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 위에 눈이 쌓였다. 4월 12일과 13일 봄과 겨울이 뒤섞인 낯선 풍경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서울에 눈이 쌓인 것은 1907년 이후 118년 만이다.
올봄 이례적인 저온현상이 계속 관측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전국 평균 기온은 영하 0.5도로 최근 10년 중 가장 낮은 기록을 세웠다. 절기상 봄이 온다는 입춘, 얼음이 녹는다는 우수에도 일주일 이상 강추위가 찾아왔다. 3월 역시 평균기온은 예년보다는 높았으나 중순까지 눈 내리는 날이 잦고 수일간 기온 강하 현상이 나타나는 등 변덕스러운 날씨가 관측됐다.
지구온난화로 평균기온이 높아졌는데도 추위는 더 심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지구온난화가 단순히 ‘더워지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상학자들은 극단적인 기온 편차의 원인을 제트기류의 약화로 보고 있다.
북극의 ‘벽’인 제트기류가 약해졌다. 여름철 가게들이 문을 열어놓고 안쪽에는 에어컨을 틀어놓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입구 쪽에 강하게 틀면 바깥 더운 공기가 차단되어 ‘에어커튼’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온대지방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는 제트기류의 역할과 같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이 따뜻해지면 중위도와의 기온 차가 줄어들어 제트기류의 가두는 힘이 약해진다. 그 결과 북극 냉기가 중위도인 우리나라까지 내려오게 된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해빙이 녹으면 약화 속도는 빨라진다. 국립기상과학원은 대서양 쪽 북극해 지역인 바렌츠·카라해의 해빙 면적이 적은 해의 겨울철엔 통계적으로 한반도의 한파 빈도와 지속 기간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에어커튼이 걷히고 북극의 찬 공기가 내려오는 것이다. 대기과학자 조천호 박사는 “북극 온도가 높아져도 시베리아 공기라 한파로 느낄 수밖에 없다”며 “지구의 온도가 계속 상승한다면 궁극적으로 한파는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번 4월 봄눈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절리저기압’도 제트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절리저기압은 대기 상층 제트기류의 동서 흐름은 느려지고 남북 진동 폭은 커지면서 북극 찬 공기가 남쪽으로 거세게 내려올 때 형성된다. 이때 지상에는 저기압이 발달해 눈비가 내린다. 계절과 무관한 현상이지만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이전보다 빈도가 높아져 기후변화 리스크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로 식탁 물가가 상승하는 ‘기후플레이션’이 현실화되고 있다. 봄 기온이 올라 개화가 빨라진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이상저온현상으로 과수 꽃눈이 얼고 밭작물이 동사하여 먹거리 물가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2023년에도 냉해 피해로 사과 생산량이 30%가량 급감하자 사과 가격은 같은 해 하반기부터 이듬해 8월 햇과일이 나오기까지 반년 넘게 2배 이상 폭등했다.
기후 불확실성은 금융기관들의 안정성에도 위협이 된다. 한국은행은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은행과 보험사 등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45조원을 넘을 것이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2.0℃ 이내로 제한한 금융권은 2100년까지의 예상 손실 규모가 27조원 안팎에 그쳤으나 기후 정책을 도입하지 않는 경우 예상 손실 규모는 45조7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은행은 신용 손실이 전체 예상 손실의 95% 이상을 차지했다. 은행이 1.5℃ 상승 제한에 나서면 BIS 비율이 초기엔 고탄소 산업 관련 신용 손실 확대로 2050년 8.0%까지 하락하지만 2100년경에는 현 규제 비율인 11.5%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무대응 시 2050년 변화가 없다가 2100년 10.0%까지 떨어지고, 2030년 이후 지연 대응 시에는 2050년 6.5%까지 하락했다가 2100년 10.6%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나타났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통해 “기온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기만 한다면 적응할 수는 있겠지만 지구온난화는 그렇지 않다”며 “기상 변화의 주기가 짧아지고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조수아 인턴기자 joshu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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