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영풍이 오는 23일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의안상정 금지 가처분을 인용 결정했다.
앞서 영풍·MBK 연합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사실상 가족회사인 유미개발이 청구한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 의안을 오는 23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해선 안 된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취지로 의안상정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소수주주가 집중투표를 청구하는 '시점'에 이미 정관으로 집중투표가 허용돼 있어야 하는데, 유미개발은 정관 변경과 함께 집중투표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했기 때문에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영풍·MBK 연합의 주장이었다.
유미개발은 지난해 12월 10일 고려아연에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했는데, 당시 고려아연 정관은 집중투표제를 배제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상법 제382조의2 1항에 따르면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수주주는 회사에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영풍·MBK 연합은 소수주주가 집중투표를 청구하는 '시점'에 이미 정관으로 집중투표가 허용돼 있어야 하는데, 유미개발은 정관 변경과 함께 집중투표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했기 때문에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유미개발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안하던 당시 고려아연의 정관은 명시적으로 집중투표제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었다"며 "결국 이 사건 집중투표 청구는 상법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적법한 청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현재 우리나라 상장사는 대부분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정관 규정을 두고 있는데 만약 조건부 집중투표청구가 상법상 허용되고 회사는 이와 같은 청구를 항상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석하는 경우 회사는 항상 집중투표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이는 회사에 지나치게 무거운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으로 고려아연은 오는 23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 방식이 아닌 일반투표 방식으로 이사들을 뽑아야 한다.
현재 영풍·MBK 연합과 최 회장 측의 우호지분율은 각각 40.97%(의결권 46.7%), 34.24%(의결권 39.16%)로 추정된다. 최 회장 측이 영풍·MBK 측에 약 7%포인트 가량 밀리는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사실상 최후의 승부수로 꼽혔다.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임시주총 정관 투표에서 상법상 3% 룰을 활용해 의결권 지분율이 46.72%에 이르는 영풍·MBK 연합의 이사회 과반 확보를 저지한다는 계산이었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12명으로 최 회장 측 11명, 영풍·MBK 측 장형진 고문 1명으로 구성돼 있다. 기존 이사진 외에 최 회장 측은 7명, 영풍·MBK 측은 14명을 신규 선임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최 회장 측에 유리한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 방안이 막히면서 이미 절반에 가까운 의결권 지분을 확보한 영풍·MBK 연합이 추천한 이사 14명이 모두 선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날 법원 결정에 따라 임시 주총에서의 이사 선임은 기존의 과반수 득표제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최 회장 측이 제안한 이사 후보 7명과 영풍·MBK 측이 제안한 14명 등 총 21명의 이사 후보를 두고 득표수대로 이사회 자리를 확보하게 된다.
증권업계에서는 약 3.3%포인트의 추가 지지만 얻으면 과반이 되는 영풍·MBK 연합이 이번 경영권 분쟁의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MBK·영풍 측 의결권 지분율이 과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고려아연이 국민연금과 해외 기관투자자 및 소수 주주의 지지를 모두 끌어모은다면 이사회 과반을 확보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고려아연은 법원 결정 후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법원의 이번 판단은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안건과는 무관한 사항"이라며 "소수주주 보호 및 권익 증대라는 애초 취지에 맞춰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을 적극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또 "고려아연에 대한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과 국민연금, 소액주주연대, 그리고 울산 등 지역사회와 시민단체, 정치권의 긍정적 평가를 바탕으로 핵심 기술진과 노동조합, 임직원이 한 뜻으로 투기적 사모펀드 MBK와 적자 제련 기업 영풍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 국가전략기술 등 비철금속 세계 1위의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투기적 사모펀드 이익 회수의 수단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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