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정보 판단, 1시간 보고 2시간 생각해야[박찬희의 경영전략]
전략은 크고 중요한 일이므로 미리 세심하게 알아보고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정보수집과 판단은 전략의 필요조건이다.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공급을 줄이면 세계 에너지 가격이 움직이고 조선·해운 경기가 출렁여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듯이 전 세계가 맞물려서 돌아간다. 미리 내다보고 판단하려면 세상만사를 다 고민해야 하니 큰일이다.

섣부르게 여기저기 주워들은 정보로 나섰다간 뒷북이나 쳐서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막상 필요한 정보는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어렵고 오히려 이해관계가 듬뿍 담긴 정보공작에 휘둘리기 딱 좋다. 경영자의 정보판단, 몇 가지 꼭 생각해볼 점들을 짚어보겠다.
고급 정보에 대한 환상A 그룹은 정보기관을 능가하는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한다. 돈의 힘이 있으니 정보기관의 주요 정보를 구해낼 수 있고 회사가 가진 기술, 산업 정보를 바탕으로 고급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회사의 해외 네트워크도 정보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다. A 그룹은 도청·감청 권한이 없고 강제 조사도 못 한다. 정치·군사·외교 등 회사의 손이 닿지 않는 중요한 일은 너무나 많다.

A 그룹의 ‘인재’들이 정보를 얻는다고 여기저기 다니면 정보가 본업인 음험한 기관들의 먹잇감이 되어 돈만 뜯기고 역정보에 이용당하기 딱 좋다. 어렵게 주워들은 정보는 다음 날이면 언론이나 정보시장으로 흘러나오는데 어설픈 ‘특종 경쟁’으로 경영자의 허영심만 충족할 뿐이다. 정말로 중요한 고급 정보라면 언제 잘릴지 모르는 A 그룹의 월급쟁이에게 주지도 않는다.

최고경영자에게 전달되는 보고서에는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촘촘하게 담겨 있다. 작성자와 보고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최대한 뺀다. 보고자는 자기가 잘 소화해서 빛날 수 있는 내용을 키우고 잘 모르는 것은 숨긴다.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면 정말 중요한 핵심 정보가 구석에 숨어버린다. 화려한 편집에 영상자료까지 더해지면 핵심은 더 안 보인다.

편 갈라 다투는 사내 정치가 회사를 둘러싼 영악한 집단들의 진짜 정치와 얽히면 경영자의 눈과 귀를 장악하는 정보공작이 벌어진다. 주요 인사들의 의견을 구한다면서 최고경영자의 눈과 귀가 닿는 사람들을 미리 회유해서 마사지해두는 수법이 등장한다. 위험인물을 음해해서 차단하는 센스도 더해진다. 귀가 얇고 세상 물정은 어두운 가족들도 정보공작과 음해에 이용되는데 어린 자녀들을 싸고돌며 대를 이어 권세를 키우는 경우도 있다.

2세 경영인 B 부회장은 부친 사망으로 10여 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회사 사람들은 험한 일 피하고 세계의 인재들과 교류하라며 잦은 출장과 행사를 마련했다. 나중에 보니 회사의 깊숙한 현안을 알지 못하게 밖으로 돌린 것이었다. B 부회장의 어머니는 “아드님이 험한 일들을 몰라야 감옥 안 간다”는 말에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는데 회사 사람들과 유착하여 따뜻하게 살고 계신 이모와 외삼촌도 부추겼다고 한다.

직접 일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구중궁궐에서 보고서만 보는 경영자는 벌거숭이 임금님이 된다. 그 틈을 영악한 사내 정치꾼이 파고들면 회사는 엉망이 된다. 역사책에 다 나오는 잘못인데 수천 년 동안 계속되는 것을 보면 신기한 일이다.
미디어로 보는 세상대중의 눈높이와 감성에 맞춘 콘텐츠가 최고경영자의 전략 판단에 의미가 있을까? 당연히 중요하다. 세계 곳곳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현실을 이해하는지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생각과 감성이 표가 되어 정치를 움직이는 세상에서 더욱 중요하다.

