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의 탈석탄 정책으로 재정 상황이 날로 악화하는 한전
저출산에 따른 학령 인구 감소로 지방 대학 구조 조정 압박 증가하는데 선거 공약으로 설립한 한전공대, 짓누르는 출연금은 부담으로

[경제 돋보기]

‘오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한 후 아프리카 적도 근처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돼 1821년 사망할 때까지 회한 서린 6년을 보내면서 남긴 말로 알려져 있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적 논리에 의한 무리한 정책 결정으로 시간이 흐른 후 발생하는 엄청난 비효율성과 막대한 비용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적자는 2022년 말까지 32조6000억원, 올해 1분기 6조원이 넘는 적자를 포함하면 38조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전의 부채는 지난해말 기준 192조8000억원이다. 일반 기업 같으면 이미 파산 신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국민 세금에 의해 연명하고 있다. 전기 산업의 특성상 국가 독점 기업의 지위를 누리고 있으면서 경쟁력이 상실됐고 방만한 경영과 정치적 외풍에 휘둘리면서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일차적으로 전기요금 정상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지나치게 저렴한 데도 지난 정부들이 여론을 의식해 적정한 인상을 계속 미뤄 왔다. 국민들은 사용한 재화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기본 경제 원리는 도외시한 채 그저 싼 전기의 과잉 소비를 즐겼다.

수익 구조가 이미 무너지고 한전채 발행으로 금융 시장까지 왜곡시키는 상황에서 지난 정부의 탈원전과 뜬금없는 대학 설립으로 인해 부채가 더욱 증가했다.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 설립은 수요 없는 공급의 대표적인 예다. 교육계나 국가의 미래를 위한 니즈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전임 정부의 선거 공약에서 시작됐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해 기존의 지방 대학들조차 생존 여부가 불투명하다. 지방대의 4분의 1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구조 조정 압박이 높아지고 있고 이미 지역 소재 특성화대학에 에너지 관련 학과가 많은 상황인데 굳이 전라남도 광주과학기술원에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나주에 적자로 허덕이는 한전이 1조6000억원을 출자하는 한전공대를 설립한 것이다.

한전은 지난 정부의 탈석탄 정책으로 재정 상황이 날로 악화하고 있는 자회사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자회사 10곳에 출연금을 분담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수익성 악화를 부추겼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1724억원을 출연했고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600억원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올해도 한전 본사 1016억원, 자회사 572억원 등 1588억원을 출연하기로 함에 따라 한전 자구 노력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한전공대는 원래 2025년 개교할 계획이었지만 전임 정부가 대선 전 서둘러 2022년 3월 개교를 목표로 2021년 한전공대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건물 한 개만 완공된 황량한 상태로 허허벌판에 개교를 강행했다.

그럼에도 교수들의 월급은 타 대학의 2배에 가깝고 학생들을 전액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출연금이 부담스럽지만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에는 이를 끊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래는 다수의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보다 소수 정예의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필요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구조 조정이 필요한 지방 대학을 늘리는 정치 놀음은 지양돼야 한다.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과학기술원이나 주요 공과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빚더미 공기업의 대학 설립 난센스[차은영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