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사진=한국경제DB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사진=한국경제DB
신한금융지주 자회사 14곳 가운데 신한투자증권, 신한자산운용을 제외한 12곳의 최고경영자(CEO)가 올해 말 또는 내년 3월까지 임기가 만료된다.

지난해 말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주에는 인사 쇄신을, 자회사 CEO에는 안정을 택했다. 지주의 11개 부문을 4개 부문으로 대폭 줄이고 임기 만료 예정이었던 9명의 임원 중 6명을 교체했다. 자회사 CEO 9명은 모두 유임시키면서 변화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진 회장의 첫 인사였던 점을 고려하면 아주 이례적이었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란 게 당시 신한금융의 설명이었다. 진 회장은 ‘전쟁 중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격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진 회장의 임기(2026년 3월)가 1년 남은 만큼 올해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내년 경영성적표가 좋아야 진 회장의 연임까지 연결될 수 있다.

◆빨라진 CEO 인사 레이스에 초긴장

신한금융은 올해 일찌감치 계열사 CEO 선정에 들어갔다. 신한금융지주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경위)가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자회사 CEO에 대한 승계절차를 지난 9월 10일부터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금융당국이 발표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은행장 임기 만료 3개월 전 경영승계 절차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카드사 등 비은행 금융사는 은행과 달리 새로운 지배구조 모범관행의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금융지주가 은행장 인사 검증을 시작하면서 계열 보험·카드사 CEO 인사도 한꺼번에 진행한다.

예년보다 이른 인사 절차가 진행되면서 신한금융 전반에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인사가 당겨지면 각 계열사 경영진 입장에선 실적을 쌓을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사의 직접 영향을 받는 임원들은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신한금융은 2022년 경쟁사인 KB금융그룹을 제치고 3년 만에 리딩금융(순이익 기준) 타이틀을 되찾아 왔다. 하지만 진 회장이 취임한 2023년 다시 KB금융에 왕좌를 내줬다. 올해 상반기 성적표는 다시 신한금융(순이익 2조7988억원)이 KB금융(2조7738억원)을 조금 앞선다. 하반기 실적이 뒷받침돼야 안전하게 탈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말 인사의 기준이 실적에 맞춰졌다면 올해는 내부통제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진 회장이 일관되게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또 최근 우리은행 등에서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금융권을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도 매섭다. 영업도 중요하지만 남은 기간 내부통제 강화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정상혁 신한은행장과 문동권 신한카드 사장,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 정운진 신한캐피탈 사장, 이희수 신한저축은행 대표, 이승수 신한자산신탁 대표, 조경선 신한DS 대표, 정지호 신한펀드파트너스 대표, 김지욱 신한리츠운용 대표, 이동현 신한벤처투자 대표, 강병관 신한EZ손해보험 대표가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박우혁 제주은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대표와 조재민 신한자산운용 대표 임기는 내년 말까지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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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카·생’만 생존하나

은행, 카드, 보험 CEO는 연임 또는 지주 경영진으로의 이동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연임에 성공할 경우 추가 임기를 얼마나 부여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특히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정상혁 신한은행장. 금융권 안팎에선 정 행장의 추가 임기가 1년에 그칠지, 2년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진 회장이 은행장 시절 이례적으로 추가 2년의 임기를 부여 받았던 것. 은행장 업무만 4년을 수행했다.

일단 정 행장은 진 회장 체제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진 회장이 은행장이었던 당시 정 행장은 진 회장의 비서실장직을 역임하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이후 경영기획그룹장(CFO)을 맡으며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진옥동-정상혁 체제를 유지하는 ‘조직 안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또 진 회장이 오랜 기간 일본을 주무대로 활동했다면 정 행장은 국내 영업에 잔뼈가 굵다.

정 행장의 재임 기간 홍콩 H지수 ELS 손실 사태 등의 이슈가 있었으나 규모와 사회적 파급력 측면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아 리스크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성적표도 뒷받침한다. 신한은행은 올해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했다.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2조535억원으로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2조원을 넘겼다. 2분기 순이익은 1조1248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21.1% 늘었다.

