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인가, 전투복인가…대통령의 옷 한 벌이 만든 외교적 파장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월 28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월 28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국가 정상의 옷차림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메시지이며 협상의 무기다. 때로는 칼보다 강력한 외교적 도구가 된다.

2월 28일(현지 시간)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복장이 외교적 논란의 중심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장이 아닌 우크라이나 국가 상징인 삼지창이 새겨진 검은색 셔츠와 검정 바지를 입었다.

그의 복장은 전쟁 발발 이후 유지해 온 ‘전시 지도자’의 이미지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불편하게 여겼다. 그는 기자들에게 “그가 오늘 제대로 차려 입었다”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지며 불쾌감을 표했고 회담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이 평화에 대한 선의의 의지를 보인다고 판단할 때까지 군사적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자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정장을 입지 않았느냐”고 조롱하듯 질문한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이자 ‘하이힐 신은 트럼프’로 불리는 공화당 하원의원 마저리 테일러 그린의 남자친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됐다.

이 사건은 국가 정상의 옷차림이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외교적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적으로도 옷은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그렇다면 정상들은 왜 특정한 옷을 선택하는가. 그들의 복장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이를 통해 패션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외교와 전략의 언어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연설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
연설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
“대통령 옷차림은 메시지”…외교 무대에서 패션의 힘

국가 정상의 옷차림은 권력의 언어이자 전략적 도구다. 정상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특정한 복장을 선택하며 이를 통해 자신과 국가의 입장을 표현한다. 이는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상징과 신호의 역할을 한다. 슈트는 권력과 전통적인 리더십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정장은 권위와 공식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상대국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반면 군복과 전투복은 전쟁 지도자의 상징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전투복 스타일을 유지하며 자신을 ‘전쟁 중인 국가의 대통령이자 최고 야전사령관’의 위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의 복장은 ‘나는 국민과 함께 싸운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강력한 상징이었다. 정상들은 종종 의상을 활용해 미묘한 정치적 신호를 보낸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군복을 입고 연설하며 ‘혁명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정장을 고수하며 강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반면 버락 오바마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거나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려 ‘유연하면서도 실용적인 리더’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8일(현지 시간) 백악관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8일(현지 시간) 백악관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의 상징적인 전투복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에 대한 대반격을 선언하고 유럽 7개국을 순방하며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그의 대외 일정이 잦아지면서 옷차림에 담긴 메시지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도 셔츠와 바지 차림을 고수하며 최고 야전사령관으로서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특히 검은색과 국방색 셔츠에 새겨진 ‘트리주브(Tryzub)’ 문양이 그의 상징적인 복장으로 자리 잡았다. 우크라이나어로 ‘삼지창’을 뜻하는 트리주브 문양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상징으로 10~12세기 키이우 루시 왕조 시절부터 사용됐다. 이는 세계가 땅·천체·영혼으로 분리돼 있으며 공기·물·흙의 세 요소로 이뤄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91년 독립 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국가 상징으로 채택했고 1996년 헌법에도 명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2023년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2023년 3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지난해 12월)과의 회담에서도 이 문양이 새겨진 셔츠를 착용했다. 이는 단순한 복장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미 연방정부 자문기구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가 2월 1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아들에게 목마를 태우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미 연방정부 자문기구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가 2월 1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아들에게 목마를 태우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패션은 정치”…정상의 옷차림이 말하는 것

패션은 단순한 외적 치장이 아니라 국가와 지도자의 메시지를 담은 강력한 외교 도구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투복 스타일은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상징하는 강력한 메시지였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외교적 긴장을 초래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정장을 요구하며 ‘격식’을 강조했지만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내세운 전시 리더의 이미지와 충돌했다. 흥미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백악관에서 티셔츠와 ‘마가(MAGA)’ 모자를 착용해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정장을 입지 않은 것에 불만을 표했다. 이는 패션이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과 연관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정상의 옷차림은 국가 간 관계를 조정하고 외교적 신호를 보내는 전략적 도구다.

단순히 ‘그가 어떤 옷을 입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를 읽어야 한다. 때로는 한 벌의 슈트가 협상을 부드럽게 만들고 때로는 전투복이 저항의 의지를 표출한다. 결국 패션은 정치이며 정상들의 드레스코드는 국가의 전략이다.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 사진=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제공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 사진=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제공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