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 정부는 매년 4월 17일 ‘말벡 월드 데이(Malbec World Day)’ 기념행사를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날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기념 만찬 및 테이스팅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 만찬 메뉴로 특별히 아르헨티나 전통음식도 함께 나와 현지 분위기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중 레부엘토 그라마호(스크램블과 감자칩, 오일 전채 요리)와 프로볼레타(치즈를 그릴에 구운 전채 요리) 등이 돋보였다.
다리오 셀라샤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는 인사말을 통해 “1853년 프랑스 농학자 미셸 에메 푸제(Michel Aimé Pouget)가 말벡을 아르헨티나에 처음 소개했고 그날을 기념해 말벡 데이를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말벡은 아르헨티나의 탱고나 축구, 소고기와 같은 정체성을 지닌다. 한국 대표 음식인 김치와 접목, 양국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벡은 원래 프랑스 서남부 지방 토착 품종이다. 유럽 슬로베니아가 원산지라는 설도 있지만 소수의견이다. 주로 블렌딩용으로 사용했으나 요즘에는 단일 품종 와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편 이번 만찬에서는 모두 4종류의 와인을 선보였다. 식전주로 ‘엘 에네미고, 그랑 에네미고 토론테스(2021)’가 나왔다. 토론테스는 아르헨티나 토착 화이트 품종. 프리미엄급 와인으로 밸런스가 좋다.
초반의 쌉싸름하고 강한 신맛은 혀의 양끝, 침샘을 빠르게 자극했다. 식전주로 손색없다. 눈 감으면 스페인 정복자의 광기와 남미 원주민의 처절함이 배어 있는 듯한 와인이다. 수입사는 신동와인.
이어 ‘테라자스 데 로스 안데스, 리제르바 샤도네이(2022)’. 밝은 불빛 아래서 와인 잔을 들어 살펴봤다. 연한 초록의 신선함이 몰려온다. 첫 모금에서도 기분 좋은 감귤 향이 그대로 전해진다. 상큼하고 청량감이 좋다.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온갖 열대 과일과 미네랄 향을 잡을 수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산도다. 수입사 모엣헤네시 코리아의 노트는 ‘균형 넘치는 산미가 풀보디감을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끝으로 이번 행사 메인으로 말벡 100%를 사용한 와인 두 종류가 나왔다. 둘 다 짙은 보라색이 돋보인다. 와인을 잔에 따르고 시간이 좀 지나자 자두와 담배 향을 단박에 잡을 수 있었다.
‘보데가스 살렌타인, 누미나 말벡(2021)’은 강렬한 보라색과 열대과일 향 등 말벡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와인이다. 특히 균형감과 잔향이 돋보인다. 부드러운 질감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편하게 다가왔다. 비탈와인 수입.
‘카테나 자파타 말벡 아르헨티노(2022)’는 와인 혁명의 주인공이다. 특히 전통요리 ‘아사도 데 티라’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소 갈비살이 입안에 3분의 1쯤 남았을 때 한 모금 마시자 미각 상승효과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카테나 자파타는 실험 정신이 강한 와이너리다. 실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서늘한 곳에서 자란 말벡이 좋은 와인을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재배 지역 고도를 높여 ‘말벡 혁명’을 일으켰다.
4월은 말벡 와인 마시기에 좋은 계절이다. 지구촌을 떠돌던 이 포도 품종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멸종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인류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말벡 와인의 건승을 빈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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