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실내 전경 / 한국경제신문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 실내 전경 / 한국경제신문
지난해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핸드백 원가가 우연히 알려져서 사람들의 공분을 산 적이 있죠. 디올 매장에서 2600유로에 팔리는 디올백의 납품 단가는 고작 58유로였어요. 원화로 환산하면 8만원쯤 한 것인데요. 원가의 45배나 붙여서 팔고 있었어요. 최근엔 중국의 한 업체가 에르메스의 버킨백 원가가 1395달러라고 폭로하기도 했어요. 이 버킨백은 그 27배인 3만8000달러에 팔리고 있습니다.
물론 하청사의 납품 단가를 오롯이 원가라고 보긴 어려워요. 이보다는 훨씬 더 높을 겁니다. 품질 테스트 비용이나 물류비, 불량품 처리비 같은 것도 원가에 더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진짜 원가가 얼마인지 뒤져봤어요. 디올의 모기업이자 세계 최대 명품기업 LVMH가 가장 대표성이 있을 것 같아요. 지난해 이 회사 매출은 847억 유로였는데 매출 원가는 279억 유로였어요. 매출 원가율은 32.4%였습니다. 평균적으로 원가의 세 배쯤 붙여서 팔았어요. LVMH의 루이비통, 디올, 펜디 같은 브랜드 프리미엄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런데 LVMH보다 원가율이 훨씬 낮은 패션 브랜드가 한국에 있었어요. 바로 젠틀몬스터입니다. 젠틀몬스터 운영사인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작년 원가율은 15.7%에 불과했어요. 젠틀몬스터는 고가의 안경테,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브랜드인데요. 30만원짜리 젠틀몬스터 선글라스 원가가 4만7000원쯤 한다는 의미입니다. LVMH가 세 배를 남겨 파는데 젠틀몬스터는 여섯 배를 남겨 팔아요. 대체 어떤 회사길래 LVMH 이상의 프리미엄을 받고 있을까요.
디자인·쇼룸 파격의 연속

아이아이컴바인드는 김한국 대표가 2011년에 세운 회사입니다. 김 대표는 영어 교육업체를 다니다가 사장에게 “회사 비전이 없다”면서 새로운 사업을 할 것을 제안했어요. 사업 아이템은 기존 영어 교육사업과는 완전히 다른 안경테였죠. 안경을 시력 교정을 위한 기능성 제품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으로 완전히 재정의해서 판매한다면 성공할 것이란 주장을 펼쳐요.

당시 30대 당돌한 이 젊은 직원 말을 누가 듣겠나 싶지만요. 너무나 놀랍게도 이 사장님은 받아들였어요. 사업 초기 자금을 대기로 한 것이었어요. 그 사장님이 씨케이글로벌파트너스의 오재욱 대표란 분이었어요.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최대주주는 그래서 지금도 김한국 대표가 아니라 오재욱 사장과 특수관계인입니다. 오재욱 사장 측 지분은 44%에 달해요. 김한국 대표 지분은 25%로 2대주주이고요.

창업 초기부터 김한국 대표는 직원들에게 단순히 안경을 파는 게 아니라 젠틀몬스터의 세계관과 감정을 팔아야 한다고 호소했어요. 그래서 브랜딩에 엄청난 공을 들입니다. 우선 남들 다 하는 안경점에 넣지 않았어요. 이 시장에선 안경점이 최대 ‘갑’인데요. 갑에게 잘 보이기 위해선 ‘을’인 납품업체가 상품 가격을 후려 쳐서 공급해야 해요. 10만원짜리 안경테를 1만원에 주는 식으로요. 또 브래딩도 스스로 할 수 없어요. 안경사로부터 ‘간택당한’ 브랜드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젠틀몬스터는 과감하게 안경점 납품을 접었어요. 대신 직접 안경을 팔기로 해요. 쇼룸을 열기로 한 것이었죠.

그 첫 쇼룸이 2013년 서울 논현동에 연 것이었어요. 주택이었는데 마당에 배를 전시하고 뱃머리는 매장의 벽을 뚫고 들어가는 매우 독특한 연출을 합니다. 이후 젠틀몬스터의 쇼룸은 끊임없이 화제가 됐어요. 2014년부터 2016년엔 서울 홍대에서 ‘퀀텀 프로젝트’란 것을 했는데요. 25일 간격으로 계속 공간을 바꾸면서 쇼룸에 사람이 오도록 만들었어요. 뭔가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죠. 또 폐업 목욕탕을 개조해 쇼룸으로 선보이는가 하면 만화방과 만화책을 소재로 공간을 연출하기도 했죠.

이런 시도는 유통업계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젠틀몬스터란 브랜드를 각인시킨 계기가 됐어요. 특히 2021년 문을 연 ‘하우스 도산’은 큰 파격이었어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 열었는데도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어요. 이 공간은 안경이나 선글라스 매장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공간 구성이 달랐어요. 1층 입구부터 초대형 설치 미술품으로 채워서 전시회나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을 극대화했죠. 서울 성수동에 본사 사옥을 짓고 있는데 이 건물은 외관부터 주변을 압도하고 있어요.

