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입법예고 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31일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했던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불과 5일 만에 폐기됐다. 이로써 투자목적의 지식산업센터 분양을 제한하는 입법 시도는 다시 한번 좌절됐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심각한 데다 수분양자들의 피해와 고통이 막심한 탓이다.
수분양자들과 지식산업센터 업계는 정부와 정치권에 업종 확대, 용도 변경 등을 요구하고 있다. 매매와 실사용 수요를 조금이나마 늘리려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발맞춰 규제를 서서히 완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거나 투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방안은 기존의 제도를 뿌리째 흔든다는 점에서 전문가들도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생숙과 쌍둥이
지식산업센터는 여러모로 생활형숙박시설과 공통점이 많다. 부동산 호황기에 수익형 부동산으로 각광을 받았던 점이나 각종 규제가 많은 주택 대체 상품으로 부상했던 점에서다.
건축법 12조에 따라 조성되는 생활형숙박시설은 2012년 외국인 관광객과 장기체류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취사가 가능한 숙박시설로 도입됐다. 주로 관광지나 도심에 위치해 부동산 시장에선 호텔과 오피스텔의 중간 상품으로 여겨졌다. 원룸~투룸 구조의 소형 타입을 마치 오피스텔처럼 편법으로 임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업시행자는 공사비가 많이 드는 지하주차장 면수가 아파트나 오피스텔 대비 적고 복도폭이 좁아 분양면적을 넓힐 수 있는 생활형숙박시설 공급에 박차를 가했다. 생활형숙박시설은 주차장 기준이 ‘시설면적 2000㎡당 1대씩’이지만 오피스텔은 세대당 1대씩이다.
주거 고급화 바람이 불자 생활형숙박시설은 점차 호텔급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하이엔드 주거상품 ‘레지던스’로 분양되기 시작했다. 분양권 전매제한이 없고 주택수에 포함되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더 인기였다. 일부 분양사무실에선 소유주의 거주 및 전입신고가 가능하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부산 랜드마크인 엘시티 레지던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투자 열기가 정점이던 2021년 정부는 칼을 빼들었다. ‘생활형숙박시설 불법전용 방지대책’이 나왔던 당시 숙박업 미신고 물량은 5만2000여 실에 달했다. 해당 대책을 통해 정부는 전입신고를 한 생활형숙박시설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전국주거형레지던스연합회 등 레지던스 입주자들은 세종정부청사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일각에선 “분양계약을 할 당시 생활형숙박시설이라는 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못 들었다”면서 불완전 판매를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방조한 정부, 지자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신규 분양은 금지
![원칙과 현실 사이…갈팡질팡하는 정부·정치권[지식산업센터의 눈물③]](https://img.hankyung.com/photo/202502/AD.39729184.1.jpg)
오피스텔 용도변경을 위해서는 우선 지자체에서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해 토지 용도를 오피스텔 건설이 가능하도록 바꾸도록 했다. 200억원을 기부채납해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한 ‘마곡 르웨스트’ 사례도 들었다. 오피스텔 복도는 폭이 1.8m를 넘는 것이 기준이지만 1.5m 폭에 피난 및 방화설비를 강화해 화재 안전 성능을 검증받도록 했다. 부족한 주차장은 외부 주차장 추가 설치, 지자체 조례 개정을 통해 기준을 채우도록 했다.
최근 지식산업센터 논란이 커지자 이에 대한 대책도 나오고 있다. 패턴은 비슷하다. 국토교통부는 2023년 지식산업센터 기숙사를 구분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놨다. 편법 분양에 대해서는 임대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에 대한 신규 분양을 차단했다.
더불어 올초에는 지식산업센터 업계가 오랫동안 요구했던 업종 제한이 대폭 완화됐다. 지난해 산업집적법 시행령,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산업단지 내 지식산업센터에 대해서는 도박업, 주택공급업 등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의 입주가 가능해졌다. 한때 단속 대상이던 전문건설업도 포함된다. 산업단지 밖 지식산업센터는 지자체장이 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무역, 도소매 등 입주 적합업종이 아닌 기업들이 관행적으로 사업자등록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추가할 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다음 정책, 나올 수 있나?
이 같은 상황에서 지식산업센터가 기존 제도의 취지대로 실수요자가 분양받고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정부나 정치권이 섣불리 관련 대책을 내놓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회의원 11명이 발의한 해당 법안은 산업집적법 제28조의 4에 지식산업센터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고 임차인이 전대하는 것을 막는 항목을 추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분양홍보관 운영도 제한하면서 지자체장 및 관리기관이 정기적으로 입주기업들이 입주 적합업종에 해당하는지 점검하도록 하고 있었다.
법안은 분양권 거래로 인해 실사용 기업들의 지식산업센터 입주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였다.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분양홍보관 역시 결국 부동산 개발비용이 투입돼 분양가격을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언주 의원실 관계자는 “지식산업센터 설립 취지에 맞는 법안이라 발의를 했지만 부동산 경기침체로 시장이 고사직전으로 어려워 결국 폐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규제를 풀 수만은 없다. 지식산업센터 규제는 2010년 산업집적법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완화돼왔다. 기숙사 외에 생산시설이나 사무실로 사용되는 지식산업센터를 주거용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거용이 아니라면 상가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수요와 수익을 보장하기 어렵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는 “제조업체라 하더라도 제조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통신기술이나 무역 등 다양한 업종이 입주를 하는 게 시너지를 내는 데 좋을 수 있다”며 “입주 적합 업종을 확대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권 교수는 “지식산업센터 기숙사를 오피스텔로 변경하면 정작 입주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월세가 비싸 기숙사에서 거주하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이 살게 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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