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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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어쩌다 한번 롱테일 리스크가 발생할 때마다 대변혁이 일어났다.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인 코로나 사태도 예외가 없었다. 코로나 이후 세계경제는 종전의 이론과 규범으로 설명되지 않는 뉴노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를 이끌어왔던 선진 7개국(G7)과 사회주의 양대 국(S2)의 통수권자가 수난을 겪고 있는 점이다.◆ ‘차이메리카’와 ‘신냉전 2.0’G7과 S2의 통수권자가 역할을 하지 못함에 따라 세계경제 질서도 흔들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세계경제는 △미국과 중국이 공존하는 ‘차이메리카’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놓고 대립하는 ‘신냉전 2.0’ △지역 혹은 국가별로 분화하는 ‘분권화’ △모두 조화하는 ‘다자주의’ △무정부 상태인 ‘서브 제로(sub zero)’ 등 어느 하나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미국과 중국 간 이해관계에 따라 ‘차이메리카’와 ‘신냉전 2.0’이 반복되는 커다란 줄기 속에 다른 국가는 자국 문제 해결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중층적 ‘분권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세계경제 질서는 G7 국가가 주도가 돼 구축해 놓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하지 않으면서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앱노멀 젤리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 중심축이 무너지면 혼돈과 무질서만 남는다. 이런 여건에서 개인적으로 야망이 강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했다. 당연히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를 지배하려는 꿈을 꿀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 집권 2기 경제정책을 집대성한 ‘프로젝트 2025’에는 ‘세계합중국(USW·United States of World)’ 구상이 주목을 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USW 구상을 빠르게 실행에 옮겨왔다. 백악관, 의회, 연방법원까지 공화당이 장악한 레드 스위프(red sweep)를 바탕으로 내각 구성을 신속하게 마무리했다. 멕시코, 캐나다, 중국을 대상으로 고관세를 부과하는 경제정책 첫 조치도 발표해 해당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긴장 속에 몰아넣고 있다.

미국의 인사 원칙은 ‘엽관제(spoil system)’다. 단 한 표만 더 얻더라도 해당 주에 걸려 있는 선거인단 수를 모두 가져가는 대통령 선거방식이 전형적인 예다. 집권 1기 때와는 달리 취임 직전까지 모든 공직은 친트럼프 성향의 인물로 채워 마무리했다.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60%밖에 못 채운 우리와는 구별이 된다. ◆ MAGA와 ‘프로젝트 2025’MAGA는 개인적인 야망까지 포함된 목표다. 트럼프 당선자는 극심하게 분열됐던 남북을 통일시켜 정치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꿈꿔왔다. MAGA도 링컨 대통령의 MAG(Make America Great·미국을 위대하게)에서 따온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1930년 대공황을 극복한 또 다른 영웅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재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집권 1기 때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에게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 달라는 요청은 숨겨진 일화다.

MAGA의 청사진이자 실천 계획인 ‘프로젝트 2025’도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첫 작품인 정부효율부(DOGE)를 창설해 각종 기득권을 축소시켜 비대해진 정부를 기업과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는 것이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의 의욕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약, 동성연애 등을 금지시켜 잃어버린 청교도 기업가 정신을 부활시키겠다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대외적으로는 집권 1기의 반성을 토대로 중국 견제 수단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중국의 대응 방식을 보면 함무라비 탈레오 법칙(lex talions) 식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대비해 ‘가격은 가격 조치’로, ‘물량은 물량 조치’로 맞대응하고 있다.

공식 출범 전 트럼프 정부가 중국 견제 수단으로 첫 부과한 고관세는 전형적인 가격할증 정책이다.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ur) 가격할인 정책인 위안화 약세로 대응하면 고관세 피해액이 고스란히 미국에 전가되는 맹점을 안고 있다. 집권 1기 때도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11% 이상 절하시켜 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부담을 70% 이상 상쇄시켰다.

중국은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때부터 미국 국채를 더 빠른 속도로 매각해 왔다. 미국 국채 매각 대금으로 중국 국채를 매입하면 한편으로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부채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경제정책 방향을 미국 금융위기에 준하는 양적완화(QE)를 추진키로 확정한 것을 고려하면 위안화 절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2022년 10월 제20차 공산당 대회 이후 20차례가 넘는 금융완화 조치가 경기부양 효과가 없는데도 왜 한 단계 더 높여 QE를 결정했느냐는 점이다. 현재 중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1.5%대로 떨어져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있다. ‘늪’으로 비유되는 이 함정에서는 금융완화 정도가 높을수록 부작용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트럼프 2기에 중국 업무를 총괄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 등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오히려 위안화 약세를 더 빨리 유도해 고관세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보고 2차 대응 수단으로 ‘1988년 종합무역법’을 손질하고 있다. ‘옴니버스’가 붙여진 이 법에서는 특정국이 자국 통화를 인위적으로 절하시키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MAGA 구상은 중국을 뛰어넘어 전 세계로 확장하려는 계획도 마련돼 있다. 벤치마크로 삼은 유럽연합(EU)은 회원국 수를 늘리는 ‘확대(enlargement)’와 회원국 간 관계를 끌어올리는 ‘심화(deepening)’ 단계로 추진해 20세기 초 자유사상가에 의해 제시됐던 ‘하나의 유럽’이라는 원대한 꿈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것이 당초 목표다.

전자는 초기에 6개국으로 출범했으나 이제는 27개국(탈퇴한 영국까지 포함하면 28개국)으로 확대됐다. 화폐통합(EMU), 정치통합(EPU), 사회통합(ESU) 순으로 추진해 가던 후자도 1999년 유로화 도입으로 첫 단추인 EMU까지는 성공했으나 EPU의 상징인 유럽통합헌법이 일부 회원국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멈춘 상황이다.

‘강한 미국’과 ‘트럼프의 절대 군주 야망’도 MAGA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EU 방식을 수용한다면 MAGA의 적용 대상을 세계 모든 국가로 확대하고 심화 단계를 세계화폐통합(WMU), 세계정치통합(EPU), 세계사회통합(WSU) 순으로 추진하면 ‘미국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를 뛰어넘어 ‘세계통합국(United States of World)’ 달성이 가능하다.

최근처럼 글로벌화와 디지털화가 급진전될수록 지역통합보다 세계 통합이 쉬울 수 있다. 세계가 하나의 운동장이 된 초연결 시대에 유럽 통합 과정상 확대 단계와 심화 단계 중 장애가 됐던 정치통합은 의미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WMU와 WSU만 추진하면 세계를 대상으로 한 MAGA 구상인 USW도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집권 2기가 끝나는 세계경제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대변혁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