내년 본격 시행되는 ‘내부통제 책무구조도’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가 내부통제 책임 문제를 사전에 규정한 것이다. 금융지주와 시중은행은 10월까지 제출해야 하는데 아직 참여율은 저조한 실정이다. 미리 냈다가 경영진이 바뀌면 이를 고쳐서 다시 내야 해 다른 시중은행 모두 고심해 왔는데 9월 23일 신한은행이 가장 먼저 책무구조도 제출을 완료했다.

생명보험사를 담당하고 있는 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 또한 연임이 유력하다. 이 대표는 신한지주 전략기획팀 본부장으로 옛 ING생명인 오렌지라이프 인수작업에 지원했고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인수 후 통합(PMI) 작업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통합 신한라이프를 정상 궤도에 올렸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출범 4년 차에 불과한 통합 신한라이프를 생명보험사 빅3(삼성·한화·교보생명)를 위협하는 게임체인저로 키우는 등 임기간 뚜렷한 성과를 보였다.

신한라이프는 생명보험사 전반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와중에도 GA(법인보험대리점) 채널 전략 강화 등 보장성보험 판매를 확대하며 홀로 약진했다. 지난해 순이익 4724억원을 기록하며 연간 순익 5000억원대 달성을 앞두고 있다. 올해 상반기 누적 기준 순이익은 3129억원이다.

문동권 사장이 이끄는 신한카드 또한 연임을 통한 조직 안정화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 문 사장은 신한카드 최초 내부 출신 CEO다. 진 회장 취임과 동시에 세대교체 차원에서 발탁됐다. 문 사장은 신한카드 전신인 LG카드 출신으로 카드업계에서만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뼛속까지 ‘카드맨’이다.

신한카드는 고금리로 인한 조달비용 증가 등 어려운 업황 속에서 카드업계 1위(순이익 기준)를 수성했다. 또 신한카드는 카드업계의 시장지배력 지표인 신용판매 점유율(MS) 순위에서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왼쪽부터),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 문동권 신한카드 사장. 그래픽=송영 기자
정상혁 신한은행장(왼쪽부터),이영종 신한라이프 대표, 문동권 신한카드 사장. 그래픽=송영 기자
◆중소형 계열사는 CEO 물갈이 선택?

신한캐피탈과 신한저축은행, 신한자산신탁 등 중소형 계열사에 대한 ‘물갈이’를 점치는 분위기다. 신한지주·은행 내부에도 임기 만료 임원과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돼 있는 만큼 캐피탈·저축은행·자산신탁·DS·펀드파트너스·리츠운용·벤처투자 등에선 큰 폭의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 상대적으로 실적도 부진하다. 저축은행과 캐피탈사는 부동산 PF대출로 휘청이고 있다. 신한캐피탈은 올해 상반기 108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1900억원)과 비교하면 43%가량 뒷걸음질 친 성적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신한캐피탈의 부동산 PF 자산 규모는 올해 6월 말 기준 2조5000억원 정도로 자기자본의 100%를 넘는다.

신한캐피탈 정운진 대표는 은행 출신 CEO로 조용병 전 회장 재임 시절이었던 2021년 1월 취임했다. 이미 2년의 임기를 끝낸 뒤 두 차례 더 연임에 성공한 상태다.

신한저축은행도 지난해 상반기 170억원에서 올해 125억원으로 27%가량 순이익이 주저앉았다. 신한자산신탁은 지난해 38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으나 올해 상반기 적자전환했다(순손실 1751억원).

디지털 보험사인 신한EZ손해보험도 실적 부진으로 강병관 대표의 연임 여부가 상대적으로 불투명하다. 올해 상반기 6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적자폭이 47억원 증가했다. 다만 디지털 보험사 업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신한EZ손보를 포함한 국내 5개 디지털 보험사(캐롯손해보험·하나손해보험·카카오페이손해보험·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모두 적자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김상태 대표의 임기가 1년여 남아 있어 직접적인 인사 대상은 아니지만 이번 인사 과정에서 공동대표 체제로의 변화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정용욱 자산관리(WM)그룹 총괄대표가 올해 6월 신한투자증권에 합류한 것이 이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정 총괄대표는 증권과 은행 겸직으로 양사의 자산관리 부문을 총괄한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