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도 없던 사재기, 계엄령으로 생겨
편의점, 통조림·햇반·생수 등 판매량 늘어

문제는 장기적인 피해 생기는 산업군
면세·식품·여행·푸드, 환율·수출 영향 받아

[커버스토리 : 계엄령 이후 한국 경제]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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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습니다. 계엄 선포로 인해 자유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주신 선량한 국민들께 다소의 불편이 있겠습니다마는 이러한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밤 기습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가 이를 저지하며 계엄령은 6시간 만에 끝났지만 이로 인해 4일은 ‘혼란의 하루’였다. 문제는 경제계에 미친 타격이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통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은 영향이 없어도 6개월~1년 장기적인 관점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연말 쇼핑 대목을 앞두고 소비심리가 위축되면 업황은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널뛰는 환율에 원재료를 수입하는 식품업계,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기다리는 뷰티업계, 단체 관광객이 필요한 면세·여행업계 등도 계엄의 피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 코로나 때도 없던 사재기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패닉 바잉(사재기)’을 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비축에 대한 보고는 없었고 차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20년 한국의 코로나 대응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상황에도 한국인들은 침착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3일 계엄령 이후에는 일부 사재기가 발생했다.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3일 오후 10시 40분 이후로 즉석밥과 통조림, 생수, 라면 등 비상사태를 대비한 가공식품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A편의점은 이날 비상계엄령 선포 직후인 오후 11시부터 자정까지 1시간 동안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유통기한이 비교적 긴 통조림 제품 매출이 전날 대비 75.9% 올랐다. 햇반(38.2%), 생수(37.4%), 라면(28.1%), 건전지(25.7%) 등의 매출도 두 자릿수 이상 늘었다. 식재료(23.8%), 시리얼(14.1%), 빵(12.5%) 등도 사재기 품목에 들며 매출이 늘었다.

B편의점도 전주 같은 요일과 비교했을 때 통조림 337.3%, 봉지면 253.8%, 생수 141.0%, 즉석밥 128.6%, 건전지 40.6%, 안전상비의약품 39.5% 등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C편의점은 3일 오후 11시부터 12시까지 생수 매출이 직전일 대비 40% 오르고 햇반 등 가공미반 70%, 라면 50%, 주류 30% 등 생필품 매출이 올랐다. 이외에도 멀티탭 등 전기용품과 여행용품 매출도 두 자릿수 증가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나 대형마트와 달리 편의점은 근거리 업종”이라며 “당장 달려가서 원하는 제품을 살 수 있다. 게다가 편의점에서 팔지 않는 제품이 없기 때문에 선택지도 많다. 위급한 상황에 많은 소비자들이 편의점을 선택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 대목 앞둔 유통업계 ‘울상’편의점은 사재기에 수혜를 입었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수입이나 소득이 불안정하거나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길 때 지갑을 닫게 된다. 실제 코로나19가 첫 발병한 2020년 1분기 가계의 소비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6.0% 감소했다. 특히 교육(-26.3%), 오락·문화(-25.6%), 의류·신발(-28.0%), 음식·숙박(-11.2%) 등은 크게 떨어졌다.

4일 신세계, 롯데, CJ 등 주요 유통기업은 긴급 현황점검 회의를 열고 각 계열사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했다.

당장 타격이 생기는 곳은 연말 대목을 앞둔 외식업계, 배달업계, 호텔업계, 온·오프라인 유통채널 등이다. 유통업계에 12월은 4분기 실적을 책임지는 중요한 달이다. 블랙프라이데이 등 대규모 할인 행사가 진행돼 크리스마스, 연말·신년 선물 등을 준비하거나 연휴가 예정된 이들의 소비가 늘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들은 12월에 중요 행사들을 하거나 다양한 프로모션을 전개한다.

그러나 계엄령 이후 ‘윤석열 탄핵 정국’이 펼쳐지면 업계가 기대해온 따뜻한 연말 분위기가 사라지게 된다.

