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이사 수 상한' 고려아연 측 안건 모두 통과
영풍·MBK, 가처분 승소하고도 '상호주 제한'에 막혀 이사회 장악 불발
최윤범 경영권 방어 '일단 성공'…또 다시 연장전 돌입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23일 주총 표 대결을 통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이사회 장악을 저지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일단 성공했다.

전날 전격적으로 꺼낸 '순환출자 카드'로 영풍 의결권을 무력화해 당초 지분율에서 뒤지며 불리했던 상황을 역전시켰다는 평가다. 다만 영풍·MBK 연합이 위법성을 지적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해 향후에도 경영권 분쟁 상황은 이어질 전망이다.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일부 변경의 건'과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의 건' 등이 차례로 의결됐다.

신규 이사 선임 투표에선 고려아연 측 추천 이사 7인이 모두 과반 찬성으로 가결됐고, MBK·영풍 측 추천 이사 14인은 전원 부결됐다. 핵심 안건이었던 집중투표제는 찬성률 76.4%, 이사 수 19인 상한은 찬성률 73.2%로 가결됐다.

최 회장 측이 제안한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도 찬성 71.44%로 통과됐다. MBK·영풍 측 제안 안건인 '집행임원제도 도입'은 부결됐다.

주총 출석 주식 수는 1145만 9974주로 출석률은 63.1%였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의장을 맡아 임시 주총을 진행했으며, 최 회장은 이날 주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1월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려아연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1월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고려아연
순환출자 형성해 불리한 상황 반전…영풍 손발 묶어

임시 주총은 당초 이날 오전 9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주주 명부 확인과 의안 투표 결과 집계 등에 시간이 소요되며 약 6시간 지연됐다.

이날 임시주총장에는 고려아연 노동조합원들이 대거 상경해 적대적 M&A를 규탄하는 피켓시위도 벌였다. 임시주총은 고려아연 측과 영풍·MBK 측의 날선 공방 속에서 오후 10시를 넘겨 폐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아연 지분은 영풍·MBK 연합이 40.97%, 최 회장 측이 우호 지분을 합해 34.35%로 최 회장이 영풍·MBK 측보다 지분율에서 밀리고 있었다.

지난 21일 법원이 영풍·MBK가 신청한 의안상정금지 가처분을 일부 인용, 고려아연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방식의 이사 선임에 제동을 걸면서 이번 임시주총에서 영풍·MBK 측이 승리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임시주총 전날 밤 최 회장 측이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최씨 일가 및 영풍정밀이 보유한 영풍 지분 약 10.33%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구조를 형성하며 결과적으로 영풍의 손발을 묶는 데 성공했다.

전날 단행한 순환출자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의결권(25.42%)이 제한되면서 영풍·MBK 측 지분이 40.97%에서 15.55%로 축소된 영향이 컸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강성두 영풍 사장이 2024년 9월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애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강성두 영풍 사장이 2024년 9월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애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MBK "최윤범 지키기에 자본시장 유린당해"…영풍 "법적 대응"

이에 대해 영풍·MBK 측은 SMC가 유한회사이자 외국회사이기 때문에 이 같은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한 영풍 그룹 내 신규 순환출자가 형성되는 등 공정거래법 위반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각종 위법행위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영풍 대리인인 이성훈 변호사는 주총 발언을 통해 "우선 너무나도 황당하다."고려아연 최대 주주로서 50년간 아무런 문제 없이 발행주식 25.4%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해왔는데, 어제 저녁 6시 공시 이후 전자투표가 마감되고 주주로서 관련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지위에서 의결권이 제한되니 강도당한 기분"이라고 항의했다.

영풍·MBK는 최 회장 측의 영풍 의결권 배제가 위법적이라고 주장하며 향후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영풍·MBK는 이날 퇴장 뒤 발표한 입장문에서 "한국 자본시장과 고려아연은 '최윤범 회장 지키기'를 위해서 얼마나 더 유린당해야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풍·MBK는 "SMC는 영풍 주식을 취득해야 할 사업상 필요가 전혀 없다"며 "호주에서 아연제련업을 하는 회사가 한국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순환출자규제의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면서 의결권도 없는 영풍 주식을 왜 취득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회장 측이 의장권을 가지고 있음을 기회로 오늘 임시주총에서 영풍의 의결권이 없다고 우기기 위하여 575억원을 소모해 버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임시주총의 위법적인 결과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소 및 원상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자본시장의 제도와 관련 법령에 따라 비록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뚜벅뚜벅 저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아연도 이날 임시주총 폐회 뒤 입장문을 통해 "무려 넉달반 동안 고려아연 및 계열사 임직원, 울산 시민, 그리고 정치권과 국민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적대적M&A 시도가 23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를 계기로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고려아연은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와 국민연금 등 많은 주주들께서 국가핵심기술, 국가첨단전략기술 등을 보유한 국가기간산업 고려아연이 대한민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셨다"며 "이번 임시주총을 계기로 고려아연이 많은 주주분들의 지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모든 임직원이 최선을 다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 경영진은 24일 오후 2시 그랜드 하얏트 서울 1층 그랜드볼룸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임시주총 결과를 비롯해 최근 여러 현안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할 예정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