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사진=한국수력원자력
내란 사태로 인한 산업계 충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승승장구하던 원자력과 방위산업도 정치 불안과 탄핵 정국이란 암초를 만났다. 원전과 방산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수출 주력 산업으로 적극 육성하던 분야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지난 2년 반 동안 114개국을 대상으로 211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지며 방산, 원전 등의 경제 세일즈 외교를 펼쳐왔다. 주요 순방을 계기로 약 128조원의 경제 성과를 창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산 수출은 지정학적 위기 속에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하지만 사실상 대통령 유고에 준하는 국면이 지속되며 수출 계약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내 정치 불안으로 가시화됐던 체코 원전, 폴란드 2차 수출 실행 계약 등이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전과 방산 둘 다 정부 간 계약 성격이 강한 G2G 산업인 만큼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 내란 사태와 국정 공백으로 인한 대외신인도 손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원전과 방산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탈원전 대못’ 겨우 뽑았는데…또다시 된서리

체코 정부가 비상 계엄 선포 직후인 12월 4일 한국의 정치 상황이 신규 원전 건설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현지 언론에 밝힌 만큼 내년 3월 최종 계약 절차를 남겨둔 체코 원전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체코 원전 이후 원전 수주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체코는 두코바니와 테멜린 지역 원전 단지에 각각 2기씩, 총 4기(각 1.2GW 이하)의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해왔다. 지난 7월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 24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체코 정부는 향후 테멜린 지역 2기(3·4호기) 원전을 추가 건설할 경우 한수원에 우선 협상권을 주는 옵션도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사실상 팀코리아가 48조원 규모 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보고 있었지만 내란 사태로 인한 대외신인도 악화로 추가 수주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원전산업은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이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에너지 가격 파동 사태로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원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고, 체코뿐 아니라 폴란드, 불가리아, 터키, 영국 등에서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전력 소모가 많은 인공지능(AI) 산업의 발전으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앞두고 원전업계는 추가 수주를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두산그룹은 사업구조 개편 차원에서 추진해온 분할합병안을 최근 철회했다.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 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려고 했지만 원전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가가 급락해 예상보다 큰 비용 부담을 안게 되면서 사실상 합병 실익이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한국원자력학회장)는 “체코 원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나 문제는 체코 원전 그 후”라며 “추가 수주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정권 교체 가능성에 따른 원전산업 영향에 대해선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해 지금은 원자력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수출 산업으로서의 경쟁력도 인정받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부채 총액이 100조원에서 200조원으로 늘었기 때문에 전기요금에 바로 반영을 할 수밖에 없어 지난 정부처럼 탈원전 정책을 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0일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0일 경북 울진군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혼란 틈타 규제법안 기습 발의한 민주당

정 교수는 “다만 문제는 원전산업의 미래와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을 없앤다거나 임의 규제 확대로 원전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성환(서울 노원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월 11일 대표발의한 ‘원자력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K원전의 납기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는 법안으로 지목된다. 개정안은 원전사업자가 원전을 건설할 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건설허가를 받기 전에 주기기 등 주요 기기의 제작에 먼저 착수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건설허가 취소와 같은 강력한 제재를 규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제작에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원전 건설 허가 전 사전 공사와 일부 선주문이 필요한 ‘선발주 기자재’(Long Lead Items)를 미리 주문해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이 공사기간(공기)과 비용을 줄이는 K원전의 핵심 경쟁력인데 이걸 법으로 막는다는 것이다.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로 선정된 것도 정해진 공기와 사업예산에 맞춰 원전을 시공하는 한국의 ‘온 타임 온 버짓’에 체코 정부가 높은 점수를 줬기 때문이었다.

정 교수는 “선발주는 건설공사를 빨리 마침으로써 비용을 절약하고 부품공급망의 건전성을 도모하기 위해 낙수효과를 조기에 나타나도록 하는 목적”이라며 “부품을 미리 주문하는 것이 국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없음에도 원자력안전법으로 임의 규제한다면 원전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은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원자력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라며 “한국도 국가 안보와 산업 발전에 도움 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정권과 상관없이 장기적인 정책을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현대로템이 제작한 K2 흑표 전차가 훈련 리허설에서 전차포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육군
현대로템이 제작한 K2 흑표 전차가 훈련 리허설에서 전차포 사격을 하고 있다. 사진=육군
‘파죽지세’ K방산도 성장엔진 꺼질라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 확산에 최대 호황기를 누리던 방산업계도 내란 사태가 미칠 파장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방산업계와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초 타결이 임박했던 것으로 관측되던 K2 흑표 전차의 폴란드 추가 수출 계약의 연내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최근 폴란드 측 언급을 보면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연말까지 계약 체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방산업계는 지난 2022년 7월 폴란드와 초대형 무기 수출 관련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그해 8월 총 124억 달러(약 17조원) 규모의 1차 계약 서명이 우선 이뤄졌다. 1차 계약에는 K2 전차 180대, K-9 자주포 212문, FA-50 경공격기 48대 등의 공급 계획이 담겼다.

이후 지난해 12월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152문을 시작으로 2차 계약 차원의 개별 계약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내란 사태가 터지며 2차 계약 중 가장 규모가 클 것으로 기대되던 K2 전차의 연내 수출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김홍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는 “국가 안보와 밀접한 방산 제품 특성상 한번 사면 20~30년 동안 운용하기 때문에 정부 허가나 보증이 없으면 수출이 성사되기 힘든 구조”라며 “방산 수출 계약에선 수출국이 수입국을 대상으로 기술 이전, 부품 역수입, 유지·보수·정비(MRO) 등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절충교역’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지금은 기술 이전과 군수 지원을 어떻게 할지 세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

내란 사태의 여파로 최근 방한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방문해 한국형 기동헬기 생산 현장을 둘러보려던 일정을 취소하고 조기 귀국했다. K방산에 관심을 보였던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12월 5~7일 방한해 방산기업들과 비공개 면담을 추진하려던 일정을 취소했다.

국정 공백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방산업계의 새로운 전략 시장으로 떠오른 중동 지역 수출과 한국 조선업체들의 대규모 수주 기회로 꼽혀온 폴란드의 오르카 프로젝트, 캐나다 잠수함 도입 사업(CPSP) 등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트럼프 정부 출범을 계기로 자국 우선주의와 글로벌 자주국방 강화 기조에서 전 세계 방산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방산업체 빅4(한화에어로스페이스·KAI·현대로템·LIG넥스원)의 수주잔고가 올해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방산 수출 금액도 올해 사상 최초로 2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산업계가 유럽과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우려가 제기된다. 김 교수는 “방위사업청을 중심으로 외교부, 국책은행 3자 협의를 통해 방산수출대책위원회를 설립해야한다. K방산의 수출 후속 군수지원 체계가 잘 이뤄지고 국가가 곧 안정될 것이란 믿음을 상대국에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