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위반 ‘1호 선고’ 원청 대표 유죄
삼표산업 등 영향 미칠까

[법알못 판례 읽기]
그래픽=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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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1호’ 재판으로 관심을 모은 중소건설사 온유파트너스의 대표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2022년 1월 법 시행 후 최고경영자(CEO)가 형사 처분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판결 후 산업계의 긴장감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법정 구속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대표가 언제든 형사 처분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보여줘서다. 계열사 사고로 그룹 총수가 기소되는 일까지 생기면서 사고 한 건이 그룹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온유파트너스 대표, 집행 유예 3년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2023년 4월 6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대표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 유예 3년을 선고했다. 온유파트너스에는 벌금 3000만원을 부과했다.

A 씨는 일단 법정 구속은 피했지만 집행 유예 기간에 또 한 번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구속이 유력하다. 집행 유예를 선고받은 사람이 유예 기간에 고의로 범한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집행 유예 처분이 취소된다.

김 판사는 “회사가 안전대 부착과 작업 계획서 작성 등 안전 보건 규칙상 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며 “A 씨 등이 의무 중 일부만 이행했더라도 사망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온유파트너스와 A 씨 등은 경기 고양시의 한 요양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가 추락사한 사건으로 2022년 11월 말 기소됐다. 사망한 노동자는 안전대 없이 5층 높이(16.5m)에서 공사용 앵글을 옮기다가 추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회사가 유해·위험 요인 등을 확인·개선하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고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업무 수행 평가 기준과 중대산업재해 대비 지침서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올해 2월 회사에 벌금 1억5000만원, 대표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대표이사가 중대재해로 실형을 선고받자 기업들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는 분위기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3월 31일까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된 14건에서 모두 대표이사나 그룹 총수가 책임자로 지목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한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검찰은 최장 징역 30년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양형 기준을 잡아 놓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노동 사건 담당 변호사는 “대표이사가 집행 유예를 받더라도 향후 사고가 또 생기면 실형을 면하기 어렵다는 부담을 안은 채 경영해야 한다”며 “최소 집행 유예라는 선례가 앞으로 열릴 다른 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하청 노동자의 사망으로 원청 대표가 형사 처분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중대재해법이 요구한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는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면 하청 노동자 사고라는 이유만으로 원청 측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3월 말까지 온유파트너스를 포함해 하청 노동자의 사망으로 재판에 넘겨진 기업은 10곳에 달한다.

계열사 사고도 그룹 총수가 책임지나

최근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계열사인 삼표산업의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그룹 총수도 계열사 사고로 처벌받을 여지가 생겼다.

검찰은 2022년 1월 29일 경기 양주시 채석장에서 무너진 토사 약 30만㎥에 삼표산업 노동자 3명이 매몰돼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정 회장을 중대재해법상 삼표산업의 경영 책임자로 지목했다. 정 회장이 30년간 채석 산업에 종사한 전문가로, 사고 현장의 야적장 설치와 채석 작업 방식을 최종 결정한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기업들은 삼표산업 안전보건책임자(CSO)와 대표를 건너뛰고 정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것을 두고 “CSO가 있어도 소용없다”고 불만을 보이고 있다. 현재 SK지오센트릭·현대제철·여천NCC·쌍용C&E 등 적지 않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중대재해로 조사를 받고 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이번 사례만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룹 회장도 경영 책임자로 해석돼 처벌받을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앞으로 기업들이 재판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법리 싸움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대재해법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려면 크게 △안전 보건 확보 의무 미이행 △사고와의 인과 관계 △예견 가능성 △고의성 등이 동시에 입증돼야 한다.

기업이 법에서 요구한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고 사고가 날 가능성이 예견됐음에도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중에서 특히 안전 보건 확보 의무 이행 여부를 두고 첨예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명확하지 않은 규정 때문에 기업과 검찰이 각자 유리한 대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업주의 예산 편성‧집행 의무 규정이 대표적이다. 중대재해법 및 시행령에는 ‘사업주가 재해 예방을 위해 시설·장비 구비 등에 쓰는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만 적혀 있다.

경영 책임자가 안전 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 방침을 세워야 한다는 규정 또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어떤 식으로 이행했어야 법을 지켰다고 볼 수 있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돋보기]
위헌 논란도 ‘여전’…헌재, 사건 접수도 못 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여전히 ‘위헌’ 논란에도 휘말린 상태다. 이 법을 위반해 재판에 넘겨진 기업이 6개월 전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하면서 향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성을 따져볼 것으로 예상된다.

에어컨 부품 제조회사인 두성산업은 2022년 10월 창원지방법원에 중대재해법의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이 회사는 직원 16명이 유해 화학 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클로로폼)에 급성 중독돼 독성 간염에 걸린 사고로 2022년 6월 기소됐다. 회사 대표이사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두성산업이 클로로폼이 포함된 세척제를 사용하면서도 사업장에 국소 배기 장치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보고 있다.

두성산업은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신청한 후 창원지법의 선택을 기다리며 재판을 받고 있다. 창원지법이 신청을 받아들이고 헌재에 정식으로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해야 헌재의 심판 절차가 시작된다. 진행 중이던 재판은 헌재 판단이 나올 때까지 중단된다.

두성산업은 “중대재해법이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에서 ‘사업주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및 이행 조치’ 등이 무슨 내용인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다.

헌법상 평등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법 위반이 음주 운전으로 피해자를 사망하게 만든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의 처벌(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보다 무거워 형벌 체계상 균형을 잃었다는 주장이다. 중대재해법은 사망자가 나왔을 때 1년 이상 30년 이하 징역을, 부상자가 나왔을 때는 7년 이하 징역을 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두성산업은 창원지법이 위헌 법률 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직접 헌재에 헌법 소원을 하는 방법 등을 검토 중이다. 중대재해법 위헌 논란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위헌 여부에 대한 법원 판단이 늦어질수록 산업 현장의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