우선 외식업계의 우려가 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3분기 외식산업경기동향지수는 전망치(83.12)보다 낮은 76.04를 기록했다. 100을 기준으로 아래면 경기 악화를, 100을 초과하면 그 반대다. 4분기 역시 3분기와 비슷한 흐름을 보일 수 있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으로 계속 어려운 시기가 이어지다가 ‘흑백 요리사’가 방송되며 잠깐 숨 돌리던 상황”이라며 “연말 회식과 모임을 기다렸는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업계도 마찬가지다. 당장 큰 타격이 없더라도 소비 위축 분위기가 연말까지 계속될 수 있는 만큼 모니터링을 계속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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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품·여행·면세 타격…K뷰티 투자 위축될라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하락하면 수출 등 다양한 부분에서 장기적으로 타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효자 품목으로 떠오른 ‘K푸드’가 문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1월 농식품 수출 누적액(잠정)은 전년보다 8.1% 증가한 90억5000만 달러다. 15개월 연속 성장세이자 역대 11월 말 기준 최대 실적이다. 라면, 과자, 음료, 쌀가공식품 등이 호실적을 견인했다.

해외 바이어들의 결정이 수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국가 이미지가 훼손된다면 장기적으로 수출이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식품업계는 밀가루, 설탕 등 원재료를 수입해야 하는 탓에 환율에도 영향을 받는다. 원·달러 환율은 비상계엄의 영향으로 3일 새벽 1442.0원까지 뛰었다가 소폭 내려 1410원대를 기록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7.2원 오른 1410.1원으로 마감했다.

문제는 환율이 오르면 달러로 거래되는 원재료의 원가도 상승한다는 점이다. 라면값 50원, 커피값 100원에 민감한 식품업계에서 원재료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환율이 안정세로 접어들 때까지 구매 시기를 미룰 수 있지만 이 역시 시간 제약이 있다.

면세업계도 환율의 영향을 받는다. 면세점 제품은 달러로 판매된다. 고객 입장에서는 면세 혜택의 이점이 사라지고 업계는 매입 부담이 커진다. 코로나19 타격에 이어 계엄령 여파까지 겹쳤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면세점 매출은 1조1112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16.4% 감소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가격 경쟁력이 사라진 지 오래”라며 “가뜩이나 업계 상황이 안 좋은데 이런 일까지 겹치니 착잡하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부정적이다. 환율이 높아지면 항공사 수요와 비용 측면에서 모두 안 좋기 때문이다. 특히 달러화의 절상은 항공사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항공사 영업비용 3분의 1을 차지하는 유류비가 달러화에 연동되고 항공기 리스료·정비비 등 전반적인 비용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안도현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고환율은 한국인의 해외여행 수요를 위축시킨다”며 “평균적으로 환율이 높았던 시기의 출국자 수는 과거 대비 감소하거나 증가폭이 둔화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여행업계도 타격을 받았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이후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이 한국 여행 주의를 권고하거나 경보를 발령했다. 이들은 당장 계엄령이 해제됐다고 해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대사관은 4일 미국 시민과 비자 신청자를 위한 영사 예약을 취소했으며 미국 국무부는 “상황이 유동적”이라며 “시위 지역에는 접근하지 말라”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 이후 방한 예정인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여행을 취소하거나 미룰 가능성이 커졌다. 여행업계의 타격은 외국인의 면세점 매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뷰티업계도 영향을 받는다. 최근 K뷰티를 지탱하는 수출 중심의 중소기업들이 받는 타격이 크다. 또 이들의 투자 유치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K뷰티 수출 일선에 있는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전문기업 한국콜마의 경영진은 4일 윤상현 부회장 주재로 미국 뉴저지에 있는 북미기술영업센터와 함께 긴급 현안점검 회의를 열었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해외 고객사들에서 한국 상황을 걱정하는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며 “현 상황을 공유하고 차질 없이 업무를 진행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