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사실 아냐
한국 증시 변두리 시장으로 전락 우려
밸류업 핵심 정책 언급 없어

2024년 6월 24일 상장기업 사내·사외이사 대상 '기업 밸류업' 설명회에 참석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2024년 6월 24일 상장기업 사내·사외이사 대상 '기업 밸류업' 설명회에 참석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 성과’ 발언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포럼은 정 이사장의 평가가 “사실과 다른 자화자찬”이라며 한국 증시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안일한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포럼은 14일 이남우 회장 명의의 논평을 통해 “정 이사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 이사장은 지난 1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밸류업 정책이 상당히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자사주 매입·소각이 사상 최대 규모로 이뤄졌고, 배당성향도 상당 부분 상향 조정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포럼은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 증시는 빠르게 변두리 시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정 이사장의 자본시장에 대한 인식이 놀랍다”고 직격했다. 포럼은 특히 밸류업 정책의 핵심 이슈인 주주권리 강화, 투자자 보호, 이사회 독립성, 자본비용 절감, 자본배치 효율화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기자간담회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포럼은 정 이사장 취임(2024년 1월 15일) 이후 1년간 코스피 지수가 약 3% 하락한 점을 지적하며 한국 증시의 밸류에이션(가치평가)도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포럼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기준으로 2024년 1월 현재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8.4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6배로, 밸류업 정책이 발표된 2023년 4월 당시(각각 11배, 1.1배)보다 낮아졌다.

포럼은 한국 증시가 투자자 신뢰를 잃은 핵심 이유로 중복상장 문제를 꼽았다. 한국 증시의 중복상장 비율(상장사가 보유한 타 상장사 지분 시장가치를 전체 시가총액으로 나눈 값)은 18%로, 미국(0.4%), 중국(2.0%), 일본(4.4%), 대만(3.2%)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하지만 정 이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중복상장은 해당 기업과 투자자의 판단에 맡길 문제”라고 발언해 개입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포럼은 “일본 증시 개혁을 주도한 야마지 히로미 일본 증권거래소그룹(JPX) 대표와 비교하면, 정 이사장은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도와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한국거래소가 단순히 상장기업 수만 늘리는 정책을 펼친 결과,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에 일조했다”면서, 더 이상 숫자 증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포럼은 정 이사장이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노력을 강조한 데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포럼은 “한국 증시는 MSCI 신흥시장(EM) 내에서도 점유율이 1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며 “헛된 선진지수 편입을 논하기보다는 대만을 따라잡기 위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꼬집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