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이야기 16

거대한 투명유리 드럼통이 회전하고 있다. 안에는 366개의 파란색 캡슐들이 무질서하게 튀어 다닌다. 뉴욕 출신 하원의원 알렉산더 퍼니는 회전 손잡이를 멈추고 통 안으로 손을 뻗어 그중 하나를 골랐다. 마치 경품추첨에 나선 듯한 태도였다.

캡슐 안 종이에는 숫자 258이 적혀 있다. 1월 1일부터 258번째 되는 날, 9월 14일을 뜻했다. 당첨이다. 만 18세에서 26세 사이 9월 14일생 모든 미국 남성이 이듬해 제1호 징집 대상이 되었다. 추첨이 진행된 것은 1969년 12월 1일 베트남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던 중이었다.

두 번째 캡슐 속 숫자는 115, 즉 4월 24일 출생자들이 뽑혔다. 이렇게 해서 366개(윤달 2월 29일 감안) 캡슐의 순서가 모두 결정됐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추첨은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됐고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직 절차가 남았다. 이어 진행된 2단계 추첨은 알파벳 뽑기였다. 생일날짜로 징집 순서가 이미 정해졌지만 같은 날 출생자 사이에서도 확실한 순번이 요구되는 민감 사안이었다. J가 먼저 뽑혔다. 즉 9월 14일 출생자 중 J로 시작하는 성(姓)을 가진 청년이 1차로 차출된다.

성 다음으로 이름의 첫 이니셜마저 J였다면 확실히 ‘첫 빠따’에 속한다. 예를 들어 John Jones라는 이름을 가진 1950년 9월 14일 출생자가 같은 날 태어난 Adam Smith라는 이름을 지닌 청년보다 먼저 전장으로 보내진다. 물론 신체검사 적격판정을 받는다면 말이다.
베트남전 징병 추첨. 1969. 12. 1. (AP)
베트남전 징병 추첨. 1969. 12. 1. (AP)
저항과 도피
1964년부터 베트남전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미 50만 장병을 투입한 상태였으나 밀림의 게릴라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병력 증강이 절실했던 백악관은 급기야 1942년 이후 중단된 징집 추첨을 27년 만에 재개한다.

이전 징집 순서는18~26세 남성 중 연장자부터 연소자로 내려오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연장자일수록 면제사유가 많았다는 점이다. 대학에 진학한 경우, 혼인으로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그리고 의료, 교육, 방위산업 등 후방 특수 업종에 근무하는 경우 모두 면제 대상이었다. 길고 복잡한 심사과정에 비해 입영자 수가 부족한 비효율을 내포했다.

기존 방식을 폐기하고 추첨식 징병으로 바꾼 장본인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었다. 징병 방식 수정불가를 명시한 1967년 법안을 의회에서 폐지시킨 후 긴급 명령권을 발동해 무작위 추첨으로 변경했다. 입영자의 수를 높일 수 있다는 통계학자들의 자문을 받은 후에 내린 결정이라 한다.
추첨 징집은 대상자 선정을 단순화시켰다. 방송으로 전국에 동시 공개한 만큼 대상자 소집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대량의 징집 대상자가 단기에 확보된 만큼 1970년 실제 징집 대상 커트라인은 195번째까지로 잘렸다.

196~366번째 캡슐 추첨자들은 당해연도 대상에서 제외되는 행운을 안았다. 다음해 1971년 징집까지 시간을 번 이들은 취업, 대학 진학, 결혼, 이주 등 다양한 형태의 징집 면제 사유를 모색했다. 강력해진 추첨 징집에 대응하는 정당방위라고나 할까.

자원 입대도 한 방편이 되었다. 특히 본토 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주방위군 지원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수십만 지원자가 일시에 몰려 긴 대기자 명단이 생겼고 입대는 요원해졌다. 그러자 다음 선택으로 베트남 현장 전투를 피할 수 있는 해안경비대나 해군이 부각됐다.

한편 반전주의자들은 징집장을 태우고 노골적인 병역기피에 나섰고 일부는 징집을 피해 캐나다로 이주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색인종과 가난한 청년들에게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대학 진학도, 결혼할 자금도, 긴 주방위군 대기 행렬을 끊고 들어갈 연줄도 없었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극단적 선택이 있었다. 강제징집당하느니 차라리 자원입대로 좀 더 높은 전투·생명수당을 받는 것이 그 하나. 다른 하나는 적정 형량의 범죄를 저질러 투옥되는 것. 목숨을 건 전쟁터보다 감옥행이 혹자에게는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베트남전 참전자들이 전쟁과 추가 징병 반대를 외치며 시가행진 하는 모습. 1967. 6. 1. (퍼블릭도메인)
베트남전 참전자들이 전쟁과 추가 징병 반대를 외치며 시가행진 하는 모습. 1967. 6. 1. (퍼블릭도메인)
공정 시비의 본질
‘복불복’인 줄만 알았던 무작위 추첨이 매서운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 생일 보유자에 훨씬 더 많이 징집 대상에 포함된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11월과 12월 출생자(306번부터 366번까지)가 유독 징집에 밀집된 것으로 시비의 초점이 옮겨졌다.