물론 공간만 독특한 것은 아니었고요. 안경테, 선글라스의 디자인도 파격이었어요. 이런 걸 누가 쓸까 할 정도로 실험적인 제품을 계속 내놨어요. 이 대목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 떠올랐는데요.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말이요. 이런 시도 말고도 다양한 형식 파괴를 했어요. 예컨대 몽클레르, 메종 마르지엘라 같은 해외 명품 브랜드와 손잡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디자인 제품도 선보였어요. 또 제니, 손흥민 같은 ‘셀럽’과 활발하게 협업하고 있고요. 이런 시도와 노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힙하다는 느낌의 극대화’인 것 같아요. 패션 유행과 트렌드의 가장 첨단에 선 느낌이죠. 남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체성과 세계관을 알리는 데 주력했어요.
김한국 아이아이컴바인드 대표 / 한국경제신문
김한국 아이아이컴바인드 대표 / 한국경제신문
◆마진 높여도 만드는 족족 팔려
젠틀몬스터, 명품보다 더 남겨도 잘 팔린다 [안재광의 대기만성's]
그 결과는 엄청난 성장이었어요. 지난해 매출이 8000억원에 육박했어요. 더 놀라운 건 영업이익인데요. 2023년 처음 1000억원을 넘겼고 작년엔 2000억원도 넘겼어요. 영업이익률이 무려 30%에 이릅니다. 제조업에선 이익률이 10%만 넘어도 수익성이 좋다고 하는데 30%는 ‘꿈의 이익률’ 수준이죠. 재무제표를 뜯어보면 더 놀라운 것도 많아요. 이 회사는 지난해 7891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매출원가가 고작 1236억원에 불과했어요. 앞서 강조한 매출원가율 15.7%는 매출 대비 매출원가율을 얘기해요.

또 재고자산이 지난해 510억원밖에 안 되는것도 놀랍죠. 매출이 8000억원에 육박하는데 이 매출에 비해 굉장히 적은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요. 재고자산 소진 기간이 지난해 평균 133일밖에 안 됐어요. 만들어서 넉 달 정도면 다 팔린다는 의미죠. 이건 말도 안 되게 짧은 것입니다. 왜냐면 안경테나 선글라스는 종류가 굉장히 많고 인기 제품 위주로만 판매되기 때문에 창고에 재고를 넣으면 꽤 오랜 기간 쌓여 있거든요. 평균 2~3년은 된다고 합니다.

해외 매출도 매우 커요. 지난해 해외 법인에서만 3156억원의 매출을 거뒀어요.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이아이컴바인드 매출에는 화장품 매출이 1000억원 넘게 포함되어 있어요. 이걸 제외하고 안경테와 선글라스만 보면 6140억원인데요. 이 기준으로 하면 해외 법인 매출은 50%를 넘어가죠. 해외 매출은 거의 전부 안경테, 선글라스라 50%로 보는 게 맞아요. 여기에 외국인들이 한국 매장에서 구매하는 것까지 합하면 60~70%는 외국인이 올려주는 매출이죠. 젠틀몬스터가 한국 내수 브랜드가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란 의미입니다.

사실 지난해 해외 명품 브랜드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최대 시장인 중국의 명품 소비가 확 꺾인 영향이 가장 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틀몬스터는 30%나 매출이 증가했어요. 사실 젠틀몬스터도 중국 시장에선 지난해 고전했어요. 하지만 일본이 폭발적으로 커졌고 미국도 껑충 성장해서 중국의 부진을 상쇄할 수 있었어요. 미국과 일본 법인 매출이 지난해 각각 처음으로 500억원을 넘겼어요.

또 하나 봐야 하는 건 확장성입니다. 아이아이컴바인드는 2017년 화장품 ‘탬버린즈’를 내놨어요. 7년 만인 지난해 탬버린즈 매출은 1600억원에 달했어요. 화장품도 선글라스처럼 패션 브랜드로 접근한 게 먹혀 들었어요. 탬버린즈도 매장이 파격이에요. 진짜 말로 착각이 들 만큼 정교한 모형을 매장에 가져다 놓고 누에고치를 형상화한 작품을 전시하는 것 같은 파격적인 매장 구성으로 입소문이 났어요. 젠틀몬스터의 성공 방정식으로 고스란히 적용해 또 다른 성공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걸 보면 아이아이컴바인드는 화장품에 머물지 않을 듯해요. 앞으로 패션이나 주얼리처럼 브랜드 사업이라면 어떤 것도 시도해서 성공시킬 수 있을 기세죠.

한국은 요즘 주력 산업인 제조업이 부진해서 경제 성장이 멈췄는데요. 이 부진을 소비재, 문화 산업이 앞으로 상쇄해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같은 K푸드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넷플릭스의 ‘폭싹 속았수다’ 같은 흥행 콘텐츠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더해 패션 분야에선 젠틀몬스터 같은 대형 브랜드도 탄생했어요. 반도체, 자동차만큼 큰 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