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의 말이다. 2022년 급격한 금리인상 이후 벌써 4년이 흐른 지금까지 살아남은 중견 건설사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부동산 불경기가 갑자기 시장을 덮친 뒤 건설업계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어려움에 봉착했다. 급등한 금리는 물론이고 자재비와 인건비로 인해 높아진 원가율, 미분양 위기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지방 중소 건설사는 물론 비교적 역사가 긴 유명 중견업체들도 위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2023년 말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한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시장 분위기는 지난 1월 6일 신동아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부도처리된 건설기업 수는 총 27곳에 달한다. 5년 만에 최고 수치다.
경쟁사들은 이들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다. 보수적인 사업성 평가를 통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필요하거나 지방에서 시행되는 사업은 최대한 피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자체 사업을 벌이는 대신, 대부분 공사를 하고 도급비를 받는 시공사업을 수주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도급사업 중에서도 위험도가 낮은 재개발 공사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 대형사들이 손대지 않는 틈새시장을 노린 전략이다. 수도권에서는 중견사 간 수주전까지 벌어질 정도다. “PF·지방 사업 안 해” 한목소리
![“돌다리도 두드린다” 움츠린 중견 건설사, 수도권 재개발은 ‘눈독’[비즈니스 포커스]](https://img.hankyung.com/photo/202501/AD.39154332.1.jpg)
자체 개발사업이 아닌 도급사업의 경우 통상 대형 건설사가 가장 우량한 사업장을 가져가면 중견 건설사가 그다음 좋은 곳이나 비우량 사업장을 수주하게 된다. 그런데 전국에 미분양이 확산하면서 중견 건설사도 우량 사업장이 아닌 곳을 기피하고 있다. 전반적인 주택공급이 감소하게 된 배경이다.
기피 사업장은 대부분 토지매입 단계에서부터 대규모 PF 조달이 필요하거나 비(非)주택, 지방 사업장 등이다. 시공능력평가 16위에 달하던 태영건설도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에서 지식산업센터 사업에 손을 댔다가 위기를 맞게 됐다.
2024년 시공능력평가 58위인 신동아건설은 지방 미분양 사업장에서 공사비를 제때 받지 못하면서 만기가 도달한 60억원짜리 어음을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아건설이 2019년 11월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 5년 만이었다. 2023년 말 기준 신동아건설 부채비율은 428.8%에 달했는데 이 기간 미수금은 이미 575억원으로 전년 249억원 대비 2.3배로 불어났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외에도 지방 현장 등에 ‘물린’ 중견사가 많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한 중견사 관계자는 “새로운 공사를 벌이기보다 지금 있는 미분양을 해소하는 데 집중하는 중”이라며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 중에선 수도권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 프로젝트에서만 분양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피 사업장이 아니어도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 대부분은 수익성이 높지 않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주요 건설사의 평균 매출원가율은 93.0%를 넘겼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자재비와 인건비가 고루 오른 탓이다. 건설업계는 ‘공사비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시장에 반영되기는 쉽지 않다.
그로 인한 공사비 갈등이 발생하면 공기는 지연되고 시공사의 미청구 공사액은 불어나게 된다. 결국 전반적인 경영실적이 악화되고 운전자금 부담이 늘면서 재무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 부채비율이 높은 건설업 특성상 건전해보이던 기업도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구조다. 최근 중견 건설사는 물론 대형 건설사도 신규 수주를 꺼리게 된 이유다. 재개발, 중견사의 블루오션으로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 신규 수주는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건설업에서 몇 년 뒤까지 실적을 예상할 수 있는 기준이 현재의 수주잔고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중견사들의 수도권 재개발 수주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대형사들의 관심이 높지 않은 서울 밖 재개발이나 소규모 사업이 대부분이다.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은 토지를 소유주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형태로 사업 규모 대비 PF가 없거나 적다. 또 일반공급에서 일부 미분양이 발생하더라도 조합원 물량이 있기 때문에 공사비를 떼일 우려가 적다. 통상 재개발을 추진하는 곳은 해당 지역에서 입지가 좋아 사업성도 높은 편이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요즘 그나마 분양이 잘되는 게 재개발, 재건축 물량”이라며 “대체로 서울이거나 위치가 좋아서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태영건설은 워크아웃 개시 후 처음으로 경기도 의정부에서 장암6구역 재개발사업 시공권을 확보했다. 당시 한신공영도 시공권 입찰에 참여해 중견사 간 수주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워크아웃 개시 후 기업개선 작업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으며 PF 사업장도 정리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PF가 없는 토목, 환경 사업을 수주했으며 재개발 수주도 그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시기 우미건설은 서울 중랑구에서 상봉역4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의 시공사로 선정됐다. 해당 사업지는 상봉역 일대 모아타운에 속해 인근 구역 추가 수주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두산건설과 BS한양(옛 한양)은 인천 부개4구역 재개발을 수주했다. BS한양은 최근 수도권 재개발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9년 서울 동대문구 소재 동부청과물시장 재개발을 통해 ‘청량리 한양수자인 그라시엘’ 분양을 성황리에 마감한 뒤 2023년 입주까지 마쳤다. 지난해 10월에는 경기도 김포 소재 북변4구역 ‘한양수자인 오브센트’ 일반분양 계약을 2주 만에 완료했다. 해당 단지는 3058가구 규모 대단지로 일반공급 물량만 2116가구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 관계자 대부분은 재개발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우미건설 관계자는 “최근 재개발에서 좋은 성과가 있었지만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차원에서 모든 사업을 최대한 주의 깊게 검토하고 있다”며 “공격적으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건설사 임원은 “재개발 수주를 하고는 있지만 공사비 협상 문제로 진행이 중단된 곳도 있어 사업성을 충분히 검토하는 등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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