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데이터센터의 확산이 키우고 있는 탄소포집기술[테크트렌드]](https://img.hankyung.com/photo/202504/AD.40115410.1.jpg)
탄소포집 과정은 크게 이산화탄소를 분리하는 포집(Capture), 파이프라인·탱크·선박 등을 이용한 운반, 깊은 지하의 암석층에 주입해서 영구 보관하는 등의 저장(Storage)이란 3단계로 나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포집 단계는 각종 산업 공정에서 발생한 배기가스나 대기 중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제, 화학 필터 등을 이용해서 분리하는 공정이다. 포집 단계에 사용되는 기술들은 공정상 위치, 대상 공간 등에 따라 나뉜다. 석유, 천연가스 등의 연소로 발생하는 배기가스에 포함된 이산화탄소를 선택적으로 분리하는 연소 후(Post-combustion) 포집, 연료를 산소와 반응시켜 합성가스를 제조하는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분리해서 수소를 생산하고 연소 과정에 수소를 연료로 활용하는 연소 전(Pre-combustion) 포집, 공기 대신 순수 산소를 연료 연소에 사용해서 배기가스가 이산화탄소와 수분만으로 구성되도록 함으로써 별도의 이산화탄소 포집 장치가 필요없게 하는 순산소연소(Oxyfuel combustion), 대기 속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직접탄소포집(Direct Air Capture)’ 기술 등이 있다.
탄소포집기술이 다시 부상하게 된 데는 AI 서비스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세에 힘입은 바가 크다. 금융시장에서는 AI 서비스를 지원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중 60%를 천연가스가 담당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빅테크 기업들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포집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천연가스 개발 확대 정책과 5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도 탄소포집기술의 유망성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화석연료 친화적 정책이 아이러니하게 탄소포집기술에 대한 관심을 키운 셈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강조하는 트럼프 정부가 탄소를 무역 규제 수단으로 활용해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판 탄소국경세’라 불리는 해외오염관세법(Foreign Pollution Fee Act, 이하 FPF)을 도입할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물론 탄소포집기술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에너지 안보, 기후 위기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탄소포집기술의 실용성이 재생에너지 확산보다 낮다는 주장이 간간이 제기된다. 올해 초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149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2050년 탄소포집·저장기술이 완전히 보급되더라도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는 경우보다 각종 사회적 비용이 10배 이상 더 들 것으로 추정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부 에너지 기업들은 탄소포집설비 구축 추진일부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탄소포집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 블랙록 등 세계 최대 투자기관들의 투자를 받은 석유기업 옥시덴탈은 미국 텍사스주에 세계 최대 규모의 DAC 설비인 스트라토스(STRATOS)를 구축해 왔다. 스트라토스는 연간 5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포집해서 지하 1마일 이상에 설치한 저장 설비에 보관하는 시설이다. 스트라토스는 최근 환경보호청(EPA)으로부터 설비 운영 허가를 승인받아서 미 정부가 최초로 승인한 DAC 설비가 되었다. 스트라토스의 주수익원은 탄소배출권이고 주고객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될 전망이다. 빅테크 기업들의 주력 사업인 AI 서비스 및 데이터센터 운영은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를 유발하는 전력 수요 급증세의 주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석유기업인 엑손모빌(ExxonMobil)도 지난 2023년 미국 최대 이산화탄소 운송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덴버리(Denbury)를 49억 달러에 인수하고 텍사스주에 DAC 설비를 구축하는 등 탄소포집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탄소 농도가 낮은 대기 중에서 탄소를 추출하는 DAC 기술의 취약점인 에너지 비용 절감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기술들이 꾸준히 등장하는 중경제성 갖춘 기술이 아직 확보되지 않다 보니 지금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UC버클리의 연구팀은 혁신적인 이산화탄소 포집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분리, 포집하는 아민 화합물을 주원료로 한 COF-999는 구멍이 많은 다공성 구조의 소재이다. 습도가 50%일 때에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고, 100번 이상 재사용할 수 있으며, 60℃ 이상으로 가열하면 이산화탄소를 쉽게 방출할 수 있다고 한다. 나무 한 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과 맞먹는 약 20kg을 COF-999 200g으로 포집할 수 있어서 기존 물질 대비 2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기후 위기 대응의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큰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려면 2050년까지 기가톤 규모의 탄소포집·저장기술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본다. 연간 기가톤 수준의 탄소포집 성능을 목표로 삼는 탄소포집기술 경연대회가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의 주관으로 지난 4년간 추진되어 왔다. 올해 3월경 우승자가 가려질 예정인 경연대회에는 다양한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에어룸 팀은 자연적인 구조물인 석회암 탑을 활용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석회암 속에 든 탄산칼슘이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성질을 가진 점에 착안해서 석회암을 고온으로 가열해서 탄소포집 과정을 3일로 단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테스트용으로 만들어진 12m 높이의 석회암 탑은 약 10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성능을 입증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탄소포집기술 지원펀드인 프런티어의 투자를 받아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200만 톤 규모의 설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토양에 탄소 흡수 물질을 뿌리는 방식의 스타트업들도 우승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실리케이트 팀은 규산염이 담긴 폐콘크리트를 가루로 만들어서 뿌려서 토양의 산성도를 개선하고 농약, 비료의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건설 폐기물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하는 획기적인 발상의 기술을 소개했다. 미국의 리토스카본 팀과 영국의 언두 팀은 현무암을 농장에 뿌리는 방식을 선보였다. 현무암이 산성비를 맞을 때 생기는 탄산수소염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작물 생산에도 도움을 준다. 중국의 위안추 팀은 직접공기광물화(DAM)라는 명칭의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특수 용액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석회암에 격리하는 방식이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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