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사추세츠주 소재 자동차 판매소에 일본차들이 전시된 모습. 사진 UPI=연합뉴스
메사추세츠주 소재 자동차 판매소에 일본차들이 전시된 모습. 사진 UPI=연합뉴스
미국의 ‘관세 폭풍’은 동맹인 일본도 비껴가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10일 관세발표를 유예했지만, 기존에 계획된 일본산 제품에 대한 관세는 24%다. 일본은 미국의 관세 조치를 ‘국난’으로 규정하고 대책본부를 설치하는 등 관세 완화를 끌어내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日, 美 상호관세에 “재검토 강하게 요청”
일본 정부는 9일 미국의 국가별 상호관세 발효와 관련해 거듭 유감을 표명하고 철회를 요청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유감을 전하고 이번 조치의 재검토를 강하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미국이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를 예고했을 때도 미국에 유감을 표명하고 관세 부과 제외를 요구했다.

미국의 상호관세로 건설용 기계와 식품 등 일본의 폭넓은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건설용·광산용 기계는 2023년 일본의 대미 수출액에서 4.7%를 차지했는데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업체와 경쟁에서 악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관세 부과로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의 설비투자 계획도 유예되면서 기계 관련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상호관세 방침을 내놓으며 한국과 일본을 싸잡아 공격했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 등이 미국에 부과한 비관세장벽은 특히 심하다”며 “일본 내 자동차의 94%는 일본산이지만 도요타는 미국 밖에서 만든 자동차 100만 대 이상을 미국에 팔아넘긴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런 사태를 용인하고 일을 게을리한 과거 대통령들을 탓한다”며 “그래서 4월 3일부터 모든 외국산 자동차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풍’이 비껴가기를 간절히 기대했던 일본은 철강·알루미늄 관세, 자동차 관세에 이어 24% 상호관세까지 예고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노무라종합연구소가 재무성 통계를 근거로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은 미국과 교역에서 8조6417억 엔의 흑자를 기록했다. 작년 일본의 대미 수출액은 21조3000억 엔이었다. 수출 품목에서는 자동차와 관련 부품이 34.1%로 비중이 가장 컸다. 美 생산 늘리는 도요타·닛산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일본산 차량의 대미 수출길이 완전히 막힐 경우 최대 13조 엔의 경제 가치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닛케이 추산은 일본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0엔’이 된다는 가정에 기반한 것이지만 대미 수출이 10%만 줄어도 일본 경제에 1조3000억 엔가량의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의 자동차 추가 관세로 도요타의 영업이익이 30% 정도 감소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마쓰다와 스바루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마쓰다는 미국에서 파는 차량 중 19%만 미국에서 생산해 관세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고 스바루는 세계 판매량의 70% 이상이 미국일 정도로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다.

도요타는 2027년까지 전기차 생산 거점을 3곳 추가하기로 했다. 일본과 중국에서만 전기차를 생산하던 것에서 미국, 태국, 아르헨티나 등으로 거점을 확대한다. 닛케이는 “미국이 수입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등 세계경제가 블록화하는 가운데 도요타가 공급망 분산에 나섰다”며 “환율과 관세 리스크를 줄이고 운송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도요타는 2027년까지 15종의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생산 목표는 작년(약 14만 대)보다 7배 많은 100만 대로 잡았다. 미국에선 켄터키주와 인디애나주 공장에서 내년부터 각각 다른 차종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생산하기로 했다. 도요타의 지난해 미국 판매 대수는 233만 대에 달하지만 현지 생산 대수는 127만 대로 절반가량에 그친다.

닛산자동차는 하반기부터 SUV 로그를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당초 미국 공장 생산량을 줄이려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이 계획을 철회하고 증산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앞서 혼다는 미국의 관세 시행 전인 지난 2월 멕시코에서 생산한 차를 미국으로 수송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日 증시 연일 ‘롤러코스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촉발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으로 일본 증시는 연일 급등락을 반복하며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4월 9일 닛케이지수는 전날 종가인 3만3012에서 3.93% 하락한 3만1714로 장을 마감했다. 닛케이지수는 4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여파로 3만5000선이 무너지면서 급락하기 시작해 7일에는 7.83%나 하락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8일에는 6.03% 반등하며 3만3000선을 회복했고 이날 다시 급락했다. 닛케이는 “미·중 무역전쟁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위험을 회피하려는 양상이 선명해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일본 시간 9일 오후 1시 1분에 미국이 상호관세를 발동하면서 수출 관련 기업과 소재 기업 주식의 매도세가 강해졌다”며 중국 관련 기업들의 주가 하락세도 두드러졌다고 덧붙였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 147.39엔에서 한때 3엔 가까이 하락하는 등 엔화 강세였다. 오후 3시 50분 기준 환율은 144.8엔대였다. 세계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달러화를 팔고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작은 엔화를 사는 움직임이 확산한 것이다. 일본 채권시장에서 3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한때 연 2.785%까지 올라 2004년 8월 이후 약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美·日, 엔화 가치 올리나
미국과 일본의 관세 협상에서는 엔화 가치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과도한 엔저에 미·일 정부 모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만큼 달러 대비 엔화 가치를 올리는 데 뜻을 모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8일 일본과의 상호관세 협상과 관련해 SNS에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라며 “관세, 비관세 무역 장벽, 통화 문제, 정부 보조금과 관련한 생산적인 참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환율을 협상 어젠다로 삼겠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상호관세 발효 예정일 전날, 전화로 관세 문제를 협의한 뒤 협상을 이끌 담당 장관을 지정했다. 미국 측은 베선트 장관이 담당자다. 일본에선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이 협상을 주도하고 환율과 관련해선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이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달러 강세, 엔화 약세’를 문제 삼아왔다. 일본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과도한 엔저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간헐적으로 엔화를 사들였다. 닛케이는 “수입 물가를 잡기 위해 엔화 약세를 시정하는 방향으로 타협할 여지가 있다”고 관측했다.

다만 미·일이 협조 개입에 나서더라도 외환시장 규모가 너무 커진 탓에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달러 약세 유도는 인위적 환율조작을 금지한 주요 7개국(G7) 합의에도 어긋난다. 닛케이는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에는 환율조작을 피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향후 협의에서 참고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본은 과도한 엔저가 사라지면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은행은 지난해부터 엔화 약세에 따른 물가상승 충격을 줄이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려왔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