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위한 장애 확장이 불필요한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료의 역설

다만 약에서 구하옵소서 시리즈 2
자료 : Benjavisa Ruangvaree,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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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십수 년 사이 장애라는 의학 용어가 보편화됐다. 발달장애·감정조절장애·행동장애·불안장애 등 이미 친숙한 용어가 많다. 최근에는 인지장애·수면장애·섭식장애라는 말들도 자주 거론된다. 비처럼 쏟아지는 장애들을 과연 우리는 피할 수 있을까. 왜 금세기 들어 장애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폭증하는 것일까. 날로 늘어가는 신종 장애들은 어디에서 누가 정의하는 것일까.
장애 만드는 사람들
질병과 장애의 차이부터 살펴보자. 질병은 신체 부위의 정상적 기능 손상과 이로 인한 물리적 혹은 정신적 병리 상태를 지칭한다. 한편 장애는 심신 기능과 구조에 발생한 ‘비정상적’ 상태를 일컫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장애는 질병을 포함하면서도 굳이 병리적 상태가 아닌 고통과 기능 저하 모두를 망라한다.

포괄적인 만큼 그 기준도 모호하다. 그것이 신체가 아니라 정신 장애라면 특히 주관적 판단과 해석의 자의성이 커진다.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부터가 ‘장애’에 속하는지 정답이 없다. 그래서 실험실 분석이나 기계 검사를 거치게 되는 질병 진단에 비해 의료인의 임의적 판단이 극대화되는 위험을 내포한다.

물론 정신 장애의 의료적 진단은 과학적으로 설계된 과정을 거친다. 해당 상태·행위의 발생 빈도나 강도 그리고 개인의 일상적 기능과 안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신 장애 진단에는 가치 개입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새로운 장애를 규정하는 과정에 특정 지역·인종·성별·이념 편향성을 띤 집단의 입김이 작동되기 십상이다.

국제보건기구(WHO)가 관장하는 ‘국제 질병 분류(ICD)’에 비디오 온라인 게임 중독이 장애로 등록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조치는 엘리트 의료 집단이 지닌 젊은 세대와 대중문화에 대한 편견을 반영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WHO의 ICD는 질병과 장애의 경전으로 여겨진다. ICD가 특정 증상을 질병이나 장애로 지목하는 순간 그것은 전 세계에서 장애로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 각국의 자율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극히 미약하다. 이전 글에서 현대 사회의 질병은 자연 발생이나 발견이 아닌 힘있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지정,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ICD 장애 설정에 영향력 큰 배후가 있다. 미국정신의학회(APA)다. APA 회원들은 ICD 구성에 지속적으로 간여해 왔고 실제로 2018년 ICD-11 장애 부문은 APA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을 참고해 작성됐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장애들은 이렇게 ‘제조 유통’된다.
장애 종류 늘리기
APA는 1952년부터 DSM을 출간해 왔다. 1952년 당시 106가지 정신 장애가 등록됐지만 2013년 기준 약 500여 가지가 수록돼 있다. 지난 60년 사이 무려 5배 정도 증가했다.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2000년 이후의 증가율이 가장 두드러진다. 세계화, 디지털화, 테러리즘, 신자유주의와의 극한 경쟁, 양극화와의 전쟁으로 점철된 21세기. 개인의 삶은 무거워졌고 그만큼 몸과 맘은 거센 압박에 노출됐다.
누가 장애 목록을 늘리는가? [몸의 정치경제학]
사회적 위기는 의료업계에 호재다. 문화적으로 안착돼 있는 미국의 정신과 상담도 정치·경제적 불안이 생기면 더 활황을 띤다. 이때 장애 종류가 대폭 늘었고 그 여파는 WHO를 거쳐 의료 사대국인 한국에까지 도달했다.

물론 장애 종류의 증가가 반드시 장애 자체의 증가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장애 종류의 증가를 사업 확장과 연동해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의료 지식과 기술의 발달, 기존 증상에 대한 세분화가 작용했을 것이다. 또 물리적 환경의 변화 그리고 신체와 질병에 대한 사회적 기준 변동도 일조했을 듯하다.

