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 촉구 피켓 든 간호인들. 사진=대한간호협회 제공
‘간호법 제정’ 촉구 피켓 든 간호인들. 사진=대한간호협회 제공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협회(간협)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간호법 제정은 현재 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간호사 등의 업무를 분리해 독자적인 법률로 제정하자는 것을 말한다. 간호사 및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간호사 등의 근무 환경·처우 개선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1977년 간협이 처음 추진한 이후 46년간 간호계의 숙원이었다.

의사 단체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지역 사회’라는 문구다. 간호법 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 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고 돼 있다. 의협 측은 간호법을 통해 ‘지역 사회’까지 범위를 넓히면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면서 ‘의사 없이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간호사들이 의사 없이 병원을 차릴 수 있는 ‘단독 개원’ 가능성이 생긴다는 얘기다.

간호법 제정 대한 반발은 의사 단체만이 아니다. ‘지역 사회’로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 임상병리사들은 검사 등 자신들의 영역을 간호사들이 침범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간호조무사단체는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한다’는 문구 때문에 장기 요양 기관이나 사회 복지 시설, 어린이집 등 지역 사회에서 간호조무사의 단독 고용이 불가능해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간호조무사는 의료기관 안에서 간호사를 보조해 업무를 수행하지만 의원급 의료 기관에 한해서는 간호사가 없어도 의사의 지도하에 간호 보조 업무가 가능하다.

간협 측은 간호법을 통해선 단독 개원이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가 의료 기관을 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호법 31개 조항에서도 ‘단독 개원’이 가능하다는 내용은 없다.

간협은 간호법을 ‘부모 돌봄법’에 비유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 인력을 지역 사회에 적절히 배치하고 장기 근속을 유도하면 고령층 돌봄 등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간호법 제정은 고령층 인구가 늘어나고 병원 밖 돌봄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의료 기관 중심의 현행 의료법으로는 간호사의 업무를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의협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는 간호법이 그대로 통과하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일각에선 의료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여·야가 간호법 제정안, 의료법 개정안 등의 법안을 처리하는 것에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3일 오전 11시경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했다. 이들은 30여 분 동안 본 회의 안건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후 박 원내대표는 “(우리는) 간호법과 의료법을 처리하자는 입장이지만 여당 입장에서는 시간을 갖고 협의하자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여당은 전날 간호법 제정안 명칭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로 수정안을 내놨다.

수정안은 1조(목적) 조항에 ‘지역 사회’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간호조무사 학력 요건은 특성화 고교 간호 관련 학과 졸업 이상으로 했다. 또 교육 전담 간호사와 간호 통합 간병서비스는 기존 의료법에 규정하도록 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