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필두로 올해 정기주총에서도 경영권 분쟁 이슈가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경영권 분쟁소송 공시는 총 320건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269건)보다 약 19% 증가한 것이다.
고려아연·티웨이항공, 경영권 분쟁 고조
최대주주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경영권 분쟁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끝에 연장전에 돌입한 상태다.
당초 최 회장 측이 지분율에서 뒤지며 1월 23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영풍·MBK 측의 이사회 장악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으나 임시주총 하루 전날인 1월 22일 최 회장 측이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 지분율 25.42%에 달하는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일단 성공했다.
양측은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외국기업)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의 상법 적용 여부, 유한회사 논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등을 놓고 법정공방을 이어갈 예정인 만큼 분쟁이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양측이 각종 가처분 신청과 고소·고발전을 진행 중이어서 소송건만 해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을 상대로 임시주총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가처분 결정에 따라 3월 고려아연 정기주총에서 경영권 분쟁의 향배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영풍·MBK 측의 손을 들어주면 임시주총 안건 표결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반대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최 회장 측은 영풍정밀(3.59%)과 SMC(10.33%) 등을 통해 영풍 지분 15.15%를 보유하고 있다.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52.65%)와 비교해 지분 격차가 크지만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에 ‘3%룰’이 적용되는 만큼 최 회장 측의 견제구가 통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영풍의 지분 약 3%를 보유한 머스트자산운용은 최근 영풍에 자사주 소각과 액면분할 등 주주친화정책 실행과 신규 사외이사 후보 3명을 추천하는 주주제안서를 발송했다.

1월 22일 대명소노그룹 소노인터내셔널은 티웨이항공을 상대로 경영개선을 요구하고 주주명부 열람등사청구 및 주주제안을 전달하는 등 경영참여를 본격화했다. 대명소노그룹 2세인 서준혁 회장은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 경영권 확보를 통한 항공업 진출을 공식화한 상태다.
최대주주와 2대주주 간 미미한 지분율 차이로 3월 정기주총에선 치열한 표대결이 예상된다. 티웨이항공의 소액주주 지분율은 43.17%로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이번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7년여간 이어진 남매간 분쟁이 지난해 일단락된 아워홈도 또다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 주도로 아워홈의 단계적 인수를 추진 중이다.
아워홈 지분의 98% 이상은 오너 일가 소유다.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38.56%), 막내 구지은 전 부회장(20.67%), 차녀 구명진 씨(19.6%), 장녀 구미현 회장(19.28%) 순이다. 아워홈은 시장에서 1조5000억원으로 평가되는데 한화 측은 지분 100% 인수를 희망하고 있다.
1차적으로는 오너 일가 중 장남과 장녀·차녀가 보유한 58% 지분 인수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구 전 부회장은 지난해 6월 현재 경영진인 오빠와 큰 언니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패배해 대표이사에서 공식 사임했지만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구 전 부회장은 재무적투자자(FI)를 유치해 우선매수권을 행사, 매각을 협상 중인 장남과 장녀의 지분을 사들인다는 계획이다.
김 부사장도 전국에 있는 아워홈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 실사를 진행할 정도로 인수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분쟁이 예상된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을 상대로 ‘조카의 난’을 일으켰던 금호석유화학 개인 최대주주(9.51%) 박철완 전 상무 측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근 박 전 상무의 세 누나들이 금호석유화학 지분 일부를 매도해 일각에선 분쟁이 일단락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박 전 상무가 “앞으로도 금호석유화학의 성장 및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를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만큼 올해도 주주제안을 이어갈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지난해 롯데알미늄 정기주총을 앞두고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제안을 냈던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올해도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측에 반기를 드는 주주행동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난 뒤 매년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자신의 이사직 복귀안과 신 회장의 해임안을 제출해 표 대결을 벌여왔다. 하지만 총 9차례에 걸친 표 대결에서 모두 패배했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의 롯데홀딩스 이사 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올해는 상법 개정 추진과 맞물려 행동주의 타깃 사례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행동주의 캠페인 대상이 된 국내 기업은 2019년 8개에서 2023년 77개로 약 10배 증가해 글로벌 행동주의 캠페인 평균 증가율(4%)을 크게 상회했다. 주주환원과 거버넌스 중심으로 캠페인이 늘어난 결과다.
농심, SK스퀘어, 코웨이, KT&G, 이마트, 롯데쇼핑 등에 대한 주주제안이 대표적이다. 최근 익명의 한 개인투자자가 농심의 낮은 수익성과 주가수익률을 지적하는 공개 주주서한을 보냈다. 소액주주행동 플랫폼 액트는 롯데쇼핑을 상대로 저조한 주가 및 실적에 대해 개선을 촉구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한데 이어 3월 정기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통한 집중투표제 도입 등 안건 상정을 예고했다.
액트는 이마트에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등기임원 취임,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을 요구하는 주주행동도 예고한 상태다.

영국 행동주의펀드 팰리서캐피털은 지난해 11월 SK스퀘어를 대상으로 자사주 매입·소각, 독립이사 선임 등을 제안했다.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2022년부터 KT&G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최근 KT&G 전직 이사회가 자사주를 무상 또는 저가로 처분해 회사에 1조원대 손해를 입혔다며 주주대표소송도 제기했다.
아주기업경영연구소는 올해 주주총회는 지난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소수주주 보호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 등의 영향을 받아 적극적 주주활동 외에도 기업들의 자발적인 주주환원 확대 노력, 경영권 분쟁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소는 ‘2025년 정기주총 프리뷰’ 보고서에서 “기업이 주주제안자들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사례들을 고려할 때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행동주의펀드 등의 활동은 2025년에도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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