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대출 지속적으로 늘렸는데…위험 지역·소규모 시공사 비율 높아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시내의 한 저축은행.(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저축은행.(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불거진 미국 중소은행들의 ‘뱅크런’ 사태로 한국 금융 시장에도 긴장감이 돌았다.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듯 4월 말에는 일부 저축은행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뱅크런’ 가능성이 있다는 ‘지라시’가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저축은행업계와 금융 당국이 부랴부랴 거짓 정보라며 반박했다. 현재 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나 유동성 비율 등은 규제 비율을 웃돌아 부실 위험은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안심할 수준”이라지만 PF 위험성은 여전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연체율 5%는 은행 수준으로는 높지만 저축은행업권에서는 괜찮은 수준”이라며 “2014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연체율 14~15%와 비교하면 5%대는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1분기 저축은행권의 자기자본비율은 13.6%로 지난해 말(13.15%) 대비 0.45%포인트 올랐다. 이는 법정 비율인 7∼8%, 금융 당국 권고 비율인 11%를 웃도는 수준이라고 저축은행중앙회는 설명했다. 유동성 비율 역시 241.4%로 법정 기준(100%)의 2.4배 수준이다. 겉으로 나타난 숫자는 괜찮다.

하지만 저축은행업계는 2014년 이후 9년 만에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중앙회가 5월 5일 밝힌 자료에 따르면 1분기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순손실(잠정)은 약 6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는 수신 금리 인상에 따른 조달 비용 증가와 대손 충당금 추가 적립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저축은행 지라시가 돌았던 4월 28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건전성과 시스템 리스크와 관련해 저축은행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금융 당국은 저축은행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금융 당국은 지난 4월 그동안 2년마다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저축은행에 의무적으로 시행했던 검사 체계를 리스크가 큰 저축은행 중심으로 확대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대형 저축은행은 2014년 1곳에 불과했지만 2022년 기준으로는 20개로 늘었다. 이에 따라 규모보다 리스크에 초점을 맞춘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금융 당국이 저축은행의 건전성에 대해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리스크를 살펴보는 것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안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에 따른 영향으로 한국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부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올해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부동산 PF를 꼽는다. 5월 초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 상반기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에서 전문가들은 저축은행·상호금융·중소형 증권사 등 비은행권의 취약성이 부가될 것이라며 부동산 PF의 부실을 향후 취약 요인으로 지목했다.

문제는 저축은행업들이 수년간 부동산 PF 대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말 5조2000억원이었던 저축은행의 PF 대출 규모는 2022년 6월 기준으로 10조8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사실 PF 대출 규모를 뜯어보면 저축은행권은 보험사 등 타 업종에 비해 PF 대출 규모는 오히려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위험성은 남아 있다. 이는 저축은행권의 PF 대출 구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저축은행권의 PF 대출에는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인천과 경기의 비율이 높았다. 사업 용도별로도 비아파트인 수익형 부동산, 시공 순위 200위권 밖의 소형 시공사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우량 PF 대출 가운데 채무 보증이 없는 사업장이 97%에 달하는 등 사업성 역시 여타 금융업권에 비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저축은행 PF 대출이 총여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6월 말 9.4%로 낮은 수준이지만 높아진 비우량 채권 비율과 지역·시공사 신용 등급 취약성을 고려할 때 향후 건전성 저하나 부실화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1000조원 육박한 자영업자 대출 영향은

부동산 PF가 저축은행의 ‘뇌관’으로 남아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위험 신호가 불거지고 있다. 1000조원을 넘어선 자영업자 대출이다. 이 중에서도 제2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은 제1금융권에 비해 5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연체율까지 동반 상승하고 있어 향후 제2금융권 전체의 건전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 9일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19조8000억원으로 1년 만에 12.1%(110조6000억원) 증가했다.

이러한 대출을 많이 떠받친 곳이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 2금융원이다. 같은 기간, 자영업자 대출 잔액 중 은행권 대출은 전체의 60.6%인 618조5000억원, 비은행권 대출 잔액은 전체의 39.4%인 40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에 비해 은행권의 대출 잔액이 5.5% 늘어난데 비해 비은행권의 대출 잔액은 24.3%나 증가했다.

이처럼 비은행권 대출의 가파른 증가세로 인해 전체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 중 비은행권의 대출 잔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2021년 4분기 35.5%에서 2022년 4분기에 39.4%로 훌쩍 늘었다.

업권별로 보면 같은 기간 동안 상호금융업권은 26.8%, 보험업권은 16.9%, 저축은행권은 20.7%, 여신 전문업권은 9.7% 늘었다. 비은행권의 대출 잔액 증가율은 모두 은행권의 대출 잔액 증가율보다 높게 나타난 것이다. 특히 저축은행·여신전문금융회사·대부업 등 고금리로 대출을 발행하는 업권의 대출 잔액은 48조5000억원에서 55조9000억원으로 1년 만에 14.8% 늘어났다.

이자율도 치솟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들의 평균 대출 금액은 약 9970만원이었는데 평균 이자율은 5.9%였다. 특히 조사 대상 자영업자 다섯 중 하나는 8% 이상의 고금리 대출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진다면 대출 상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다중 채무자 비율이 높은 제2 금융권은 한 금융사의 연체가 다른 금융사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진짜 위기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9월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코로나19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조치가 끝난다. 또 저축은행업계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여겨지는 부동산 PF 대출 역시 하반기에 만기가 예정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저축은행을 둘러싼 전운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 이유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