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 달러 가치도 급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 110대였던 달러인덱스는 102대로 급락했다. MAGA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달러 가치가 바탕이 돼야 한다. 오히려 바라지 않는 아시아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어 취임 이후 주력해 왔던 관세정책이 무력화되고 무역적자까지 확대될 확률이 높다.
셋째, 국민 지지도마저 급락하고 있다. 관행상 여론조사 기관이 취임 이후 두 달 만에 실시하는 첫 조사에서 두 번 이상 재임한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게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43%로 린드 존스 69%, 로널드 레이건 56%, 빌 클린턴 59%에 크게 못 미칠 뿐만 아니라 무능력하다고 경멸했던 버락 오바마의 48%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4월 들어서는 40%마저 내준 여론조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넷째,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핵심 지지층의 이반 조짐도 뚜렷하다. 최근 실시됐던 위스콘신 대법관 선거에서 보수 성향의 브래드 시멀이 일론 머스크의 2000만 달러 이상의 대대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진보 성향의 수전 크로퍼드에게 패배했다. 선거 결과를 접한 트럼프 대통령도 충격을 받았다는 뒷얘기까지 들릴 정도다.
다섯째, 트럼프 진영 내부도 권력 다툼으로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부터 잠복해 왔던 친머스크와 반머스크 간의 알력이 머스크가 정부효율부(DOGE)를 떠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본격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중재 역할을 해야 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와 달리 최근에는 어느 한편도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어 지금보다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섯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구축한 미국 위주의 국제협력 체제도 급속히 와해되고 있다. 집권 1기 때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 경제 양대 기관에 재원을 조달해 주지 않아 그 기능이 많이 약화됐다. 집권 2기 들어서자마자 정치·군사적으로 유엔마저 탈퇴를 선언해 ‘돈로(DonRoe) 독트린’을 완성했다. 돈로란 트럼프의 도널드와 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가 주창한 먼로주의를 합친 신조어를 말한다.
일곱째, 돈로 독트린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력해온 상호관세도 ‘슈뢰딩거 방식’을 채택해 미국의 국익만을 생각하는 극단적인 보호주의 조치로 채워졌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인 에르빈 슈뢰딩거의 파동과 입자가 공존하는 양성자 실험에서 유래된 이 방식은 교역 상대국을 파동(경쟁할 힘)은 죽이고 입자(국가)는 살리는 완전 제압식 관세정책을 말한다. 유럽 등 전통적인 동맹국도 예외를 두지 않고 있다.
미국 내부적으로 국민과 트럼프 진영이 균열되고 국제적으로 미국 위주의 협력체제가 붕괴되는 여건에서 돈로 독트린과 슈뢰딩거 방식의 MAGA 구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은 명확하게 NO(아니다)다. ◆ 한국, 환율조작국 포함되나공식 일정대로라면 상호관세 부과에 이어 4월 15일 전후에는 미국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가 발표된다. 미국의 8대 무역 적자국이자 비관세장벽이 높아 상호관세 부과 당시 최악국으로 몰린 우리나라가 이번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것인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강한 미국과 강한 달러’ 기조를 표방해 왔다. 2차 대전 이후 공화당이 집권할 때마다 달러 위주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비교적 잘 유지됐다. 트럼프 정부가 MAGA를 구상하는 것도 조 바이든 정부 들어 국제통화체제가 ‘시스템이 없다(no system)’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미국과 달러 위상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또 다른 전통인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를 통해 수출이 잘될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한다. 기업가 출신이 많은 집권 2기에는 강달러를 아예 포기하고 약달러를 추진해야 한다는 시각까지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달러 정책에 대해 혼선을 빚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달러와 약달러 필요성을 동시에 느낄 때 미국이 추진해 왔던 환율정책은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에 따른 ‘이원적 전략’이다. 틴버겐 정리는 198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 당시 한 수단으로 경기부양과 물가안정을 잡기가 어렵게 되자 목적별로 수단을 달리 가져가자는 정책조합을 말한다. 환율정책 면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적용해 왔다.
이원적 환율정책 관점에서 공화당의 전통인 강달러 기조를 유지하면서 현안인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경로를 추진해 보면 교역국 입장에서는 상호관세보다 환율 보고서가 더 어렵게 나올 확률이 높다. 달러 가치는 전체 미국의 무역적자에서 비중이 낮은 유럽 통화에 대해서는 강세, 비중이 높은 아시아 통화에 대해서는 약세가 돼야 한다. 구성 비중이 높은 유로화가 약세가 띠면 달러인덱스가 올라 공화당의 전통인 강달러 기조 유지도 가능하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달러 가치는 최적경로와 반대로 흐르고 있다.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와 독일의 부흥으로 유로화에 대해서는 약세, 아시아 통화에 대해서는 강세를 띠고 있다. 유로화 강세로 달러인덱스는 취임 전 110대에서 104대로 떨어져 이대로 가다간 공화당의 전통이 무너지고 무역적자까지 확대돼 관세정책마저 무력화시킬 확률이 높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을 비롯한 트럼프 진영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이원적 환율정책에서 한국 원화는 가장 많이 이탈돼 있다.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원·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을 추정해 보면 달러당 1250원 내외로 나온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 내외에서 움직이는 점을 고려하면 220원 정도 높아 미국의 10대 무역 적자국 통화 중에서 가장 평가절하된 수준이다.
미국으로부터 오해를 받을 소지도 있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외국인 자금이 국채 시장을 포함해 4조원 이상 들어왔다. 시장에 맡겨놓으면 외국인 자금이 1조원 유입될 때마다 원·달러 환율은 10원 정도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1470원대로 올라 인위적으로 원화 약세를 조작한다는 시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당국은 오바마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무역촉진법 2015’에 따라 까다로운 BHC(배넷-해치-카퍼) 조건을 들어 환율조작국 지정이 어렵다는 낙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 2기 첫 환율 보고서인 이번에는 집권 1기 때부터 검토해 온 ‘종합무역법 1988’이 적용될 확률이 높다. 이 법에 따라 환율조작국에 지정됐던 1990년대 우리 경제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되돌아보면서 미리 대비해 놓아야 할 때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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