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권 산책]
병행수입과 상표권 침해 문제[지식재산권 산책]
병행수입(Parallel Import)이란 독점 수입권자에 의해 외국 상품이 수입되는 경우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진품을 국내 독점 수입권자의 허락 없이 수입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외국 브랜드 상품을 국내에서 구입할 때는 외국 회사의 국내 자회사나 외국 회사와 독점 수입 계약을 체결한 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물류의 발달로 인해 외국 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들이 외국에서 상품을 구입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일이 증가했다.

이런 병행수입품의 경우 외국 회사의 국내 자회사나 외국 회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한 자들이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보다 저렴한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점차 병행수입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의 수는 증가했고, 기존의 수입업자들은 매출에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기존 수입업자들의 경우 국내 매장의 운영이나 마케팅에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반면, 병행수입업자들의 경우 이런 비용 지출 없이 오히려 기존 수입업자들의 홍보 행위에 편승하는 측면도 있었다.

병행수입품 판매에 대해서 상표권 침해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는데, 지식재산권의 국지주의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외국에 상표가 등록돼 있다고 하더라도 국내에 해당 상표가 등록돼 있지 않다면, 국내에서는 해당 상표가 보호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병행수입품은 국내에 인기 있는 유명 브랜드 상품이 대부분이고, 따라서 외국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미 상표가 등록돼 있는 경우가 오히려 일반적이었다.

이때 외국 상표권자와 국내 상표권자가 동일한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가 문제가 되지 않으나, 국내 상표권자가 외국 상표권자의 자회사이거나 자회사는 아니지만 독점 수입 계약을 체결한 자인 경우 혹은 외국 상표권자와 국내 상표권자가 동일하더라도 국내 상표에 대해 제3자에게 전용사용권을 부여한 경우에는 다툼이 있었다.

국내 등록 상표에 대한 사용권이 없는 병행수입자가 병행수입품을 국내에서 판매하는 것은 국내 등록 상표에 대한 사용권한이 있는 자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대법원은 이런 논란에 대하여 종지부를 찍었는데 병행수입품이 외국의 상표권자 등에 의하여 적법하게 상표가 부착된 상품일 것(즉 가짜 상품이 아닐 것), 외국 상표권자와 국내 상표권자가 법률적·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거나 병행수입품에 부착된 상표가 국내 등록상표와 동일한 출처를 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마지막으로 품질의 동일성(상품 자체 성능에 대한 동일성으로서 애프터서비스(AS)나 교환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이 인정될 것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유의해야 할 점은 해외와 국내의 상표권자가 동일하더라도 국내에 별도 전용 사용권자가 존재하고 해당 사용권자가 국내에서 직접 제조 및 판매하며 자신이 국내 소비자에게 해당 상표의 출처로서 독자적 신용을 쌓은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같이 원칙적으로 병행수입이 인정되자 기존 국내 독점 수입업자 등은 해외 본사 등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병행수입업체에 상품 공급을 하지 말아 달라는 등의 요청을 하게 됐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병행수입에 있어서의 불공정거래행위 유형 고시’에서 이런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병행수입품 자체의 판매는 허용되더라도 병행수입업자들 역시 지켜야만 하는 선이 있다. 버버리 사건에서 대법원이 판시한 것처럼, 단순히 판매만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표권자의 상표를 사용해 광고선전 행위를 해(버버리 사건에서는 매장 외부 간판이나 명함에 상표를 표시함) 마치 병행수입업자가 외국 본사의 국내 공인대리점 등으로 오인하게 하는 것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

또한 외국 본사나 국내 공인대리점 등의 저작권이 인정되는 홍보물 이미지나 설명 문안을 도용하는 경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김윤희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