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휩쓴 딥시크 쇼크는 각국 정부 기관의 ‘금지령’에 일단락 된 듯 하다. 그러나 딥시크발 차이나 쇼크가 남긴 숙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첨단 산업 전방위에서 ‘제2 딥시크 쇼크’가 계속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럼 그렇지”라고 안심하는 순간, ‘made in china’의 공습이 시작된다.

딥시크 앱. 사진=한국경제신문
딥시크 앱. 사진=한국경제신문
“마치 ‘두더지 게임’과 같다. 중국은 우회할 방법을 찾는다. 그 예가 딥시크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지명자는 지난 1월 29일(현지 시간)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겠냐’는 테드 버드(노스캐롤라이나, 공화당) 의원의 질의에 이렇게 말했다.

두더지가 구멍에서 랜덤으로 튀어나오듯 아무리 잡아도 다른 곳에서 살길을 찾는다는 뜻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미국이 때리면 때릴수록 제2 딥시크가 계속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마불사 중국의 ‘AI 굴기’가 시작됐다. AI마저 가성비600만 달러(80억원).

딥시크가 주장한 추론 모델 R1의 개발 비용이다. 오픈AI의 챗GPT-4 훈련 비용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빅테크는 최첨단 LLM 모델을 훈련하는 데 수억 달러를 썼다. AI 스타트업의 초기 시드 투자 규모는 보통 100만~500만 달러다. 600만 달러는 초기 스타트업이 기술 프로토타입을 만들거나 소규모 모델을 훈련하는 데 적절한 규모였다.

세계가 놀란 것도 이 지점이었다. 챗GPT에 맞먹는 고효율의 LLM 모델을 선보이면서도 딥시크-R1은 파격적인 수준으로 개발비용을 낮췄다. 딥시크 측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미국의 기술 제재로 고성능 AI 칩을 수입하지 못한 열악한 환경에서 이뤄낸 기술혁신이었다. 딥시크가 뭐길래
딥시크 량원펑 CEO는 R1 모델을 공개한 후 리창 총리의 좌담회에 참석했다. 그는 LLM 관련 기업 중 유일한 참석자다. 이 사진 한 장에 중국 정부가 딥시크를 지원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진=중국 CCTV 캡처
딥시크 량원펑 CEO는 R1 모델을 공개한 후 리창 총리의 좌담회에 참석했다. 그는 LLM 관련 기업 중 유일한 참석자다. 이 사진 한 장에 중국 정부가 딥시크를 지원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진=중국 CCTV 캡처
미국의 무역 제재를 비웃듯 ‘두더지’처럼 등장한 딥시크는 중국 항저우에 본사를 둔 AI 스타트업이다. 2023년 설립됐다. CEO는 1985년생 중국 광둥성 잔장 출신의 량원펑(梁文峰). 오픈AI의 샘 올트먼과 동갑이다. 지금이야 ‘중국판 샘 올트먼’으로 불리지만 올해 초만 해도 그를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은둔형 CEO로 베일에 가려진 정보가 많다 보니 최근 화제가 된 이후 그를 소개할 때 동명이인이 소개되는 웃지 못할 일화도 생겼다.

중국에선 퀀트 투자(계량 투자)의 선구자인 짐 사이먼스에 그를 비유한다. 량원펑이 헤지펀드 매니저로 시작한 이력 때문이다. 중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량원펑은 수학 천재다. 중학생 때 독학으로 미적분을 익혔으며 이후 중국 최고 명문 대학 중 하나인 저장대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 동기 두 명과 2015년 퀀트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High-Flyer)’를 설립했다. 하이플라이어는 다른 퀀트 펀드와 달랐다. 량원펑은 AI 기술을 투자 전략에 접목한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하이플라이어가 운용한 5개 이상의 펀드가 시장 평균 대비 20% 이상의 초과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 기술 독점을 깨다량원펑은 2019년부터 엔비디아의 GPU를 활용한 컴퓨팅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2022년 말 오픈AI가 챗GPT를 발표했을 당시 중국에서 1만 개 이상의 엔비디아 고성능 GPU를 확보한 극소수 기업 가운데 하나가 하이플라이어였다.

