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해방의 날’이라며 관세 부과를 발표한 이후 한국 증시와 미국 증시에서 상승한 종목의 특징은 뚜렷했다. 미국은 관세로 인한 물가상승 우려가 커지자 소비재와 제약, 콘텐츠 관련 주식이 상승했다. 한국은 조기 대선 정국을 맞아 ‘정치 테마주’가 널뛰었고 관세 ‘무풍지대’로 불리는 조선, 방산주가 급등했다.
‘세종 천도설’에 상승 TOP5 모두 정치테마주

정치테마주는 기업 경영진 또는 지배주주가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선거 후보와 관련 있다고 여겨지면서 주가가 급등락하는 종목을 말한다. 여기에 합리적인 의사 판단이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대선후보와 기업 간 고리는 ‘같은 직장이나 조직 출신’,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문’, ‘동일 고향 등 지역’이라는 이유로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같은 성씨’라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오르기도 한다.
이번 대선 기간에는 정치인에 한정됐던 정치테마주가 정책 공약으로 확장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각 당의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세종 이전’ 공약을 앞세우면서 건설, 건축소재 업종이 급등했다.
이 기간 상승률 1위는 충청권 기반 건설사인 계룡건설이었다. 계룡건설은 4월 3일 이후 137.1% 급등했다. 4월 20일과 21일에는 이틀 연속 가격제한폭(30%)까지 치솟으며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그러다 23일엔 주가가 20% 넘게 고꾸라졌다. “이재명 후보가 ‘사회적 합의를 거쳐’라는 전제를 단 만큼 세종 천도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충청권 ‘건설 호재’에 대한 기대심리에 건축소재 종목 역시 덩달아 롤러코스터를 탔다. 충북 단양시와 세종시에 공장을 둔 시멘트 기업 성신양회는 이 기간 72.1% 뛰었다. 시멘트 산업은 건설업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과 산업용 전기료 인상에 의한 원가 상승, 환경 투자 증가 등으로 채산성이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성신양회 영업이익은 532억원으로 2023년(733억원)과 비교해 27.4% 감소했다. 뚜렷한 실적 개선이나 산업 호재 없이 유력 대선 주자의 ‘수도 이전’ 공약만으로 주가가 급등한 것이다. 성신양회뿐만 아니라 삼일씨엔에스(11.3%), 벽산(10.4%), 태경비케이(10.4%), 한일현대시멘트(9.9%) 등 업종 전체가 ‘정치테마주’로 묶이며 들썩였다.
2019년부터 조국 테마주로 불렸던 화천기계(31.6%)도 다시 급등했다. 화천기계는 전직 감사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와 미국 버클리대 법대 동문이라는 이유로 테마주가 됐다. 회사가 조국 대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테마주’로 끌려나왔다. 화천기계는 지난 총선에서 53% 폭락하는 등 주가가 널뛰기 흐름을 보였다.
한덕수 테마주인 대한제당은 28.8% 상승했다. 대한제당의 고 설원봉 회장이 한 권한대행과 경기고 63회 동창이라는 이유만으로 테마주에 묶였다.
‘대북 테마주’도 다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철도 관련주인 부산산업이 22.6% 뛰었다. 모나용평 역시 같은 대북주로 묶여 11.4% 급등했다. ‘관세 무풍지대’ 전기·가스·식료품 올랐다

전기·가스 종목은 한국전력(17.9%), 한진중공업홀딩스(13.9%), 지역난방공사(11.1%) 등이 두 자릿수 이상 오르면서 4월 3일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섹터에 올랐다.

관세 무풍지대로 평가받는 조선, 방산주 역시 선방했다. 조선업은 한·미 협력 기대감이 무르익는 산업이다. 상호관세율을 낮추기 위한 협상의 주요 카드이기도 하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조선업 쇠퇴로 중국과의 해양패권 경쟁에서 밀리는 만큼 한국이 미국의 유일한 전략적 파트너는 평가를 받는다. HD현대중공업(23%), HD현대마린엔진(20%), HD현대미포(13.8%), HD한국조선해양(11%) 등 HD현대 계열이 일제히 급등하며 조선주를 떠받쳤다. 한화오션 역시 같은 기간 10.3% 상승했다.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 국가가 앞다퉈 방위비를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19%), 현대로템(15.9%) 등 방산주 역시 뛰었다.
반면 하락률이 가장 컸던 섹터는 의료·정밀기기, 전기·전자 등 반도체 기업이 포함된 곳이었다. 의료·정밀기기 분야는 반도체 장비회사인 케이씨텍(-26%)과 미래산업(-19%)이 급락하면서 섹터 전체 하락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관세전쟁 칼날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였던 제약주 역시 섹터 전체의 하락률은 높은 편이었다. 코스피에 상장된 제약사 47곳 중 38개 기업의 주가는 올랐지만 오리엔트바이오(-21%), 제일약품(-12.5%) 등이 급락하면서 지수 전체의 하락률을 끌어올렸다.
미국 증시에서도 관세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이 크게 올랐다. 미국 콘텐츠 플랫폼 기업 넷플릭스는 12.2% 상승했고 필수 소비재를 파는 월마트는 7.8% 뛰었다. 달러 지위가 흔들리고 금 가격이 급등하자 금채굴 기업 뉴몬트는 11.1% 상승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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