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은 협상 가능한 전략적 지렛대
정권 공백기, 여야정이 손잡고 최선의 협상 이끌도록 준비해야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트럼프 정부의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전대미문의 관세 인상 폭탄이 세계 자유무역질서와 동맹과 우방의 국가관계를 흩트리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FTA 체결국임에도 불구하고 고율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우방과 동맹, FTA 체결국 여부를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많이 본 순서대로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다행히 상호관세 부과 발효는 미국 주가가 폭락하고 해외에 공장을 두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의 불만과 물가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시행 하루 만에 전격 90일간 유예됐다. 이번 유예에는 이미 발효된 10% 보편관세와 중국에 부과된 상호관세, 그리고 이미 발효된 자동차 등에 부과된 품목관세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

미국의 관세 폭탄은 미국산 제품의 수출을 증대하고 미국 내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다. 사실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 국가들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것은 이들 국가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에 미국 내 투자를 압박한 것이다. 이들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많은 흑자를 내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들의 미국 수출 때문이다.

미국은 이렇게 고율의 상호관세율을 발효시켜 놓고 이제 상대국에 관세율을 낮추든가 없애려면 미국산 상품 수입이나 미국 내 투자를 늘리는 등의 선물을 가져오라고 압박하고 있다. 앞으로 상호관세 유예기간 동안 그 선물보따리에 따라 관세를 낮추는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각국은 미국에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중이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미국은 이에 대중 관세를 125%로 올리며 양국이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이 준비하는 선물보따리에 무엇이 담길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상호관세가 부과되기 전에 이미 기업들은 미국 내 투자 확대 및 미국산 상품 수입 확대라는 선물을 발표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4년 내에 미국에 31조원의 투자를 하겠다고 했고, 대한항공은 앞으로 48조원 규모의 미국산 항공기 및 관련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미 무역수지 개선 압박에 대해서는 수출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대신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은 에너지인데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원유와 LPG, 그리고 천연가스가 218억 달러로 전체 대미 수입액의 33.3%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결국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더욱 늘리는 방법이 수출을 줄이지 않고도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효과적인 협상이라 할 것이다.

한편 대미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가 미국에 줄 선물보따리에 담길 것으로 보이는데 과도한 투자는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 국내 경제가 어려운 중에 미국 투자를 크게 늘리게 되면 자연히 국내 경기는 계속 침체로 갈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해 미국 내 투자 수준을 정해야 한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압박은 결국 미국이 원하는 것을 받겠다는 전략적 지렛대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중국 이외의 상대국들은 미국에 보복 대응이 아닌 전략적 협상으로 대응할 것이며 무리하게 미국의 전략에 말려들지 않는 자세로 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방위비·주한미군·관세를 패키지로 협상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비관세장벽 철폐를 요구하며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철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이에 따른 국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로 국민들의 반발도 클 수 있다. 결국 향후 협상은 새 정부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준비를 잘해 두어야 할 것이다.

국정 공백과 비상시국에는 국가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여야 그리고 정부의 비상경제협의체가 원팀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그래야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대미 협상을 비롯해 위기의 경제난국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