특히 12월 중 단 5일(2, 12, 15, 17, 19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짜 출생자 전원(전체의 83%)이 징집 대상에 포함된 것은 특이한 점이었다. 무작위 추첨이 아니라는 의문이 제기될 법도 했다. 통계적으로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으나 당시의 거센 반전 기운은 어떠한 계기도 놓치지 않을 만큼 충만해 있었다.

백인보다 흑인이 더 많이 징병되었다는 주장도 강했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당시 해당연령 흑인 남성은 전 인구의 13%를 차지했으나 실제 흑인 징병자 비율은 12%를 하회했다. 때론 공정성 시비에 있어 사실 여부는 부차적일 수 있다. 불신이 전제되면 절차와 방법보다 행위 주체가 문제의 중심으로 대두된다.

무작위 징병 추첨에 대한 공적 의심은 닉슨 대통령에 대한 불신에 기인했다. 베트남전 철수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나선 닉슨이 당선과 동시에 180도 돌변했기 때문이다. 그가 250억 달러(약 33조7000억원)의 거대 예산을 편성해 공세적인 확전을 도모하자 르몽드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언론들도 닉슨 행정부에 맹공을 퍼부었다.

마틴 루서 킹과 밥 딜런 같은 명사들은 물론이고 중산층 부모들까지 가세한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가 지속됐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하는 대규모 반전 시위가 워싱턴 DC에서 벌어지는 시각, 닉슨은 백악관에 앉아 TV 스포츠 게임을 시청했던 것이 밝혀져 공분을 더 키웠다.

징병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자 1970년부터는 동시 추첨 방식이 도입됐다. 한쪽에서는 생일을 지시하는 번호가, 다른 한쪽에서는 그 번호의 차출 순번을 결정하는 캡슐들이 동시에 뽑혔다. 먼저 추첨되면 먼저 징병되는 이전 방식을 폐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2년 마지막 추첨까지 대중적 의심은 줄지 않았다.
베트남 남부 격전지에 투입된 젊은 미군 병사들. (베트남전쟁 박물관)
베트남 남부 격전지에 투입된 젊은 미군 병사들. (베트남전쟁 박물관)
전쟁의 진실, 진실의 전쟁
생존 귀환한 참전자들은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했다. 1970년대 중반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베트남 참전용사 중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와 자살자 수가 비참전 민간인의 6~11배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물론 국방부 관계기관의 설명은 달랐다. 베트남전 미군 사망자는 5만8000명에 ‘불과’하며 전역 후 자살한 참전 병사는 대략 9000명 내외라고 주장한다. 제대 후 첫 5년간의 자살률도 여타 전쟁 참전 병사의 자살률보다 1.7배밖에 높지 않다는 반박이다.

징병군인 평균 연령도 진실공방 대상이 됐다. 가장 잔혹한 패전에 최연소 청년들을 최다 징발했다는 비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참전군인 단체는 육군 보병 평균 나이가 19세였다고 주장했고 국방부는 센서스 통계에 따라 22세를 고수했다. 어찌되었든 제2차 세계대전 보병 평균 26세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만은 사실이다.

통계 공방과 무관하게 문화예술계는 베트남 참전군인들의 상흔에 주시했다. ‘디어헌터’로 시작해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풀 메탈 자켓’, ‘굿모닝 베트남’에 이르는 창작물들은 수치가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의 깊이를 가늠하려 했다.

베트남전쟁 동안 미군이 살포한 약 7200만 리터의 고엽제에 주목했다. 200리터 용량 드럼 약 36만 통 분량의 ‘에이전트 오렌지’가 뿌려졌다는 것이다. 40만 사망자와 480만명의 장애·질병을 겪은 베트남인들에게 비하겠냐마는 현장에 투입된 270만 미군의 안위도 외면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사진>의 소녀는 고엽제에 노출된 미국 참전병의 딸이다. 선천성 기형으로 양팔이 없는 그녀의 이름은 제니퍼다.
제니퍼. (베트남전쟁 박물관)
제니퍼. (베트남전쟁 박물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징집 대상 남성은 약 2700만 명에 달했다. 징집 대상의 56%에 달하는1500만 명은 교육이나 신상 문제로 병역 연기 및 면제를 받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중·상위 소득계층이었다.

오직 8%에 해당하는 220만 명의 남성만이 징집되었는데 이들의 78%가 중·하위 소득가구 출신이었다. 어느 사회나 빈자는 약자였다. 약자의 생명 질량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만민이 평등하다는 헌법상 문구는 현실운영 법칙과 거리가 멀다. 기울어진 징병 역사의 추가 그것을 증명한다.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