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의 금리 인상 기조는 거의 끝났다”…미국 기업들, 경기 둔화에 대비책 마련 중

[글로벌 현장]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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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이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미국을 장기 불황으로 이끌고 있다. 성장이 하락하는데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예측해 월가에서 ‘닥터 둠’이란 별칭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최근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고한 말이다.

루비니 교수의 예측과는 별개로 월스트리트에선 경기 침체의 현실화 가능성을 반반 정도로 보고 있다. 미국 내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최근 나오는 경기 지표는 침체 쪽에 좀 더 기울어 있다.
미국의 모든 경기 지표가 '침체'를 알린다 [글로벌 현장]

드디어 고용·임금도 둔화할 조짐

침체 우려를 키운 것은 고용 지표였다. 미 노동부가 공개한 2월 기준 채용 공고는 약 2년 만에 1000만 명을 밑돌았다. 시장 예상치 평균(1050만 개)을 한참 밑돈 993만1000개에 불과했다. 채용 공고는 1~2월에 총 130만 개 줄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직후를 빼면 역대 최대 규모로 쪼그라든 것이다.

실업자당 구인 건수는 1월 1.86개에서 2월 1.67개로 감소했다. 신규 채용은 더 줄었다. 총 616만3000명으로 한 달 만에 16만4000명 위축됐다.

인력 관리 업체인 ADP가 공개한 지난 3월 민간 일자리 역시 14만5000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시장 예상(21만 명 증가)에 크게 못 미쳤다. 임금 인상률은 6.9%였다. 전달(7.2%)보다 둔화한 것은 물론 1년여 만의 최저를 기록했다.

같은 달 비농업 일자리 수는 23만6000개 증가했다. 시장 예상(23만8000개)에 조금 못 미쳤다. 그동안 견조했던 일자리 시장도 조금씩 균열되기 시작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실업률은 여전히 낮았다. 3월 기준 3.5%로, 전달 수치(3.6%)는 물론 시장 전망치(3.6%)도 밑돌았다.

노스캐롤라이나대 키넌연구소의 제럴드 코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역대 최저 수준의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고용 지표 역시 침체를 예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헨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강연에서 “(노동 시장이 유연한) 미국에선 임시직 움직임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작년 3월 320만 명에 달했던 임시직이 그동안 13만 명 넘게 꾸준히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 및 금융직의 고용 감소를 접객 업종이 채우고 있지만 접객업 일자리 증가세 역시 정체됐다”며 “임금 상승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점도 구직자들의 협상력 저하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강조했다.

경기 둔화가 가시화하면서 상대적 우위에 서 있던 구직자들이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코헨 이코노미스트의 얘기다.

경기 둔화를 예고하는 것은 다른 지표도 마찬가지다.

공급관리협회(ISM)의 지난 3월 기준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6.3에 불과했다. 경기 위축을 뜻하는 50을 밑돈 것은 물론 시장 예상치 평균(47.7)도 한참 밑돌았다. 2020년 5월 이후 약 3년 만의 최저치였다.

신규 주문과 고용, 지불 가격 등이 일제히 하락했다. 신규 주문(44.3)은 전달 대비 2.7포인트 밀려 경기 침체 수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줬다. ISM 기준 고용 수치는 46.9로, 2020년 7월 이후 가장 낮았다.

또 다른 제조업 지표인 공장재의 2월 수주 실적은 전달 대비 0.7% 감소했다.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2.7%)은 2021년 2월 이후 최저였다.

ISM 서비스업 심리는 51.2로 조금 높았지만 예상치(54.4)를 밑돌았다. 서비스 가격만 놓고 보면 2020년 7월 이후 가장 낮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골칫거리였던 인건비 인플레이션마저 빠르게 둔화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의미다.

시장에선 “Fed의 금리 인상 기조는 거의 끝났다”는 데 베팅하는 분위기다. 연말까지 3~4차례 금리를 낮출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경기 둔화 가능성 때문이다.

스리-쿠마르자문의 코마 스리-쿠마르 최고경영자(CEO)는 “3~4개월 내 또 다른 형태의 신용 경색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이 때문에 Fed가 연말 전에 금리 인하를 개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여 왔던 Fed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연방은행 총재는 “기업들은 이미 경기 둔화에 대비하고 있는 것 같다”며 “무언가 깨질 때까지 긴축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점차 현실화하는 월가의 실적 우려

월스트리트에선 경기 침체에 따른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특히 국채 장기물과 단기물 간 금리가 오랜 기간 역전됐다가 빠르게 격차를 좁히면서 경기 하강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많다.

존 린치 코메리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급격한 수익률 곡선 변화는 가장 명확한 침체 신호”라며 “2년물 금리의 하락 속도가 10년물보다 빠른데 과거 5번의 침체를 앞두고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스타우드캐피털의 배리 스턴리히트 CEO는 “심각한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재정 적자를 채우려고 국채 발행을 늘린 뒤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금리를 다시 높이는 악순환을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줄리언 이매뉴얼 에버코어ISI 선임분석가는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며 “1년간 긴축했던 데 따른 영향이 막 시작됐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침체 강도가 완만하겠지만 증시는 작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6년부터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간을 이끌어 온 제이미 다이먼 회장 역시 “침체 확률이 뛰고 있다”며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달리 강도는 완만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기 둔화와 함께 증시가 타격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강세론자로 꼽혀 온 제러미 시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Fed는 연내 성장률이 정체될 것이라고 이미 예고했다”며 “경기 둔화에 대한 Fed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올해 2~4분기 증시는 고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Fed는 지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올해 성장률이 0.4%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1분기 성장률이 최소 2% 안팎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2~4분기 중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란 해석이다.

마르코 콜라노비치 JP모간 수석전략가는 “수개월 내 증시 심리가 위축되고 작년 10월의 저점을 재시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팩트셋에 따르면 1분기 기업들의 순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6.8% 줄었을 것으로 예상됐다. 팬데믹 탓에 이익이 32% 급감했던 2020년 2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침체기엔 헬스케어 유틸리티(전기·가스·수도) 필수 소비재 등 방어주로 피신하라는 조언이 적지 않다. 마이크 윌슨 모간스탠리 CIO는 “기술주는 경기가 바닥을 친 후에야 반등하는 전형적인 순환주”라며 “기술주 대신 당분간 방어주로 피신할 만하다”고 소개했다.

투자은행인 레이몬드 제임스의 존 랜섬 애널리스트는 “헬스케어 등 방어주 주가가 올 들어 하락하면서 밸류에이션 매력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