로 식약처에서 폼목 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고 이에 대한 행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메디톡스의 시장 입지가 좁아진 주요 원인이다. 아무리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다고 해도 의사와 환자로선 정부 부처와 행정 처분으로 엮인 제품을 꺼리게 돼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대웅제약은 국가 출하 승인을 받아 해당 이슈는 피해 갔다. 규제 이슈에서도 일단 한숨을 돌렸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 법안이 국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3월 22일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소위에서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감염병예방법에 대해 ‘계속 심사’를 결정한 것이다.

이 법안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및 병원체(균주) 등을 엄격히 관리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보툴리눔 톡신을 비롯한 고위험 병원체에 대한 질병관리청의 감독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이 통과되면 기업은 보툴리눔 톡신 균주 기록 관리를 공개해야 한다. 업계는 메디톡스와 소송으로 엮인 대웅제약과 휴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불법으로 균주를 취득했거나 허위 사실이 드러나면 품목 허가를 받은 보툴리눔 톡신 제품의 허가가 취소될 수 있어 관련 업계 재편까지 예고된다. 한국에는 16개 기업이 총 37개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허가받았다.

국회에서 추후 심사를 계속한다고 예고한 만큼 보툴리눔 톡신 기업의 균주 출처와 관련된 불확실성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