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소비 MZ세대 확보에 필수…국내 인지도 낮지만 해외에선 유명한 브랜드 선점 경쟁

패션업계가 수입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사진=자크뮈스 홈페이지)
패션업계가 수입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사진=자크뮈스 홈페이지)
“자체 브랜드 만큼 수입 의류도 중요해요. 과일가게에 이것저것 많이 진열돼 있으면 뭐가 있을까 궁금해지고 살 게 없어도 한 번쯤 들어가 구경할 수 있잖아요. 비슷해요. 특히 신선함과 특별함을 원하는 MZ세대들을 유치하기 좋아요. 그러다 보면 우리가 만든 브랜드로 관심이 이어질 확률도 높죠.”


패션업계 관계자가 밝힌 수입 의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이유다. 최근 들어 새로운 해외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수입 의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도구인데 최근 들어 트렌드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특정 브랜드의 인기 유지 기간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브랜드 발굴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이 확보한 해외 브랜드는 회사 전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인지도 있는 브랜드가 ‘대문’ 역할을 하게 돼 고객들이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게 되면 자체 브랜드의 인지도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패션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브랜드 확보를 위한 전쟁에 나서고 있다.뺏고 뺏기는 ‘수입 의류 판권 전쟁’해외 브랜드(수입 의류)를 확보하기 위한 업계의 경쟁은 오래된 일이다. 통상 한국이 패션 회사와 해외 브랜드의 계약 기간은 3~4년 단위로 짧은 편이기 때문에 재계약 시점이 되면 다른 패션 회사에서도 브랜드와 물밑 접촉을 시도한다.

회사의 운영 실력 또는 포트폴리오가 더 좋다고 판단되면 해외 브랜드는 기존 회사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회사와 손잡는다. 판권을 지키거나 뺏기 위한 이들의 경쟁은 2010년 이후부터 줄곧 계속됐다. 특히 주된 경쟁은 신세계인터내셔날과 한섬 사이에서 벌어졌다.

2012년 한섬이 프랑스 명품 브랜드 지방시와 셀린느를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빼앗긴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홈쇼핑을 통해 한국 여성 의류 시장 1위 회사인 한섬을 4200억원에 인수했는데, 이미 인수전 한섬과 해외 브랜드 사이에는 계약 종료 이야기가 나온 상태였다. 통상 해외 브랜드와의 독점 계약은 종료 1년여 전에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데 해외브랜드 측에서는 한섬의 영업망 확대 미흡 등 소극적인 투자에 불만이 있었다.

현대백화점에서는 상품본부장 등을 한섬에 직접 투입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현대홈쇼핑 인수 직후 지방시와 셀린느는 한섬과 재계약하지 않고 신세계인터내셔날과 손잡았다. 같은 시기 발렌시아가까지 계약을 종료하고 직진출하며 한섬은 타격을 받기도 했다.

2015년에는 영국 신발 브랜드 핏플랍의 한국 판권을 두고 LF와 넥솔브가 갈등을 빚었다. 넥솔브는 2009년 핏플랍을 한국에 처음 선보였는데 2015년 본사가 LF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판권이 넘어갔다.

당시 넥솔브 측은 핏플랍의 매출 비율이 높고 판권을 뺏기면 사업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며 LF와 핏플랍 영국 본사를 상대로 독점 판매권 등 침해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LF 측에서는 본사와 넥솔브 간 계약이 만료됐기 때문에 계약에 나섰다고 밝혔다. 양측의 싸움은 영국 본사가 넥솔브의 영업 기간을 2016년까지 연장해 주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됐다.

2016년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끌로에도 한섬과의 계약이 끝나자 신세계인터내셔날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신경전도 발생했다. 끌로에가 신세계인터내셔날과의 계약이 확정된 상황에서 한섬이 끌로에의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최대 80%까지 세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비슷한 시기에 비엔에프통상과 계약을 종료한 영국의 패션 브랜드 폴스미스가 신세계인터내셔날과 손잡기도 했다.

