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5’ 현장을 방문해 SK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5’ 현장을 방문해 SK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K그룹이 로봇사업에 뛰어들 전망이다. SK온이 100% 지분을 보유한 미국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가 로봇자동화 전문기업 유일로보틱스의 2대주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자회사로 편입된 레인보우로보틱스처럼 유일로보틱스도 SK그룹 계열사 편입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4월 1일 SK배터리아메리카는 유일로보틱스와 최대주주 변경 가능성을 포함한 콜옵션(매도청구권) 계약을 체결했다. SK그룹의 2차전지 계열사인 SK온은 향후 5년 내 23% 지분을 주당 2만8000원에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최대주주 전환도 가능하다.

SK배터리아메리카는 지난해 6월 37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통해 유일로보틱스 지분 13.47%를 확보한 2대주주다.

SK 품에 안기나…편입 기대감에 주가 급등

2011년 설립된 유일로보틱스는 스마트팩토리 자동화 시스템부터 산업용로봇까지 개발 및 생산하는 토털솔루션 로봇 전문 기업이다. 2024년 매출액은 350억원, 영업이익은 4억원이다. 지난해 기준 사업부별 매출 비중은 자동화시스템 58%, 로봇 24%, 기타(스마트팩토리 솔루션 등) 18% 등이다.

다관절, 협동, 직교 등 다양한 산업용로봇 라인업과 주변 자동화설비(FA)를 동시에 공급할 수 있는 공정 자동화 관련 통합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지난해 SK배터리아메리카가 2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시장에서는 SK온 등 SK그룹 계열사 대상의 로봇 자동화 수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현재 SK 측 주요 인사가 유일로보틱스 이사회에 입성한 만큼 향후 의사결정에서도 영향력이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유일로보틱스는 4월 중순 인천 청라에 5000평 규모의 신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 신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생산능력이 약 2300억원 규모로 확대된다. SK온의 미국 배터리 공장 자동화 설비에 들어가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련 수주 증가에 대응한 투자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에는 차세대 로보틱스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삼성전자, HD현대로보틱스 출신 노경식 박사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해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과 자율이동로봇(AMR) 개발, 피지컬 AI 기술을 접목한 모바일 듀얼 암 시스템 개발 등으로 사업 확장을 추진 중이다.
유일로보틱스 개요. 그래픽=박명규 기자
유일로보틱스 개요. 그래픽=박명규 기자
유일로보틱스 주주 현황. 그래픽=박명규 기자
유일로보틱스 주주 현황. 그래픽=박명규 기자
스마트공장부터 AI·배터리·반도체까지 시너지 기대

시장 일각에선 SK의 투자가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편입한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에 ‘제2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SK배터리아메리카와 최대주주 변경 가능성을 포함한 콜옵션 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진 4월 2일 유일로보틱스 주가는 장중 28% 넘게 오르기도 했다.

주가 급등은 SK의 유일로보틱스 투자가 앞서 삼성전자의 레인보우로보틱스 자회사 편입과 비슷한 만큼 주가 반응도 비슷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2023년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10.2%의 지분을 사들여 2대주주에 올랐다.

이어 추가 지분 매수와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보유 주식 콜옵션 계약으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을 35%로 늘려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지난해 말 자회사로 편입했다. 유일로보틱스의 시가총액은 8337억원(4월 9일 기준)으로 레인보우로보틱스(4조6948억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SK그룹이 SK하이닉스, SK온 등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공장에 산업용로봇을 투입하고 스마트공장 시스템 구축에 공들이고 있는 만큼 향후 유일로보틱스와 전략적 협업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SK온은 미국 조지아공장 생산라인의 75%를 현대차·기아 공급용 배터리로 전환했다. 관세 부과를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현대차·기아의 전략에 발맞춰 SK온도 현지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리게 된 것이다. SK온은 수주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에 유일로보틱스 로봇의 성능 테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의 로봇 분야 투자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SK텔레콤은 AI로봇 솔루션기업 씨메스에 투자해 2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SK텔레콤은 씨메스와 ‘AI 물류 이·적재 로봇’을 개발해 제조 공정의 효율을 높이는 작업을 해왔다.
4대 그룹이 투자한 주요 로봇 기업. 그래픽=박명규 기자
4대 그룹이 투자한 주요 로봇 기업. 그래픽=박명규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CES 2025’ 개막을 하루 앞둔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호텔에서 키노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CES 2025’ 개막을 하루 앞둔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호텔에서 키노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SW→HW로 확장, 피지컬 AI 시대 준비하는 SK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그동안 로봇 사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내왔다. 올해 1월 ‘CES 2025’에서 “속칭 피지컬 AI라고 하는 로봇 등 모든 곳에 인공지능(AI)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AI가 일상화·상식화된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피지컬 AI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고 엔비디아가 최근 발표한 코스모스 플랫폼을 앞으로도 같이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피지컬 AI는 휴머노이드나 자율주행차 같은 물리적 기기에 탑재되는 AI를 말한다.

로봇 시장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BCC에 따르면 현재 780억 달러(약 116조원) 규모인 글로벌 로봇시장이 2029년 1650억 달러(약 245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AI 기술 발달에 힘입어 가격경쟁력이 생기며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도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기업들은 휴머노이드 로봇 경쟁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35년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는 380억 달러(약 54조8750억원)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는 연내 전기차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투입할 방침이다.

엔비디아는 ‘CES 2025’에서 로봇 개발 플랫폼인 코스모스를 공개한데 이어 최근 ‘GTC’에서 개방형 휴머노이드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아이작 GR00T N1’을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대표이사 직속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고 로봇 스타트업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돌입했다.

LG전자는 로봇 사업 확대를 위해 올해 초 상업용 자율주행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의 경영권을 확보해 자회사로 편입, 기존 상업용 로봇 브랜드 클로이 사업과 통합할 방침이다. 구글은 미국 로봇 스타트업 앱트로닉에 투자하며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 진출, 자사의 AI와 앱트로닉의 하드웨어를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중이다.

유일로보틱스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도 착수한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SK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ABC(AI·배터리·반도체) 사업과 접목돼 새로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커지면 로봇 전용 배터리 시장도 커질 전망이다.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나선 현대차그룹은 최근 삼성SDI와 로봇용 고성능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이 베어로보틱스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한 것처럼 SK온도 유일로보틱스가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면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로봇용 배터리를 단독 공급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온, SK하이닉스 등 생산공장에 산업용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으로 시작해 중장기적으로는 SK그룹이 보유한 AI 기술 및 서비스를 휴머노이드 로봇에 탑재하는 방향으로 협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