사람들은 세상을 나름의 맥락 속에서 스토리로 이해한다. 서로 부대끼며 공유된 서사(narrative)로 단단하게 자리 잡으면 그 자체가 사실로 이해된다. 유식한 말로 꾸며져 담론(談論)이 되면 따라서 쓰고 외우다 교과서가 되고 법과 제도로 등장한다. 뉴스가 스토리의 소재를 제공한다면 드라마나 영화는 서사의 틀을 이룬다. 예능에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 머리에 쏙쏙 꽂히는 자막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수단이 된다.

미디어의 속사정을 훤히 아는 G 회장은 ‘엉터리 뉴스’와 ‘시간 때우기 콘텐츠’로 가득한 신문, 방송이 짜증스러울 뿐이다. 속사정도 모르고 유치한 정의감을 과시하는 앵커, 장단 맞추는 얼치기 평론가를 보면 어이가 없다. 그러나 대중이 그들의 얘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은 그쪽으로 흘러간다.

볼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G 회장이 생각하는 ‘말이 되는 뉴스’는 제목이나 봐주면 다행이다. 그나마 보고 싶은 것만 더 보여주는 알고리즘 때문에 순식간에 밀려난다. 친구의 SNS 수다가 대통령의 연설보다 영향력이 크다.

G 회장이 돈을 벌려면 유치한 멘트가 먹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소비자이고 투자자이며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리더로서 무지한 정의, 얼치기 주장을 바로잡으려면 미디어가 말이 되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리게 도와야 한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뉴스와 콘텐츠는 내용 타당성에서 당연히 한계가 있다.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에 제대로 가려내기도 어렵다. 그러나 여론의 시장에서 벌어지는 견제와 균형을 이해하면 최소한 현안을 입체적으로 돌아보는 일에는 도움이 된다.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편견과 왜곡이 가득한 시선을 포함해서.

회사가 세상 모든 일을 다 알아볼 수 없다면 미디어를 통해 얻는 정보는 유용하다. 타당성의 한계, 편견과 왜곡은 막대한 돈을 들인 고급 정보에도 있다. 경영자가 미디어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내부정보를 교차검증할 수 있다면 회사 안팎 정보정치꾼들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는다. 가짜뉴스에 휘둘릴 수준이라면 회사 일에는 손을 뗄 일이고.
교차검증과 비판적 추론소설과 뉴스 기사의 차이는 ‘타당성’에 있다. 쉽게 말해서 내용을 구성하는 개념이 객관적이고 검증 가능한지, 논리적 구성이 말이 되는지, 실제로 현실에 부합하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연구논문은 더 높은 수준의 타당성을 요구하는데 연구방법론은 이를 확보하는 수단이다.

개념을 측정 가능한 변수로 만들고 이들의 관계를 가설로 설정해서 검증하는 방식은 경영자가 알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질문하고 여러 채널을 통해 서로 확인하는 데 적용된다. 보고서의 내용을 다른 채널과 맞춰보고 직접 사람들과 만나 확인하는 방식이다.

IT 기업을 인수한 C 회장은 직접 사장에서 사원까지 일대일 면담으로 회사 사정을 파악했다. 인수에 활용된 자문보고서의 내용을 묻고 답하다 보니 잘못된 점, 새롭게 발견된 점도 많았고 무엇보다 회사 내의 다른 의견과 이해구조를 알게 되었다. 고위 중역들이 꾸민 어전회의에서 들을 수 없는 실제 일하는 사람들의 꾸밈없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다른 각도에서 질문해 보고 새로운 답을 찾는 노력은 비판적 추론의 핵심이다. 직접 부딪혀 사업을 만들다 보면 책상머리 전문가들의 보고와 달리 안 되던 일도 되고 돕는 사람도 생긴다. 현장에서 얻은 새로운 정보는 먼저 비판적 추론의 소재로 삼아 단단하게 다듬어야 효과적이다(한마디 들었다고 모조리 뒤집어 놓는 한심한 짓도 있지만).

정보의 이면을 헤아리고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며 교차검증하려면 1시간 보면 2시간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작정 외우고, 심지어 내면화해서 우겨대는 엉터리 선비의 후예는 회사를 망친다. 암기 공부에 객관식 시험으로 생각의 싹을 말리는 대학, 생각할 시간을 빼앗아 편히 부릴 노비로 만드는 회사는 망국의 원흉이 된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