뺏고 뺏기는 문제는 아니지만 최근 지난해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리복’을 두고 주요 패션 기업들이 경쟁하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리복의 한국 판권을 따내기 위해 삼성물산 패션부문, 신세계인터내셔날 등이 나섰지만 최종 승자는 LF가 됐다.
신선한 브랜드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심화할 전망이다. (사진=토템 홈페이지)
신선한 브랜드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심화할 전망이다. (사진=토템 홈페이지)
달라진 ‘수입 브랜드’ 전략 최근 들어서는 전략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인지도가 높은 명품 또는 준명품급 브랜드 판권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지만 취향 소비를 하는 MZ세대가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이후에는 한국에서 쉽게 살 수 없거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브랜드를 발굴하고 판권 계약에 성공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

2010년대 판권 신경전이 심화할 당시에도 “집안싸움(한국 기업 간 경쟁)으로 해외 브랜드 좋은 일만 시킨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에 브랜드를 대하는 업계의 태도도 과거와는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특정 회사에서 여러 브랜드를 검토하다가 포기하면 다른 회사에서는 어떤 브랜드를 포기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알려진 브랜드는 신선하지 않다”며 “그런 것들로는 젊은층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신선하고 감각적이면서 남들이 입지 않는 옷이 필요하다”며 “소비할 준비가 된 고객들이 와서 ‘살 게 없네’ 하고 나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나온 단어가 ‘신(新)명품’이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한국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는 신명품에 해당되지 않는다. 론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디자인이 우수하거나 해외에서는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중고가 가격대의 브랜드가 ‘신명품’에 해당한다. 말 그대로 신선하면서도 저렴하지 않은 고가의 제품을 뜻한다.

업계는 신명품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LF는 최근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빠투를 한국에 정식 론칭했다. 빠투는 세계 최대 명품 기업 LVMH의 브랜드로, 1987년 사업이 종료된 ‘장 빠투’를 2018년 인수해 새로 선보였다. LVMH는 빠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지방시와 까르벵을 거친 기욤 앙리를 임명하고 레디투웨어(기성복) 라인을 재출시했다.

LF는 빠투를 통해 수입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 LF는 빠투 외에도 이자벨마랑·빈스·레오나드·오피신 제네랄·바버·바쉬 등을 확보하고 있다.

LF 관계자는 “신선한 가치를 지닌 럭셔리 브랜드를 찾고 있는 많은 한국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한 결정”이라며 “오랜 역사와 앞서 나가는 트렌드가 공존하는 빠투의 다양한 라인을 본격적으로 선보여 차별화된 브랜드 정체성을 확실히 각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016년 독점 계약을 체결한 프랑스 브랜드 아미와 2018년 판권 계약을 한 메종키츠네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크게 인기를 얻으며 수입 브랜드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올해는 핵심 브랜드를 ‘자·스·가’로 설정했다. 자크뮈스·스튜디오 니콜슨·가니의 앞글자를 따서 정한 명칭이다. 이들 브랜드 모두 코로나19 사태 이후 새로 판권을 계약한 브랜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아미와 메종키츠네의 인기를 이어 가기 위해 수입 의류를 지속 강화할 계획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20년 이탈리아 럭셔리 슈즈 브랜드 ‘주세페 자노티’, 이탈리아 비건 패션 브랜드 ‘세이브더덕’ 등과 한국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2021년에도 미국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 ‘릭오웬스’, 독일 디자이너 브랜드 ‘질샌더’를 확보했다.

한섬의 가장 큰 성과는 미국의 럭셔리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피어오브갓’이다. 지난 2월 아시아 지역 최초의 피어오브갓 단독 매장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7층에 선보였다. 이 밖에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가브리엘라 허스트, 베로니카 비어드와 스웨덴 패션 브랜드 토템 등 3곳과 한국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기 위한 시도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며 “과거처럼 한 브랜드를 두고 경쟁하기보다 새롭고 희소성 있는 브랜드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