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2023년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 등장하자 전 세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영국 보그는 제니의 스타일을 “무대를 넘어 글로벌 런웨이까지 사로잡는 감각”이라고 평가하며 제니의 베스트 룩을 선정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제니가 입은 드레스가 샤넬이 아니냐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고급스러운 소재에 우아한 라인, 블랙과 화이트의 단정한 조화가 샤넬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제니가 샤넬 앰배서더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만큼 ‘칸 드레스’는 당연히 샤넬일 줄 알았는데 중국 디자이너 브랜드 ‘슈슈통(Shushu/Tong)’의 작품이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를 넘어 ‘디자인 바이 차이나’로중국 패션산업은 생산 중심의 제조업 이미지가 강했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와 같은 저가·패스트패션이 ‘메이드 인 차이나’로 불리는 중국 패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디자인 바이 차이나’라는 말이 생길 만큼 중국 패션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중국 패션 성장의 배경에는 고급 인재층이 있다. 영국 고등교육통계청(HESA)에 따르면 2021~2022학년도 기준 런던예술대(UAL)에 재학 중인 중국 본토 유학생 수는 5540명으로 집계됐다. 2014년(1750명)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UAL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 등 6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세계적인 예술 교육기관이다.
탄탄한 내수 시장도 하이패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패션 전문 매체 BoF와 컨설팅 그룹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의 명품 시장은 2024년 기준 630억 달러(약 86조원)을 기록했다. 유럽과 미국을 앞지르는 성장세다. 여기에 ‘궈차오’라 불리는 애국 소비 트렌드가 겹쳐졌다. 애국주의 교육과 함께 자란 중국의 MZ세대는 자국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자본력과 기술력, 인재가 결합된 중국식 산업 발전 모델이 패션산업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패션 성장세가 두려울 정도”라며 “처음에는 해외 유명 하이패션 브랜드를 모방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중국이 글로벌 패션 업계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브랜드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을 받기까지 수십여 년이 걸렸지만 중국은 자본을 앞세워 시간을 단축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수동 찾는 외국인, 상하이 찾는 한국인2030세대에서는 ‘자주 가던 일본’ 대신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을 찾은 한국인은 약 107만 명으로 전년 대비 115% 증가했다. 2025년 2월에는 22만7191명이 중국을 방문했다. 전년 동월 대비 59.5% 늘었고 전월보다는 10.8% 증가했다. 같은 시기 일본 방문자 수는 81만5231명으로 중국보다 많았지만 전년 대비 12.9% 감소해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쇼핑의 성지로 꼽히는 상하이를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상하이시 문화여유국에 따르면 2024년 상하이에서 숙박한 한국인은 44만 명에 달했다. 특히 비자 면제 조치가 시행된 지난해 11월과 12월에는 한국인이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외국인 관광객 수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소프트파워 성장은 수치로 입증된다. 영국 컨설팅그룹 브랜드파이낸스는 100여 개국 17만 명을 설문해 유엔 가입국들의 소프트파워 순위를 조사한다. 2025년 조사 결과 중국은 처음으로 영국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세계가 사랑하는 제품 및 브랜드’ 부문에서는 8위에서 5위로 상승했다. 보고서는 “중국 내 영향력이 글로벌 무대로 이동한 것”이라며 “중국 브랜드의 인지도와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고송희 인턴기자 kosh112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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