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사진=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사진=MBC
지난 1월 4일 첫 공개된 tvN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는 국내 최초로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만큼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됐다. 해당 드라마의 제작비는 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려한 라인업도 자랑한다. 배우 공효진, 이민호, 오정세 등이 출연한다. 하지만 시청률은 2%대에 머무르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드라마의 성공 공식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제작비를 대거 투입해도, 유명 배우가 출연해도 시청자들은 쉽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K드라마의 세계적인 흥행에 발맞춰 한국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숏폼 콘텐츠를 포함해 다양한 영상 콘텐츠가 시시각각 쏟아지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 드라마 산업은 현재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오징어 게임’ 등 K드라마의 글로벌 흥행에도 제작비 상승 등 국내 시장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어려움이 심화하며 한편에선 드라마 업계의 필사적인 생존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덕분에 이색적인 풍경도 펼쳐지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오리지널 드라마처럼 TV 드라마의 분량이 대폭 줄었는가 하면, 지상파에서 글로벌 OTT 작품을 보게 되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 과연 이 노력들은 빛을 발할 수 있을까. 국내 드라마 시장은 회복될 수 있을까.
16부작 아니고 8부작, 10부작?!드라마 시장의 위기는 숫자로도 나타나고 있다. 숏폼 콘텐츠 등 영상 콘텐츠의 절대적인 양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시장의 중심에 있던 드라마의 편성 편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연간 공개작 편수로 따지면 2018년 115편에 달했던 국내 드라마는 지난해 말 기준 56편에 불과했다.

제작비가 훌쩍 뛴 영향이 가장 크다. 기존엔 100억~200억원 드라마만 해도 대작에 해당했다. 그런데 이젠 과거와 비교도 하기 힘들 만큼 거액을 쏟아부어야만 한다.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제작비는 1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촬영 중인 배우 송혜교, 공유 주연의 ‘천천히 강렬하게’의 제작비는 700억원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제작비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국내에 진출한 이후 크게 상승했다. 블록버스터급 콘텐츠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시각적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이 커졌다. 흥행하지 못하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흥행 가능성은 이전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 영상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시청자는 더욱 높은 기준을 갖고 자신의 시간 또는 비용을 투자할 만한 콘텐츠를 선택한다.

드라마의 성공 확률이 확연히 떨어지고 나아가 업계의 생존 여부조차 불투명해진 상황. 이에 따라 드라마 업계에선 잇달아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달라진 시장 환경과 시청자의 감상 패턴을 고려해 기존의 규칙을 과감하게 변화시키는 전략이다. 그중 시청자 입장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길이와 속도’이다.

먼저 드라마의 길이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원래 TV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16부작으로 제작됐다. 그런데 최근엔 8~12부까지 짧아졌다. ‘우연일까?’라는 작품은 기존 TV 드라마의 절반 수준인 8부작으로 방영됐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10부작이었으며 ‘나의 완벽한 비서’, ‘지금 거신 전화는’, ‘정년이’는 12부작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사랑을 받거나 호평을 얻은 드라마가 많았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해당 전략이 통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동안 TV 드라마는 느린 호흡과 전개로 시청자의 몰입을 떨어뜨렸다. 글로벌 OTT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글로벌 OTT에서 만든 오리지널 드라마는 보통 시즌별로 6~8회분으로 구성,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이 성공 방식이 이제 TV 드라마에도 이식되어 보다 빠르고 밀도 높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드라마 하나를 TV, OTT 버전으로 따로 만들어 공략하는 투트랙 전략도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6일 공개된 드라마 ‘원경’은 tvN에서 15세 이상 관람가로 방영되고 있다. 이와 달리 OTT인 티빙에선 19세 이상 관람가로 공개되고 있다. 다양한 세대에 걸쳐 불특정 다수가 시청하는 TV, 20~30대 이상의 구독자 중심인 OTT의 플랫폼별 특성에 맞춰 타깃 시청자를 다르게 삼았다.
지상파-글로벌 OTT 손잡다
드라마 '아수라처럼' /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아수라처럼' / 사진=넷플릭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협업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 MBC에선 디즈니플러스의 대표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이 방영됐다. 지상파에서 글로벌 OTT의 작품이 방영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넷플릭스와 SBS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에선 SBS의 오랜 과거 작품인 ‘모래시계’가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SBS는 지난 인기작부터 현재 방영되는 다양한 작품들을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드라마 시장에서 방송과 OTT의 협업이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사 입장에선 TV로 방영됐거나 방영 중인 다수의 드라마를 OTT에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제작비 상승에 따른 부담을 OTT에 대한 방영권 판매로 일부 해소할 수 있다. 더불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글로벌 OTT 입장에서도 국내 방송사와의 협업은 효과적이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물량 공세를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드라마를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해 직접 만들 순 없다. 방송을 통해 이미 한국 시청자들에게 증명을 받았거나 현재 방송사에서 방영되는 작품들을 일부 사들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빙’처럼 과거 OTT 작품을 방송 채널을 통해 방영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OTT에서 이미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대중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방송에서 다시 방영을 하면 또 한번 관심을 끌 수 있다.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높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드라마 업계에선 제작 영토를 최대한 확장하기 위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 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아수라처럼’은 일본 드라마이다. 영화 ‘괴물’, ‘브로커’ 등을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아오이 유우, 히로세 스즈 등 일본 정상급 배우가 출연한다. 그런데 이 작품엔 한국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에 참여했다. 한국 인기 드라마를 만들어온 시스템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CJ ENM도 일본 지상파 방송사 TBS와 공동 제작에 나섰다. 3편 이상의 지상파 드라마와 2편의 영화를 함께 제작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국내 드라마 산업을 살리고 더 큰 글로벌 성과를 만들기 위한 사투가 필사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 가운데 업계에선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현재의 한국 드라마 시장에 대해 이같이 보도했다. “K드라마에 2024년은 대성공의 해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시청자의 관점에선 평범한 한 해였다.” 지난해엔 K드라마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관심이 크게 높은 상황이었고 대작도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정작 작품이 공개되고 나면 시청자들의 기대엔 못 미쳤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타임은 지난해 나온 작품 중 최고의 K드라마로 ‘선재 업고 튀어’를 꼽으며 이 같은 평가를 내놨다. “큰 예산이나 유명한 스타는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잘 짜인 스토리’가 있었다.” 결국엔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선 그 본질인 이야기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2025년 드라마 시장은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획기적인 사업 전략까지 뒷받침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