그는 빅테크의 기술 독점을 깨길 원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코드를 오픈소스로 만드는 것을 목표했다. 그는 지난해 36Kr과의 인터뷰에서 “기술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을 따르는 것이 큰 성취감을 준다”며 “오픈소스는 상업적 행동이라기보다는 문화에 가깝고 그것에 기여하는 것은 우리에게 존경을 얻게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2023년 5월 딥시크가 등장했다. 량원펑은 LMM과 AGI에 집중하기 위해 하이플라이어의 AI 연구부서에서 분리해 딥시크를 설립했다. 그해 11월 딥시크의 첫째 오픈소스 AI 모델인 ‘딥시크 코더’를 공개했다. 2024년 5월엔 ‘딥시크-V2’를 출시했다. 이때부터 딥시크표 ‘가성비 AI’가 중국 내에서 차츰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계에 이름을 알린 건 지난해 12월 말 ‘딥시크-V3’와 리즈닝 모델인 ‘R1’을 선보이면서다. AI 전문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딥시크의 이름이 미국의 주요 외신에 언급될 정도였다. 당시 CNBC는 “V3가 엔비디아 중국 수출용 GPU인 H800에서 훨씬 적은 비용으로 학습됐음에도 ‘GPT-4o’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두더지 게임…미국이 때릴수록 제2 딥시크 더 나온다” [딥시크, 딥쇼크③]
세계가 주목업계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오픈AI 창립 멤버이자 테슬라의 전 AI 부문 이사인 안드레이 카르파티는 지난해 말 엑스(X)에 “딥시크가 말도 안 되는 비용으로 프런티어급 LLM 출시를 아주 쉬워 보이도록 만들었다”며 “제약된 자원에서 연구와 엔지니어링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국내 증권사 중 처음으로 딥시크의 심층자료를 펴낸 미래에셋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딥시크는 25~30배 저렴한 가격이면서도 o1 성능과 일치한다”며 “최대 98% 파격 바겐세일”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이 알아본 건 이보다 훨씬 뒤늦은 1월 27일 미국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앱 다운로드 순위에서 ‘R1’ 모델이 오픈AI의 챗GPT를 밀어내고 1위에 오르면서부터다. 딥시크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AI 칩을 사용해도 글로벌 수준의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투자자 사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엔비디아 주가가 하룻새 수직낙하했고 기술주가 큰 폭으로 흔들렸다.

중국 내에서도 이 정도의 폭발적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량원펑과 동료들은 하룻밤 사이에 시장이 광란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압박이 빚은 성과저비용, 고효율의 기술혁신이었다. 특히 딥시크가 설립된 2023년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인 H100과 A100 GPU의 수출이 제한됐을 때다. 2023년 10월엔 엔비디아가 미국 수출통제를 우회하기 위해 만든 저사양의 H800과 A800 칩의 수출도 중단됐다.

열악한 상황에서 딥시크는 기술 개선을 통해 고성능을 달성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기 시작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딥시크의 최신 모델은 GPU 리소스를 극한으로 활용한다”며 “미국의 대중 압박 조치로 인한 ‘GPU 부족 사태’가 절박함과 창의성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AI 반도체 제재가 뜻밖의 ‘두더지’를 만들어낸 셈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앞으로 제2의 두더지가 우후죽순 쏟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가성비 AI’ 딥시크 모델을 시작으로 B2C 시장이 개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경쟁으로 생성형 AI 모델 가격 인하가 시작되고 대중 보급화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폰보다 큰 시장산업계 저변으로 응용이 확대되면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의료AI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다시 하드웨어 확대로 이어진다. 실체가 있는 디바이스를 제어할 수 있는 ‘피지컬 AI’가 차세대 주자로 조명받는 이유다. 관련해 엔비디아 로보틱스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짐 팬 박사는 이 시장이 애플의 ‘아이폰’보다 훨씬 큰 시장 규모로 확장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율주행 자동차, 드론,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3대장이다.

3대장 모두 중국이 상당한 경쟁력을 보이는 곳이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테슬라 방식을 빠르게 흡수·모방하고 있으며 드론 기술에서는 이미 글로벌 1위 수준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도 빠른 발전을 보인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2025년까지 주요 기술적 돌파구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의 AI 굴기딥시크가 촉발한 미·중 전쟁은 이제 막 포문을 열었다. 미국 의회 상원에선 딥시크 사용이 금지됐으며 일각에선 미국 전역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친중을 제외한 주요 국가에선 개인정보를 이유로 정부와 기업이 사용 금지를 선언했다. 한국도 정부, 공공기관, 일부 기업에서 딥시크 금지령이 선포됐다. 한 애널리스트는 “이러한 중국의 진전은 미국 기업과 정치권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의 선전을 막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올해 관전 포인트는 중국 AI 연구소들이 미국을 얼마나 빨리 따라잡을 수 있을지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메리츠증권 최설화 애널리스트는 “미국이 중국을 때릴수록 ‘새 두더지’는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바이두 등 중국 빅테크 외 신예들이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2024년 중국 AI 벤처기업 중 10억 달러 이상 평가받는 비상장사는 지푸(대표 제품 챗GML), 문샷(Kimi), 미니맥스(Talkie, Hailuo), 바이촨(Baichuan), 01 AI(Yi 34B) , 스텝펀(Step-2) 등 6개사다.
“두더지 게임…미국이 때릴수록 제2 딥시크 더 나온다” [딥시크, 딥쇼크③]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