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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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품 불매운동이 캐나다를 넘어 유럽과 중남미로까지 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머스크 CEO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반감이 원인으로 꼽히며, 세계 각지 소비자들은 미국산 제품을 피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미국산 제품을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돕는 앱과 커뮤니티까지 등장했다.

12일(현지 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 제품 불매운동이 국제적으로 확산하며, 소비자들이 미국산 제품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테슬라 불매운동이다.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된 일론 머스크 CEO가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테슬라 반대 집회까지 열렸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에 따르면, 2025년 1월 테슬라의 유럽연합(EU),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체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45.2% 감소했다. 지난해 1월 1만 8,000대 이상을 판매했던 테슬라는 올해 같은 기간 1만 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같은 기간 해당 지역의 전기차 판매량이 37% 증가한 것과 대조적인 수치다.

특히 독일에서는 머스크 CEO가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공개 지지한 이후 테슬라 불매운동이 거세졌다. 독일연방자동차운송청(KBA)에 따르면, 지난달 독일 내 전기차 신규 등록은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지만, 테슬라 차량 등록은 76% 급감했다.

미국산 농산물과 소비재에 대한 불매운동도 확산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미국산 제품을 구별하는 ‘메이플 스캔’, ‘캐나다산인가요?’, ‘비버 구매’ 등의 앱이 등장했다. 술부터 피자 토핑까지 다양한 제품의 QR코드를 스캔해 원산지를 확인한 뒤, 미국산 제품을 피하는 방식이다.

캐나다인들의 미국 여행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으로 육로 여행을 떠난 캐나다인 수는 116만 4,526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했다.

중남미와 유럽에서도 미국 제품 불매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 프랑스 등에서는 미국 기업 제품을 피하기 위한 페이스북 그룹에 7만 명 이상이 가입했다. 이들은 대체 상품 정보를 공유하며 불매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코카콜라 대신 '브레이즈 콜라', 맥도날드 대신 '버거퀵', 스타벅스 대신 '콜럼버스 카페'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계에서도 미국과의 거리두기가 감지된다.

캐나다의 한 하키 경기에서는 미국 국가가 연주되자 관람객들이 야유를 보냈으며, 독일의 저명한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올해 여름 예정된 미국 투어를 취소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정책을 비판하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외면할 수 없다. 분노가 너무 커 연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도 미국산 제품 배제를 선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온타리오주의 주류통제위원회(LCBO)는 지난달 모든 매장에서 미국산 주류 철수를 지시했다. 온타리오주 내 레스토랑과 기업들도 미국산 주류 재입고와 주문도 금지했다.

퀘벡주, 매니토바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 캐나다 주요 지역에서도 미국산 주류 판매 중단을 지시했다. 이들 지역의 인구를 합하면 약 3,000만 명으로, 캐나다 전체 인구의 75%에 해당한다.

온타리오주 포드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머스크가 운영하는 스페이스X와 체결했던 1억 캐나다달러(약 1,011억 원) 규모의 계약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뉴욕, 미시간, 미네소타주 등 미국 내 150만 가구에 공급되는 전력에 25%의 수출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덴마크 최대 식료품 기업 살링 그룹은 소비자들이 미국산이 아닌 유럽산 제품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유럽산 제품에 검은색 별표를 붙이겠다고 밝혔다. 노르웨이의 석유 공급업체 Haltbakk는 최근 미국 해군 함선에 연료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불매운동 확산에 따라 기업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주요 미국 브랜드를 소유한 일본의 다국적 주류업체 산토리 홀딩스의 CEO 니나미 타케시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무역 전쟁이 발발하면 글로벌 소비자들이 미국 브랜드를 피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산 위스키를 포함한 미국산 제품의 수요 감소를 예상하고 올해 판매 전략과 예산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