그렇다. 기준 변동에 따라 장애의 범주와 종류는 변한다. 장애의 설정과 해제는 의학적 판단임과 동시에 사회적 가치, 경제적 이해, 문화적 규범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규정된 장애 그 자체보다 장애 설정 기준에 스며 있는 이해관계와 세계관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
ICD가 남발한 장애 수표
장애 종류의 양적 팽창과 그 빈 실체를 보여주는 한 사례가 ‘번아웃(burnout)’이다. 번아웃은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1970년대 소개한 개념으로, 과도한 스트레스에 따른 심적·육체적·감정적 탈진 상태로 정의된다. 만성 피로나 두통처럼 흔해 빠진 이 증상이 ICD-11 공식 장애로 채택된 것이다.

애초 ICD-10에서 ‘일상생활 관리 고충’으로 규정됐지만 2018년 발간된 ICD-11에서는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재정의됐다. 물론 직업과 노동 재해에 WHO가 주목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장애라는 병리적 접근의 적절성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지속된다.

ICD-11은 번아웃의 주요 특징을 “노동 의욕 상실, 근로 효율 저하, 에너지 고갈, 일에 대한 부정적 혹은 냉소적인 태도”로 묘사한다. 사실 이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모르기는 해도 의료 현장에 있는 인력들이야말로 가장 극심한 번아웃 재해군이 아닐까 싶다.

번아웃 같은 미시적 병리화는 노동자의 정신 건강 문제를 부각시킬지는 몰라도 경쟁과 압박의 심화, 점증하는 노동 강도와 고용 불안정 등 번아웃의 본원적 원인들은 오히려 희석할 우려가 있다. 거시 구조적 원인을 간과하고 개인 정신 상태에 초점을 두면 사회적 책임은 실종되고 환자의 부담만 늘어날 것이다.

의료화나 질병화로 접근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건만 현대 의학이 자기 한계를 넘어 과욕을 부렸다. 그러니 별 대책도 없이 장애 종류만 늘어가는 것 아닌가. 이런 과잉 병리화와 남발성 장애 규정의 또 다른 사례는 섹스와 연결돼 있다.
부적절한 장애 선정과 의료 독선
ICD-11은 기존 성 관련 장애에 성적 기피와 저활력 성욕(HSDD : Hypoactive Sexual Desire Disorder) 등 두 가지를 추가했다(참고로 HSDD는 한국에서 저활동성 성욕 장애라고 불리는데 저활동성이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고 성욕 장애라는 용어는 엄청난 편견을 전달하므로 hypoactive sexual desire를 저활력 성욕이라고 부르겠다).

성도착증이나 강박적 성행동 장애는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적 접근이 유효할 수 있다. 하지만 성욕이나 성적 관심 결여까지 병리적으로 대하는 것은 심한 ‘오버’다.

물론 ICD-11은 의지와 달리 발생하는 심리적·신체적 제약으로 한정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라는 라벨 이면에는 성생활이나 성욕과 관련된 표준적 인식 그리고 정상성에 대한 특정 기준이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성을 대하는 개인 및 사회적 태도는 각이하다. 마찬가지로 성행위 빈도나 관심 역시 세대·인종·문화 권역별로 천차만별일 수 있다. 미국의 일반과 정상성이 한국에서도 통용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류학적 무지이자 문화적 폭력이다.

이번에도 문제는 현대 의학의 오지랖과 과욕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책임질 수 있는 범주를 넘어 복잡한 사회 문제 중심부에 ‘알박기’형 장애를 설정한 것이 탈이었다. 성욕 장애에 대한 진정성보다 무성애(asexuality) 트렌드가 강화되자 무리한 ‘업종 확장’용 포석 같은 느낌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성애·성의식·성욕은 1인 문화의 확대, 가학적 성범죄의 증가, 반려동물의 급증, 청년층의 자본과 소득 형성 부진, 고령화 추세, 다양해진 문화 소비와 라이프스타일 등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이런 복합성을 배제한 채 정신 장애라는 일차원적 프레임을 씌운 것은 의료 독선이자 아둔함이다.

저활력 성욕은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돼 할 개인의 취향과 자기 신체 결정권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장애 지정은 도움보다는 수치가 될 공산이 크다. 치유를 위한 장애 확장이 불필요한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료의 역설을 인정해야 한다.

WHO와 ICD는 이전에도 HIV 감염자, 트랜스젠더를 무더기로 정신·성적 장애로 진단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그 역사적 우(遇)를 벌써 반복할 만큼 심각한 기억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일이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